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작나무, 그 결연(決然)한 겨울

  • 입력 2023.03.17 11:27
  • 기자명 신종찬(시인,수필가,의학박사 / 신동아의원 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

겨울을 희디흰 맨살로 맞는 자작나무들이 늘어선 공원 숲속으로 길이 나 있다. 눈 덮인 길 위에 뽀드득 뽀드득 첫 발자국들을 남겨본다. 산자락에 하얀 자작나무가 빽빽한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하얀 눈을 입고 서 있는 자작나무들은 눈보다 더 희다.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이 하늘을 찌를 자작나무들의 결연한 기세에 나도 힘이 솟는다.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제음악으로 <라라의 테마>가 흐르는 가운데,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으로 열차가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말을 탄 군대들이 하얀 들판을 지나 자작나무가 우거진 광대한 숲으로 숨기도 하고 진격하기도 하는 장면에서도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본 후로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은 언젠가는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유라시아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의 추운 지방에서는 온통 자작나무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북쪽지방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1938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시인 백석(1912~1995)이 쓴 멋진 시 백화(白樺)를 읽어보자.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 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하략-

백석 시인이 노래한 대로 그곳 사람들의 삶은 자작나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작나무로 집을 짓고 땔감으로도 쓴다. 이 시에서 단맛이 나는 감로 우물도 자작나무다.’라 한 것으로 보아, 봄이면 고로쇠 수액처럼 자작나무 수액도 채취하여 먹는 풍습이 거기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자작나무를 지구상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나무라고 한다. 아마도 껍질이 희고 곧고 높게 자라는 모습들이 고결해보이기 때문일 성싶다. 자작나무는 높이가 15~20m까지 자라는 큰 키 낙엽수다. 나무껍질은 흰빛을 띠며 옆으로 얇게 벗겨진다. 잔가지는 자갈색이고 겨울눈은 긴 타원형이다. 잎은 어긋나며 달걀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잎 뒷면의 잎맥겨드랑이에 갈색 털이 있고 한 가지에 잎이 5~8쌍이 난다. 암수한그루로 잎과 함께 꽃이 피는데 연노란 색의 수꽃이삭은 밑으로 늘러지며 작은 암꽃이삭은 곧게 서다가 성숙하면 늘어진다. 원통형의 열매 이삭도 밑으로 늘어진다. 꽃은 4~5월에 피고 9~10월에 결실을 맺는다.

이 나무를 자작나무로 부르게 된 것은 자작나무가 탈 때, 껍질에 기름이 많아서 자작자작소리를 내기 때문이라 한다. 남한에서는 자작나무라 하지만, 자작나무가 많은 북한의 백두산 근처에서는 봇나무라 부른다고 한다. 훈몽자회/최세진, 1527에는 자작나무를 뜻하는 '()'의 훈()''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선 초부터 자작나무를 자작목(資作木, 自作木)으로 기록해왔다고 한다. 봇나무자작나무는 오래 전부터 있던 이름인데 남한에서는 자작나무가 북한에서는 봇나무가 표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작나무의 쓰임새는 정말 다양하다. 목재, 연료, 지붕 덮개, 향료, 방부제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종이가 귀한 시절에 자작나무껍질은 종이 대신에 쓰였다. 현재도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는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는 얇은 자작나무껍질로 명함도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한다니 정말 낭만적인 나무다. 자작나무껍질은 거의 기름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지 않으므로 신라시대의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작나무껍질에 그린 그림으로 경주 천마총(天馬冢)에 발견된 천마도(天馬圖)가 있다. 천마도는 구름을 탄 흰 말 그림으로 당시 예술 수준을 가늠 수 있는 훌륭한 그림이다.

자작나무는 목재로서도 귀하게 쓰였는데,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일부와 도산서원의 목판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제작했다고 한다. 자작나무가 가장 손쉽고도 널리 쓰이는 방법은 연료였다. 자작나무 껍질은 추운지방에서 불쏘시개로 널리 썼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횃불로 널리 쓰였고, 중국에서도 결혼식 때 화촉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요즘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자작나무숲을 많이 조성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도 정원수로 자작나무를 많이 심고 있으나 너무 더워서인지 대체로 착상에 성공적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적한 공원에서는 성공적으로 착상하여 잘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 공원에서는 안중근의사께서 붉은 피로 결연히 大韓獨立이라 썼던 단지(斷指)동맹의 현장이 하얗게 눈 덮인 자작나무 숲속에서였다는 설명도 있었다.

매년 3월이면 나는 젊은 시절 그 해 3월이 떠오른다. 19813월 군의관이었던 나는 소위 삼청교육대 대원들을 진료하러 소양호가 인접한 강원도 양구의 한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봄이라지만 소양호는 아직 겨울 그대로였다. 아침 해는 꽁꽁 언 호수 안에 우윳빛으로 또 하나 떠 있어, 사방이 유난히 밝았다. 갈 때는 무척 추웠지만, 올 때는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가위에 눌렸고, 한 편으로는 처참한 광경에 놀라서 추위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대원들의 몸에서 온몸을 감싼 총천연색 문신들이 용트림을 하는 모습을 처음 대했다. 살벌한 골짜기를 눈보다 더 하얀 자작나무들이 얇은 껍질로 감싸고 겨울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잊으려 군용차에서 속으로 당시 유행하던 <라라의 테마> 첫 소절을 자꾸만 불러댔다. “내 사랑이여 그곳에 부를 노래가 있을 거예요. 그 어디엔가 눈이 봄의 희망을 덮고 있을지라도(Although the snow covers the hope of spring.)."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