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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해방

  • 입력 2023.07.07 12:41
  • 수정 2023.07.07 12:45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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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인생’ 이라고 옛 어른들은 말씀 하셨다. 너무나 옳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 할 때가 많다. 의과 대학을 졸업할 때에 나는 만 스물다섯이었다. 그때 자신감에 차 있던 방자함이라니….

정말 하늘을 찌를 듯이 용기가 넘쳤다.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엉뚱한 생각이 있었다.

‘마흔 다섯 살이 넘으면 인생은 끝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마 내 딴에는 젊음의 한계를 마흔 다섯 살로 잡았었다보다(현재 미국 정신과에서 45세부터 65세 사이를 중년기로 잡는 것이 최근의 움직임이다).

어쨌거나 졸업 후에는 열심히 살면서 달려왔다. 그리고 쉰의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겼다. 회색의 암울한 숲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던 45세 이후의 인생이 사실은 그토록 ‘비참한 시가’ 가 아니라는 점이다. 잃어버린 것은 물론 많이 있다. 요즘 들어 뻔히 알고 있는 단어가 머릿속에서는 뱅뱅 도는데 혀 밖으로는 튀어나오지를 않는다. 서너 가지씩 동시에 해내던 일들이 이제는 어려워졌다.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처방전을 쓰다보면 실수 연발이다. 환자 아이의 이름 대신에 엄마의 이름을 쓰지 않나, 어떤 때는 엉뚱하게 틀린 날짜를 적어 보내 선량한 약사들의 골치를 아프게 한다. 이런 일들이 가끔 나의 나이를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익들이 있다. 왜 아무도 젊은 시 절의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토록 나를 괴롭 히던 실패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었다. 아무리 많은 실패를 앞으로 한다고 해도 여태껏 저지른(?) 이상은 되지 않을 태니까! 하기는 일을 망칠 시간도, 또 정력도 예전보다는 줄어들었다. 풋풋하던 시절의 마음의 방황도 이제는 꽤 가라앉았다. 꽃이 피거나 낙엽이 진다고 해서 이제는 마음이 시리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걸맞은 친구를 찾는다. 가지고 있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조바심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아이들도 훌훌 둥지를 떠나 날아갔다. 더 이상 안쓰러워할 대상이 없는 것은 또 하나의 해방이다. 마음속에 싸늘한 바람이 불 때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불을 밝힌다. 주위가 따뜻해지면 내게도 온기가 스며오니까…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음의 홀가분함이여! 그러나 마음 편하게 주저앉아만 있기에는 앞으로 맞을 날들이 너무나 긴 것을 나는 안다. 미국에서 사는 당뇨나 암, 심장병이 없는 50대의 여성은 94세 이상의 수를 누린다는 통계가 벌써 나와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나침반을 꺼내들고, 항해도를 그릴 때이다. ‘제 2의 성인기’ 를 미리 계획해 두어야겠다.

그런데 사실은 막막하다.

우리 조상들은 환갑, 진갑을 인생의 마침표로 여겼었다. 누구도 인류가 우리 세대처럼 길게 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왕 우리 앞에 이토록 길게 펼쳐질 인생이라면 폐기 있게 맞아들이자. ‘죽지 못해서 사는 인생’ 으로 보내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이다. ‘인생은 고해’ 라는 부처님 교훈에는 다른 뜻이 있을 듯하다. 비록, ‘고통의 바다’ 라 하더라도 멀리에 보이는 등댓불을 바라보며, 멋진 항해를 해갈만한 충분한 보람이 있는 여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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