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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습관’ 버리고 나니

  • 입력 2023.11.13 16:34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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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그간 불안해하며 가슴 졸이던 환자일지의 전산화가 금년 1월에 시작됐다. 전산화가 시작된 후로는 ‘적응’ 이라는 목표가 눈에 보이니깐 쉬웠다. 아마 컴퓨터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난 30여 년간 내게 익숙해 있던 “손으로 쓰는” 기록을 버리는 것이 더욱 겁났을 지도 모른다.

변화란 왜 이렇게 불안감을 주는 것일까? 게다가 낯선 변화는 제법 철이 들은 걸로 착각하고 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곤 한다. 그러다 가끔 정신과의 대부인 프로이트를 생각해 본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 이 얼마나 우리의 행동이나 감정에 큰 역할을 하는지를 밝혀냈다. 그때까지 종교 지도자 들이나 일반인이 알고 있던 양심이나 의식세계는, 사실은 우리가 선택하는 행동의 ‘빙산의 일각’ 임을 알아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을 회전하는 혹성의 하나임과, 다윈의 종의 기원설과 함께, 인류의 3번째 획기적인 개념의 변화 를 가져왔다. 이렇게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해내서, 다시 경험해보고 치유해내는 과정이 바로 효과적인 정신 치료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자유로운 연상(Free Association)’방법이 었다. 환자가 소파에 누워서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상념들을 이야기하고, 치료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앉은 자세에서 상담을 하게 되었고, 치료시간도 단축되었다. 그리고 이런 정신치료법이 얼마나 효과가 큰가를 확인하게 된 것이 2번에 걸친 세계대전 때였다.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인간의 의식 시계가 국한되어 있고, 무의식의 강력한 힘에 소용돌이치는가를 알게 되었다. 게다가 1950년대에 발견된 ‘항정신제’ 약물들과 지난 20년간 장족의 발전을 이룬 ‘항우울제’ 의 사용으로, 정신병의 치료나 예방은 획기적인 새 시대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환자들의 얼굴을 보며, 컴퓨터 스크린을 공유한다. 컴퓨터 스크린에 이미 나타난 자신의 이름과, 나이, 환자 번호를 바라보면서 내 환자들은 ‘참여의 공동 작업’ 에 들어선다. 자신의 현재 처지, 그에 따르는 기분의 변화, 또한 몸의 고통들이 모두 스크린 위에 적혀진다.

그리고 같이 치료의 계획도 구상한다. 소아와 청소년들이 나의 주요 고객들이니 학교와 가정에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말하게 한다. 자연히 자신이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실천이 쉬워진다. 환자의 친한 친구 이름도 적어 넣는다. 친구란 보배처럼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약물이 있다면 그 이름과 정확한 용량도 물어서 기록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려면, 자신에 대한 모든 지식을 확실하게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의사까지도 함께 적어 넣는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치유의 변화가 올 수 있다.

결국 전산화는 나의 치료 방법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셈이다. 컴퓨터를 매개로 해서 환자는 더욱 적극적이고 동등한 위치로 서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 이야기를 가져다가 나와 함께 적어 넣을 것인지도 이제 환자 자신에게 달렸음을 나는 일깨워준다. 이렇게 전산화 시대는 나에게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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