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삶의 원동력, ‘사람의 힘’

  • 입력 2023.12.12 14:35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

아무리 어둡고 더러운 곳이라도 사랑만 있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이 한통의 편지 속에는 그 위대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감동이 담겨있다.

1950년대 프랑스의 감옥은 더럽고 위험했다. 특히 여성용 감방에는 갓난아기들이 그 안에서 같이 지내고 있었다. 임신한 여죄수들이 낳은 갓난아기는 감옥에서 엄마와 같이 갇혀있는 신세였다. 인간 존중의 싹이 트고 있던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이 아기들에게 인간적인 배려를 베풀고 싶었다. 그래서 용단을 내리고 근사한 새 건물을 지었다. 이 죄 없는 갓난아기들을 위해서 깨끗하고 위생적인 병동을 지어준 것이다. 그리고 아기들은 더러운 감방을 떠나서 새 건물로 옮겨졌다. 물론 3교대의 잘 훈련받은 간호사들이 이들을 돌보도록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최고의 현대적 시설과 좋은 영양관리에도 불구하고 이 아기들이 시름시름 기운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잘 놀고 잘 먹던 아기들이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린 채, 잠을 자지 않고 잘 먹지도 않아서 병에 자주 걸리고 맥없이 죽어갔다. 프랑스 정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르네 스피츠(Renes Spitz)라는 의사를 시켜 원인을 알아보게 하였다.

닥터 스피츠는, 이 때 그 유명한 ‘엄마-아기 사이의 유대관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고, 이 학설이 지금 모든 정신과 의사들에게 중요한 참고서가 되고 있다.

그는 갓난아기와 그 엄마 간의 유대(사랑과 신임 가득한 믿음)야 말로 아기에게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 큰 사랑의 힘과 믿음이 있는 한, 아기들은 감옥 구석이나 균이 들끓는 악조건 속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영양이 좋고 위생적인 환경으로 옮겨진다 하여도, 이 유대와 사랑이 없으면 생존할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골자다.

지금 21세기의 첨단 과학 아래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갓난아기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모체로부터 충분한 면역체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병 감염될 확률도 사실은 아주 적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과학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닥터 스피츠는 ‘사랑의 힘’ 이 어떤 육체적인 보호보다도 강력한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엄마가 죄수의 신분이라고 해서 자신의 아기를 덜 사랑하겠는가, 그런 엄마로부터 갑자기 떨어진 아기를 ‘영아 우울증 (Anaclitic Depression)’에 걸리고, 그것 때문에 살 기력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닥터 스피츠는 이 아기들에게 제2의 엄마를 갖게 함으로써, 생명을 찾게 해주었다. 즉 3교대로 어른이 바뀌는 엄마 대신에 한명의 모보가 ‘엄마 역할’을 하며 사랑의 관계를 새로이 맺게 한 것이다.

설과 같은 명절이 되면 우리는 고향에 두고 온 그리운 관계들을 안타깝게 원한다. 엄마의 포근한 가슴, 냇물이 흐르던 마을, 아련한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더욱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눈을 돌리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려는 이들이 많아진다. ‘제2의 관계’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의 유대’를 만들다보면 살아갈 힘이 생기리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