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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현존하고 있나요?

  • 입력 2023.08.24 11:16
  • 기자명 최남숙(한국정신과학 연구소 교수, 뇌과학심리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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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칼국수 집에 갔다.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데이트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칼국수와 만두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조잘거리며 식당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아이들의 머리에 방울이 뿔처럼 달린 머리띠가 달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여학생들은 빨간 도복을 모두 맞춰 입었다. 싱그러운 에너지가 전해져서 나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딸과 아들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따라 나의 눈과 마음도 같이 따라갔다. 전면이 유리로 된 식당 앞에는 그 아이들 말고도 또래로 보이는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조잘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현재에 현존하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 나도 모르게 과거로 와 버렸다. 나는 순간 평화로운 칼국수 집을 떠나 과거의 고통 속으로 시간 이동을 해 버린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 희서(가명)가 중학교 1학년 때 체육대회를 하는 운동장에 와 있다. 그날은 오늘처럼 무섭게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너무 덥고 힘들다. 맛있게 먹고 나른하게 이완이 되어 있던 나의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고, 가슴은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해서 숨쉬기가 버거웠다.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고 손엔 진땀이 나고 있었다.

엄마 체육대회 올 거지?”

그럼 갈 거지, 반 엄마들 모임에서 모두 모여서 자장면 시켜 먹기로 했어. 점심시간에 엄마들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와~.”

나는 아들에게 애써 웃으며 대답을 했지만 정말 가기가 싫었다.

그날은 유난히 햇볕이 따가웠다. 희서가 있는 1학년은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응원했다. 아이들 얼굴이 뻘겋게 익고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응원하던 아이들은 서로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우리 반 엄마들은 조금 떨어진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더워 친구들과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희서는 중학교 와서 늘 그렇듯이 혼자 땡볕에 앉아 경기를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랑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하고 더워도 재미있어 보이는데 희서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몇 시간 째 햇볕과 먼지를 친구하며 그렇게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즐겁게 수다를 떠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 올리가 없다. 돗자리 위에 펼쳐놓은 과일과 중국 음식들이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즐거운 분위기를 내가 깨버릴 순 없는 게 아닌가?’ 나와 희서는 너무나 덥고 힘든 체육대회를 견뎌야 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느린 아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까? 어쩌면 우리 희서가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면 느린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늘 1등을 하길 원하는 한국에 태어났다. 엄마들은 남들보다 더 빨리 달려 1등을 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3등 안에는 들어서 상을 타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2등을 하면 1등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런 문화에서 지적 장애로 태어난 나의 작은 천사 희서는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나와 희서가 너무나 힘들었구나.’ 나는 이미 지금 여기로 돌아왔다. 그때의 가슴 답답함이 아직 남아있지만 지금 여기는 안전하다. ‘지금 여기는 뜨거운 햇볕 아래가 아니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칼국수 집이다. 음식을 맛있고 기분 좋게 먹고 있던 나를 알아차린다. 힘든 감정을 숨기며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있는 내가 아니다. 오랜 옆지기 남편과 데이트하는 기분 좋은 나다. 여기의 에너지는 생동감이 있고 활기차다. 싱그러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즐겁게 들린다. ‘지금 여기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평화롭게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보통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못한다.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고 그 트라우마의 감옥이 현재를 자유롭지 못하게 가두어 버린다. 지금은 안전하고 편안한데도 과거의 상처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그래서 현재와 미래까지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또 불안해한다.

마음의 병은 대부분 지금 여기에 깨어있지 않아서 생긴다. 우리들의 몸은 여기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은 안전한 대도 힘들어하며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때로는 과거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과 얼굴의 어느 부분이 닮은 사람을 우리는 이유 없이 싫어하기도 한다. 또 생기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결국 지금 여기에 현존해 있고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감각들에 집중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명상도 지금 여기에 깨어있게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요즘 심리치료에서도 이 방법을 많이 쓰고 있다. 나는 강의 시간에도 이 방법을 잘 쓴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있나요?” 하고 질문하면 학생들은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어리둥절해한다. 나는 다시 묻는다. 혹시 몸은 여기 있으면서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지 않냐고 묻는 거예요.” 혹시, 어제 만났던 여자 친구 생각을 하고 있거나 조금 있다가 먹을 점심 메뉴를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여기있는 게 아니죠.” 이렇게 말하면 학생들은 비로소 질문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명상에서는 현존하기 위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몸의 감각, 소리,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훈련을 하면 세상이 더 명료해지고 우리가 못 느끼고 지나가던 세상을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주위가 어수선한 것도 좋아질 수 있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뇌도 자연히 건강해진다. 뇌가 건강해지면 신체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참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약 내가 예전의 힘들었던 시간에 계속 메여 있다면 우울하게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들도 나와 함께 과거에 머물며 힘든 시간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 산다. 과거가 트라우마가 되어 가끔 아들은 과거로 돌아가 분노하며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아들을 다시 지금 여기로 데려온다. 그래서 나와 아들은 행복하고 감사하게 지금 여기에서 성장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지금 여기에는 너무나 잘 성장해준 기특한 아들이 있고, 이제 우리는 웃으며 식사도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 차 한 잔을 아들과 함께하는 여유 있는 시간도 있다. 창밖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이야기가 축복이며, 아들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바쁜 것이 행복이다.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고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제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와 이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하려는 나는 행복하다. 혹시, 아직 터널을 못 빠져나오고 예전의 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숙제일 뿐이라고.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의 현존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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