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스러운 빛의 영원한 원천이여!

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

  • 입력 2023.11.15 17:34
  • 수정 2023.11.15 17:35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 어느덧 겨울이 찾아온 듯 부쩍 쌀쌀해진 날씨로 늦가을을 앞두고 있음을 체감하는 시기이다. 가을의 끝자락,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11월 지면을 통해 축하의 메세지를 전한다. 의료문화 창달과 의학 지식의 함양을 선도하는 엠디저널의 창간 24주년을 축하드리며, 각계각층의 독자분들과 필진, 그리고 엠디저널 편집국과 창간기 념호 발간의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The Academy of Ancient Music의 앨범 커버 헨델의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 연주
The Academy of Ancient Music의 앨범 커버 헨델의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 연주

독일 태생의 영국 작곡가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 1759)은 후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으로 18세기 영국 왕실을 매료 시킨 작곡가였다. 그는 오페라가 성행을 이루던 시기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당대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대중적인 음악가였으며 오라토리오 작곡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적으로 오페라, 오라토리오, 모음곡, 등을 작곡하며 민족 정서의 표현뿐만 아니라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같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바흐(J. S. Bach, 1685~1750)가 음악가의 집안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과 달리 헨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길 바랬기에 헨델의 음악 활동을 반기지 않았다. 이로 인해 헨델의 음악에 대한 열망은 더욱 높아졌고, 틈틈이 아버지가 자주 가던 궁정에 따라가 예배당에 들어가 몰래 오르간을 만져보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오르간 연주를 해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1693년 작센-바이센펠스 공작(Duke of Saxe-Weissenfels)이 어린 헨델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하사금을 내려 음악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격려했다는 일화는, 어린 시절부터 헨델의 음악적 능력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그 후 어린 헨델은 마리아교회(Marienkirche)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자코프(F. W. Zachau)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시기 그는 많은 악기를 다루면서 다른 나라 작곡가의 음악을 함께 공부하며 음악적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세상을 일찍 떠난 아버지의 뜻을 받아 17세가 되던 해인 1702년 할레 대학교(University of Halle)에서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얼마 후 학교를 떠나 할레 대성당(Halle Cathedral)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게 되었고, 이것이 헨델의 음악적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이후 1년 만에 전문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어 함부르크로 이주, 그곳에서 오페라 반주와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함부르크에서 헨델은 영국대사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1705년에는 최초의 오페라인 의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당시 전 유럽에서는 이탈리아풍 오페라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고, 메디치 가문의 초청을 받아 헨델은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후 피렌체,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등지에서 4년의 시간을 보내 며 이곳에서도 이탈리아풍의 오페라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이 시기 헨델은 음악계의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확장 시키며 음악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로마의 보넬리 궁정에서 는 대편성의 오라토리오의 초연을 하 였고, 1709년 오페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의 초연은 그를 명성의 정점으로 올려놓았다. 이후 많 은 귀족들이 헨델을 자신의 궁정 음악가로 데려가려 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크 레오폴트 (1660~1727, 이후 영국 왕 ‘조지 1세’)가 그를 고용하여 헨델은 다시 독일로 돌아와 게오르크 선제후의 궁정 예배당에서 궁정악장 (Kapellmeister)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해에 영국에 다녀오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6개월만에 영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영국에서도 이탈리아풍 오페라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아 2주만에 오페라를 완성하여 1714년 헤이마켓 퀸스시어터(Queen's Theatre at the Haymarket)에서 초연하였고 이것이 헨델의 런던 데뷔였다. 또 한번의 엄청난 성공을 이루고 런던에 서 15차례 더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이 오페라는 바로 영화 에서 음악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후 헨델은 다시 독일로 돌아와야 했는데 당시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대도시 런던을 경험했던 헨델에게는 독일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고, 1712년 가을 다시 런던으로 향한다. 이후 1730년대 말까지 이탈리아 오페라는 런던의 청중을 사로잡았고 그 중심에는 헨델이 자리잡고 있었다.

앤 여왕(Queen Anne)의 초상
앤 여왕(Queen Anne)의 초상

영국의 부르주아 청중부터 앤 여왕, 이후 조지 1세(하노버의 선제후 레오폴트)에게도 총애를 받아 그의 영국에서의 음악활동은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헨델과 영국 왕실의 음악적 교류는 ‘수상음악(Water Music)’, ‘왕궁의 불꽃놀이 음 악(Music for thte Royal Fireworks)’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앤 여왕의 탄생일을 위한 찬가(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 HWV 74)’도 빼놓을 수 없다. 영광스럽게도 앤 여왕의 생일 축하곡 작곡을 제안받은 헨델은 이또한 성공을 이루며 영국 왕실 로부터 매년 2백 파운드의 연금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의 악보 1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의 악보 1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의 악보 2
Ode for the Birthday of Queen Anne의 악보 2

이 곡은 헨델이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암브로스 필립스(Ambrose Philips, 1674–1749)의 대본으로 작곡한 세속 칸타타로 첫번째 줄인 ‘신성한 빛의 영원한 근원(Eternal source of light divine)’은 작품의 대체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713년 2월 6일 앤 여왕의 생일날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하지만, 공연 기록은 알려져 있 지 않다. 1714년 세인트 제임스 궁(St. James's Palace)또는 윈저 성(Windsor Castle)에서 공연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칸타타는 앤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고 당시 스페인 계승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위트레흐트 평화 조약(Peace Treaty of Utrecht) 을 축하하는 의미로 연주되었고, 편성은 3개의 솔로 보이스, 합창 그리고 실내악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었다. 작품의 첫 번째, 마지막 악장에서 트럼펫 솔로가 등장하여 왕실 행사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11월, 창간기념호 발간 축하와 함께 엠디저널 독자분들의 플레이리스트로 선곡되어 영감의 원천으로 남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