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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의 20년, 자연 그리고 뮤직 인 평창

Music in PyeongChang

  • 입력 2023.08.18 12:03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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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 기후 위기가 이제 일상이 된 요즘이다. 그 만큼 많은 이들에게 쉴만한 그늘과 휴식은 간절하다. ‘엔데믹’ 이후 첫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는 이 시기 평창대관령음악제(7월 26 일부터 8월 5일까지)는 선율의 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시즌제를 채택한 유럽의 클래식 공연장의 경우 여름에 공연장 문을 닫는 대신 콘서트나 오페라 무대를 휴양지나 유적지로 옮기는 것과 달리 오히려 한국의 여름은 클래식 음악축제를 즐기기엔 긴 장마와 짧은 여름휴가 기간으로 유럽처럼 즐길만한 클래식 음악축제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 포스터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 포스터

하지만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처음 문을 연 2004년 이후 강원도 평창 일대는 거대한 클래식 공연장으로 거듭났다. 세계적인 야외 음악축제로 알려진 영국의 프롬스(BBC Proms)나 독일 베를린필 하모닉의 발트뷔네(Waldbühne Berlin) 콘서트, 그리고 뉴욕필의 센트럴파크 콘서트와 같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이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젊은 음악가와 콘서트고어 (concertgoer)들을 설레게 하는 한여름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 벌로 자리매김했다.

 

성년을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 또 다른 도약

올해로 20회를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첼리스트 양성원을 제4대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그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찾는 평창, 그리고 강원도 음악축제를 만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자연(Nature)’이라는 테마와 연결된 레퍼토리로 풍부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첼리스트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제4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첼리스트 양성원

제1회 대관령음악제가 ‘자연의 영감’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후 20회를 거쳐 다시 자연을 주제로 열린 것은 새로운 도약뿐만 아니라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축제 측의 다짐과 의지로 보인다.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 성악 등 다채로운 장르와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페스티벌이 성년을 맞은 만큼 새로운 연주자 구성도 돋 보였다. 지난해 시벨리우스 콩쿨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등 세계를 놀라게 한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 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고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거처와 활동지를 옮긴 키이우 비르투오지(Kyiv Virtuosi)와 함께 음악으로 나누고 공감하는 특별한 세션도 마련되었다.

세계 사회에 기여하는 축제를 만들고자 하는 양성원 신임 예술 감독의 의지가 엿보였다. 지난 6월 취임 시 축제의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며, 세계적인 연주자의 내한뿐만 아니라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이름으로 한국 음악가를 세계 무대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키지아나 페스티벌(Chigiana International Festival)과 캐나다 밴프 아트센터(Banff Center for the Arts)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키지아나 페스티벌의 내년 무대에 한국 음악가들이 함께할 예정이라 전하기도 했다.

 

자연, 그리고 ‘뮤직 인 평창(Music in PyeongChang)’

평창대관령음악제는 2004년 제1회부터 2015년 제12회까지는 ‘대관령국제음악제’, 2016년 제13회부터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개최지인 평창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평창대관령음악제’로 개칭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이제 약칭인 ‘MPyC(엠픽, Music in PyeongChang)’에 이르기까지 축제 명칭에서부터 축제 로고까지 긴 시간에 걸쳐 성장과 변화를 거듭해왔다. 양성원 예술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도 밝혔듯 그동안 해외 음악가 섭외 시 ‘더 그레이트 마운틴스 뮤직 페스티벌’, ‘평창 뮤직 페스티벌’ 등 혼재해 썼던 브랜드 정체성을 이제 ‘뮤직 인 평창(Music in PyeongChang)’으로 분명하게 확립하고자 하는 축제 측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올해 주제가 ‘자연’인 만큼 총 20회의 메인 콘서트는 강원도의 수려한 자연과 어우러지는 선곡으로 꾸며졌고, 8회의 ‘찾아가는 음악회’, 올해 신설한 ‘실내악 멘토십 프로그램’, ‘찾아가는 가족음악회’가 함께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야외 공연장 알펜시아 뮤직탠트 외관
평창대관령음악제 야외 공연장 알펜시아 뮤직탠트 외관

대관령 야외공연장인 ‘알펜시아 뮤직 텐트’에서 펼쳐지는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49)의 알프스 교향곡(Eine Alpensinfonie, Op.64), 베토벤(L.v.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전원(Symphony no.6 in F major, op.68 ‘Pastoral’), 멘델스존 (F.Mendelssohn, 1809-1847)의 헤브리디스 서곡(The Hebrides Overture, Op.26)은 자연의 소리와 음악의 울림으로 생동하기에 걸맞은 선곡이다. 더불어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는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의 새의 카탈로그(Catalogue d'oiseaux), 하이든(F.J.Haydn, 1732-1809)의 현악사중주 ‘새’(String Quartet in C major, Op. 33, No. 3 “The Bird”), 레스피기(O.Respighi, 1879-1936)의 ‘석양’(Il Tramonto P. 101), 엘가의 ‘바다의 정경’(Sea Pictures, Op. 37)과 같이 섬세한 자연의 극치를 체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레퍼토리 구성으로 선보였다.

알펜시아콘서트 홀 ㅣ 이미출처 평창 알펜시아
알펜시아콘서트 홀 ㅣ 이미출처 평창 알펜시아

특히 폐막식에서 선보인 멘델스존의 ‘헤브리디스 서곡’은 스코틀랜드 서북쪽에 있는 헤브리디스(Hebrides) 제도 동굴을 묘사한 곡으로 ‘핑갈의 동굴 서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곡은 낭만주의 표제 음악의 전형을 완성한 뛰어난 풍경화와 같다고 전해진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작곡가 멘델스존은 어린시절부터-당시로는 일상적이지 않게-여행을 좋아했는데, 특히 영국을 좋아하여 10회 나 방문했다고 한다. 23세 때인 1832년 여름에는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나 에딘버러의 아서왕의 자리(Arthur’s Seat) 언덕에 올라 지평선을 바라보며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비운을 생각하며,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의 도입부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후 하일랜드까지 올라가 스테파(Staffa) 섬에 있는 거대한 동굴의 압도 적 풍광을 맞이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 지방을 다스렸던 국왕 핑갈(Fingal)의 이름을 따 ‘핑갈의 동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멘델스 존과 동행한 친구의 기록에 따르면 대서양의 파도가 가파른 절벽의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포말을 뿌리며 부서지는 파도 속으로 기암절벽이 드러나는 절경은 스코틀랜드 특유의 색다른 분위기에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고 전해진다.

헤브리디스 제도의 동굴을 묘사한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처럼 음악은 자연의 투영이자 반영이다.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이 계절의 날씨로 우리는 여름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격동을 겪고 있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과 바다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그리다 마지막에는 서늘한 바닷바람과 함께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듯한 헤브리디스 서곡처럼 여름날의 울림을 자연이 담긴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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