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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로크 선율에 물들다

  • 입력 2023.04.18 16:52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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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낮과 밤이 같아지는 때인 춘분(春分)이 지나고 봄바람을 머금은 금빛 선율이 도시를 물들이고 있다. 올해는 벚꽃의 개화 시기도 지난해보다 10일 가까이 빨라져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개화라는 소식이다.

 

조성진의 헨델 프로젝트

최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많은 이들에게 바로크 선율을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월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그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헨델 프로젝트(The Handel Project)’가 발매 이후 빌보드 클래식부문 차트인 트래디셔널 클래식 앨범(Billboard Traditional Classical Chart)’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조성진의 The Handel Project 앨범 커버
조성진의 The Handel Project 앨범 커버

그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로는 팬데믹 기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헨델의 음악이 그에게 많이 와닿았고 그 당시 녹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2F장조 HWV 4278F단조 HWV 433, 마지막 악장 흥겨운 대장간으로 유명한 5E장조 모음곡 5HWV 430 등이다. 또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가 이번 헨델 프로젝트에 담겨있다.

보통 바로크 시대의 건반악기 작품으로는 대부분 바흐의 연주를 떠오르지만,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은 바흐와 비교하면 조금 더 가슴에서 나오고 선율적인 부분이 있어 연주자로서 다가가기 쉬웠으나, 그러한 첫인상에 비해 준비과정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크 음악에 익숙해지기 위해 더 긴 시간이 필요했고 실제로 헨델 앨범을 준비할 때가 일생 중 가장 긴시간 연습하며 열정을 쏟았다.

헨델은 이 HWV 4341710~1717년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음곡은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 Prelude, 2악장 Sonata, 3악장 Aria con variazioni, 그리고 4악장 Minuet이다. 미뉴에트는 그중 네 번째 악장인데, 이 곡은 앞의 1-3악장과 음의 조성이 달라 같은 모음곡이 아닌 것 같다는 추측도 있었다. 후에 이 곡은 별개의 곡이었으나 출판사의 실수로 4악장으로 포함되어 출판되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Frederic Hendrik Kaemmerer의 그림 The Minuet, 1890년 작
Frederic Hendrik Kaemmerer의 그림 The Minuet, 1890년 작

미뉴에트, 작은 걸음으로

네 번째 악장인 미뉴에트는 유럽의 춤곡 중 하나로 느릿한 리듬으로 우아하게 추던 궁중 무용이었다. 3/4박자의 약간 느린 템포의 우아한 리듬을 가진 프랑스 고전 춤곡으로 프랑스어로 작은 걸음(à pas menus, . small tiny step)에서 유래되었듯 우아한 걸음걸이의 폭이 작은 스텝으로 추는 춤곡이다. 16세기에는 프랑스의 민속 무용이었으나 17세기 중반 루이 14세가 이 곡을 너무 좋아해 궁정 무용으로 채택하면서 상류층이 즐기는 춤이 되었고 그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발전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 당시 귀족계급이 미뉴에트를 선호한 이유는 바로크 시대 스타일 특성상 자신들의 화려한 가발, 예장용으로 차는 긴 칼,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의 과장된 의상의 우아하고 위엄있는 외관을 이 춤의 스텝이나 동작이 가장 잘 살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왈츠와는 달리 파트너와 신체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귀족 특유의 냉정함을 지킬 수 있는 춤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방송 출연에서 선보인 곡은 헨델 프로젝트에 실린 가장 마지막 트랙으로, 헨델의 미뉴에트 g 단조(Handel Minuet in G minor, HWV434)는 원곡을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빌헬름 켐프(Wilhelm W. F. Kempff, 1895~1991)가 편곡한 버전이었다.

독일의 거장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원곡은 본래 조성도 다른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Suite In B Flat Major, HWV 434)이지만 피아니스트 켐프가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기존의 곡을 피아노의 주법에 맞게 편곡하였다.

오늘날 헨델의 건반 음악이 다시금 관객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켐프의 공이 크다. 켐프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오르가니스트와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그가 바흐의 여러 작품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헨델의 건반 음악에 큰 흥미를 느껴 직접 연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직접 현대식 피아노에 어울리도록 편곡하기까지 했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편곡 버전으로 연주를 하고있다. 켐프는 헨델의 음악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페달링과 레가토 등 피아노만이 가진 강점을 더해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의 전신에 해당하는 악기로, 피아노가 현을 해머로 치는 것과 달리 하프시코드는 픽(플렉트럼, plectrum)으로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이다. 따라서 피아노와 달리 건반을 아무리 세게 눌러도 반대로 약하게 눌러도 소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셈여림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고 다음 건반을 누른 후에도 이전 건반을 누른 채로 유지하여 미세하게 피아노의 페달 효과를 손가락으로 행하는 정도의 표현이 가능했다. 원곡대로 하프시코드로 연주된 기존의 미뉴에트는 현을 뜯는 방식의 발현악기이기에 현대의 피아노보다 조금은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음색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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