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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시간, 가족의 사랑으로 채우다

  • 입력 2023.05.17 11:20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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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눈이 부시게 푸른 5월의 햇살은 우리의 영혼을 따사롭게 비추고 위로를 준다. 햇볕에 몸과 마음을 녹이고 숨 가쁘게 달린 일상에 쉼표가 되는 계절이다.

가족의 사랑을

가슴으로

눈으로

이제 펜과 음표로 오선지에 가져오다.

“Nulla dies sine linea”라는 라틴어 구절이 있다. 선 긋기를 하지 않고서는 하루를 보내지 마라(No day without a line)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화가인 아펠레스(Apelles of Kos)는 실제로 이를 행하였고 이같은 격언을 남겼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이자 정치인, 군인이었던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AD 23-79)가 기록한 것처럼 수세기 전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인물화와 장르 회화 및 정물 예술 분야에서 이미 발전했다. 이 기록은 기원 후 1세기에 씌어진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적혀있는데 르네상스 시대 이후 널리 읽히는 바람에 이탈리아의 많은 미술 공방에서 소묘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만큼 하루를 성실하게 소중한 시간으로 보내야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지혜이다. 업무에서 가족의 시간으로 어떻게 분할할지는 최대의 과제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TV 매체에는 관찰 예능을 넘어 육아 예능프로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딸과 아들에 대한 사랑에 푹 빠진 이들에 대한 언어 표현도 자막을 통해 다양한 조합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과거에 없던 현상은 아니다. 음악계에도 역시 존재한다.

19세기 프랑스 작곡가인 클로드 드뷔시도 딸에 대한 사랑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드뷔시는 달빛’,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등으로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있다.

프랑스 화가 Edouard Vuillard의 그림 Grandmother and Child, 1899년 작
프랑스 화가 Edouard Vuillard의 그림 Grandmother and Child, 1899년 작

드뷔시의 인상

드뷔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작곡가로 보통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표현은 미술사에서 더 많이 쓰인다. 인상주의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주관적인 인상에 따라 그리는 화풍을 뜻한다.

사진기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이전처럼 사실적으로 똑같이 그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있었고 사물 그대로의 재현에서 벗어나 나의 시각과 나의 감각에 와닿는 인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때 작곡가 드뷔시도 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자신의 음악에도 이러한 인상주의 화풍을 반영했다.

똑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에 그 느낌을 정형화된 틀 밖의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적인 작곡 기법에서 벗어나 조성 음계, 대위법의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박자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혹자는 이를 음악의 해방이라고도 했다. 모든 법칙에의 거부는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음의 세계를 창조해냈다.

드뷔시는 몽상가적인 기질로도 유명한데, 이런 요소들이 모여 그의 작품 전반에 묻어나는 몽환적 분위기와 자유로움을 완성했다.

드뷔시와 그의 딸 슈슈 1911년 사진 ㅣ이미지출처 Google Arts & Culture
드뷔시와 그의 딸 슈슈 1911년 사진 ㅣ이미지출처 Google Arts & Culture

자유로운 상상과 어린이의 시선

그의 이런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향한 것은 그의 사랑하는 첫딸이 세상에 나온 뒤였다. 그의 딸 클로드-엠마 드뷔시(Claude-Emma Debussy)슈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드뷔시는 슈슈가 5살 되던 해, 3년에 걸쳐 작곡한 <어린이의 세계(Children‘s corner, ‘어린이 차지라고 불리기도 함)>를 발표하며 이 모음곡을 슈슈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은 시대 흐름을 타며 세상에 나오자 마자 인기를 끌었다.

곡을 발표할 당시 19세기는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를 두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이때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곡들이 많이 작곡되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Op.15)>, 무소르그스키의 가곡집 <어린이의 방Kinderstube (Nursery)> 등 다른 음악가들도 작품이 어른의 시선에서 어린이를 묘사하거나 어린이의 피아노 교습용으로 작곡되었다. 이에 반해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 작품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작품에서 드뷔시 특유의 상상력이 두드러지는데 딸을 사랑하는 그의 시선을 선율에 담았다.

이 곡에 수록된 6개의 곡은 프로그램적으로 서로 연결된다. 아이가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노는 동선을 따라 관찰자의 1인칭적 시선이 차례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곡의 제목에 Corner라는 표현과 같이 어린이의 행동과 모습 자체가 아닌 어린이가 속한 영역과 공간에 대한 인상을 옮겼기에 음악의 메세지는 보다 은유적이다. 6개의 곡은 다음과 같다. 1: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 2: 짐보의 자장가/ 3: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4: 눈은 춤춘다/ 5: 작은 양치기/ 6: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짧은 기간 고도의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삶의 패턴에서도 서양의 개인주의와 닮아가고 있다. 그만큼 가정으로 가장이 함께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친밀한 미소에 목마른 시기이다. 아이의 시선에서 이 바쁜 세상은 어떻게 보여질까. 어린이들은 한 세대의 터전을 살려내는 무한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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