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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마음으로

6월의 플레이리스트 선곡

  • 입력 2023.06.19 12:58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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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생동하는 초여름의 풀빛을 누리는 초록의 계절, 어느덧 6월이다. 6월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평화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어떤 이들은 작년 2월 시작된 전쟁을 두고 3차 대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세계는 여전히 패권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우크라이나의 사진, 영상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보내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열차 안에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녀들이 타고 있었고, 창밖 아버지의 모습을 담는 아이들의 카메라에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별에 대한 슬픔을 애써 감추려는 아버지의 장난 섞인 모습들이 찍혔다. 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말 처참한 유태인 수용소 안에서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 귀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다. 처참한 세계대전 이후 거의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포성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현실은 그 자체가 비극이다.

 

전쟁 중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베라 린

전쟁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노래 ‘We’ll Meet Again’은 로스 파커 (Ross Parker, 1914-1974)와 휴이 찰스(Hughie Charles, 1907-1995) 가 작곡, 작사한 노래로 1939년 가수 베라 린(Dame Vera M. Lynn, 1917-2020)이 부른 영국 노래이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유명했던 곡 중의 하나로, 전투를 위해 떠나는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 연인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

영국군 장병의 마음을 위로하는 베라 린
영국군 장병의 마음을 위로하는 베라 린

 

수많은 영국군 장병들 앞에서 노래하는 베라 린
수많은 영국군 장병들 앞에서 노래하는 베라 린

이 노래는 ‘Michael Ross Limited’에서 출시되었으며 영국 피아니스트 Norman Keen과의 협업으로 “We’ll Meet Again” 뿐만 아니라 “There’ll Always Be an England”, “I’m In Love For The Last Time” 등 당시 많은 작업을 함께 발표했다. 오리지널 녹음 당시 베라 린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아서 영(Arthur Young)의 노바 코드(Novachord, 진공관식 전자 악기로 초기의 전자 키보드이다) 반주로 진행되었으며, 1953년 재녹음 시에는 더욱 화려한 악기편성과 영국군 합창단이 함께했다.

이 곡은 당시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라디오 전시 방송에서 자주 선곡되었으며 본국에 있는 연합군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 당시 그녀의 목소리는 유럽을 휩쓸었던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비극에도 전쟁터의 군인들을 걱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대적 정서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위로의 순간을 전했다. 희망을 주는 메시지와 마음을 진정시키는 멜로디는 영국과 미국의 군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미국의 음악 차트에까 지 진입하기도 했다.

1943년 공개된 뮤지컬 영화 Well Meet Again
1943년 공개된 뮤지컬 영화 Well Meet Again

이 노래의 타이틀은 1943년 베라 린이 주연을 맡았던 뮤지컬 영화의 이름을 따왔다. 이 작품은 공습 중에도 청중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듣는 이들을 즐겁게하는 보드빌 극장(뮤직홀)의 젊은 댄서의 삶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로, 이후 그녀에게는 ‘군의 연인(Forces’ Sweetheart)’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기, 그 현실과 위로

당시 암울했던 시기임에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이 곡은 전쟁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했다. 1953년 녹음된 버전의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1964년 반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이 영화 원제는 다음과 같다.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내가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 꽤 긴 타이틀로 축약해서 부른다. 이 영화는 피터 조지의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핵전쟁으로 인류가 직면하는 모순을 블랙코 미디로 희화화한 작품이다. 또한 1986년 영국 BBC TV 시리즈물 인 ‘노래하는 탐정(The Singing Detective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감독 존 슐레진저(John Schlesinger)는 이 곡을 1979년 발표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에서 사용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을 준비하면서 영국에 군사력을 증강하던 시기, 영국의 여인들과 사랑에 빠진 미군들이 이별의 시 련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다.

베라 린은 전쟁 중에도 ENSA의 일원으로 이집트, 인도, 미얀마 (당시 영국령 버마) 전선까지 다니면서 군부대와 병원을 순회하며 위문공연을 열었다. ENSA(Entertainments National Service Association)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파견된 영국의 전선 위문공연단이다. 당시 영국은 독일, 이 탈리아, 일본의 군대와 전쟁을 치뤄야 했던 유럽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영연방 군대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들에게 잠시나마 전쟁터의 공포와 전쟁으로 쌓인 피로를 가라앉히고 다시금 사기를 진작시켜 주기 위해 ENSA를 파견했다.

종전 후인 1952년에는 이라는 곡으로 영국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1 위에 오르기도 했다. 92세였던 2009년에는 아크틱몽키, 비틀스를 제치고 영국 앨범차트 1위에 오른 최고령 아티스트에 등극하 기도 했다.

2017년 3월에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의 음반사 Decca와 함께 앨범 ‘베라 린 100(Vera Lynn 100)’을 발매하였으며, 이로써 세계 최고령 음반 발매자이자 100세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앨범 차트에 3위로 오르기도 했으며, 이 앨범은 그녀가 103세가 되던 해 유럽 전승 기념일 (Victory in Europe Day, VE Day)의 75주년 기념식 이후까지도 여전히 차트 30위에 자리 했다. 그녀는 전직 군인과 장애 아동, 유방암 등과 관련된 자선 활동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헌신을 치하하며 1959년과 1975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남성의 경(Sir)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20세기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국인(“Spirit of the 20th Century”)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별세 전까지도 그녀는 팬데 믹으로 시름에 젖은 일상에서도 “계속 웃고 계속 노래하라”고 강조했다.

베라 린이 1975년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ame) 훈장을 받을 당시 모습ㅣ 이미지출처 The Denver Post

베라 린의 곡 “We‘ll Meet Again(‘우리는 다시 만날 거에요’)”라는 제목의 노래처럼 이 시대 전쟁으로 흩어진 가족들이 결국 다시 한 자리에 모일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곡의 가사를 파병된 군인과 가족들에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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