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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효과

  • 입력 2023.05.11 16:52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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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1970년대 말 서울 용산에는 ‘121 미 육군 병원’ 이 있었다. 한국에 파견된 미국 병사들을 치료하는 이곳에서는 수십 명의 현역 군의관이 근무했다. 백인 소아과 과장은 현역 대령으로서 실력 있는 소아전문의였다. 교양 있는 그의 한국인 부인은 자신들의 아이가 아프면 121대신 한국인 개업의를 찾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많은 개업의는 환자에게 주사를 놓아주기 때문이었다. 특히 감기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현대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감기의 원인인 바이러스를 죽이는데 항생제 주사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서양 의사들은 아픈 아이를 데려간 엄마에게 기침약이나 주며 시간이 가면 나을 것이라고 돌려보낸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인 한국 부모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몸은 참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주사 한 방으로 금방 병이 나았다는 것은 대부분 플라시보(Placebo) 효과다. 플라시보는 거짓말이나 허풍이 아니다. 플라시보 효과를 처음를 처음 발표한 학자는 하버드 대학 마취과 의사였던 ‘비처’ 박사였다. 그는 제2차 대전 중 진통제인 모르핀이 떨어졌을 때 군의관들이 부상자에게 증류수를 대신 주사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환자들의 통증이 마치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많이 감소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환자들이 믿는 경우에 실제 약품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플라시보 효과라 불렀다. ‘Suger Pill’ 이 생긴 것도 이 즈음이다.

1970년대 이후부터 미국 정부가 새로운 약품이 나올 때 반드시 이중의 장님 검사(Double Blind Study)를 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짜약과 똑 같은 설탕약을 조건이 비슷한 두 그룹의 환자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준다. 그 임상 결과를 의사가 자세히 측정하도록 한다. 물론 의사도 어느 환자가 진짜 약을 쓰는지 모른다. 그러니 둘 다 장님인 셈이다. 의사의 선입견 때문에 올지도 모르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정 기간의 치료가 끝난 후에 뚜껑을 여는 것은 본래 번호를 붙여줬던 제 3자다. 약의 효과가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밖에 없다. 만약 약의 효과가 33% 즉 환자의 1/3에게서 효과를 보이면 이 약품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플라시보는 약 33%의 효험이 있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설탕약을 복용하던 환자들이 약의 부작용으로 두통, 구역질, 어지러움 등 각종 증상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설탕약보다는 가짜 주사가 또 가짜 주사보다는 가짜 수술이 약효(!)가 크다는 최근 LA타임스의 인용 기사를 잃었다. 과대 선전을 일삼는 온갖 영양제나 비방 약들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갈수록 잘 팔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이민자들은 늘 다급한 심정이다. 누구인가 솔깃하게 말해주는 설탕약을 믿고 싶다. 신비를 약속하니까! 귀찮은 건강진단이나 골치 아픈 양약들은 부작용 걱정이 앞선다. 신비를 믿던 다섯 살 때의 순진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90세 이상을 살아내야 할 우리의 몸은 참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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