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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그 풍성함이여

  • 입력 2023.12.13 12:10
  • 기자명 신종찬(시인,수필가, 의학박사 / 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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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입동(立冬)을 지나 가죽나무잎들은 거의 다 떨어졌는데도, 아직도 풍성하게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있다. 느릅나무들이다. 쌀쌀한 아침 출근길, 천변에 차를 멈추고 휴대전화 셔터를 누른다. 잎들 사이에 풍성한 손톱만한 비늘 모양의 갈색 열매들도 멀리 날아가려 가벼운 날개들을 달았다. 그래, 우리 모두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겨울이라도 떠나자.

서울의 한강이나 그 지류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가 느릅나무다. 느릅나무 심지어 도로변 틈새를 비집고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양재천, 중랑천, 탄천 등 둔치 공원에 심어 숲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로변까지 절로 난 크고 작은 느릅나무들도 무척 많다. 느릅나무는 동북아 3국은 물론 유라시아대륙과 북미의 온대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며, 인간과 얽힌 숱한 얘기들이 있다. 아마도 느릅나무가 목재로 뿐만 아니라 잎과 줄기와 뿌리의 껍질까지도 소중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리라.

느릅나무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갈잎큰키나무다. 다 자라면 키는 15m 이상이고 줄기 둘레는 한 아름 정도가 보통이나, 강원도 영월의 보호수 느릅 나무는 키 20m, 둘레가 네 아름이 넘는다. 잎은 세로 4cm, 가로 2cm 긴 타원형이며, 잎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바탕에 주름이 있다. 특이하게도 잎맥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이 아니라 한쪽이 작다는 점이 다른 나무들과 쉽게 구별된다. 옛날 엽전을 느릅나무 잎을 닮았다고 유전(楡錢), 혹은 유협전(楡莢錢)이라고도 했다. 「삼국사기」에 신라에서는 적어도 벼슬이 6두품 이상이 아니면 느릅나무로 집짓기를 금할 정도로 재질이 좋은 나무다. 느릅나무 목재는 물속에서 썩지 않고 버티는 힘이 강하다. 느릅나무 목재의 겉 부분인 변재(邊材)는 희나, 속에 있는 심재(心材)는 검은데 심재가 두꺼울수록 좋다고 한다.

느릅나무에는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은 풍요로운 땅 미드가르드(Midgard)를 걷다가 우연히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그중 한 그루는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만들어 ‘아스크르(Askr)’라 하고, 다른 한 그루는 느릅나무로 여자를 만들어 ‘엠블라(Embla)’라고 했다. 느릅나무는 단군신화의 웅녀인 셈이다. 중국의 「시경 진풍 (陳風)」의 「동문지분(東門之枌)」에서도 느릅나무 밑에서 청춘남녀가 춤추고 노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동문에 느릅나무 완구에는 상수리나무

(東門之枌 宛丘之栩 동문지분 완구지허)

자중의 자식이 그 아래에서 덩실덩실 춤추네요

(子仲之子 婆娑其下 자중지자 파사기하)

좋은 날 아침을 택하니 남쪽 방향 원씨인데

(穀旦于差 南方之原 곡단우차 남방지원)

삼베길쌈 안 하고 시장에서 덩실덩실 춤추네요

(不績其麻 市也婆娑 부적기마 시야파사)

좋은 날 아침에 가는데 언덕 넘어 몰려가네요

(穀旦于逝 越以邁 곡단우서 월이종매)

그대 당아욱처럼 예쁜데 산초 한 줌도 주네요

(視爾如、貽我握椒 시이여교 이아악초)

이것은 중국 ‘5호 16국 시대’ 성한(成漢)의 제3대 왕 유공(幽公, 334~338) 시절에 대한 글이다. 유력한 집안의 남녀가 생업을 버리고, 언덕이나 저잣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등 음란하고 거친 풍속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느릅나무, 상수리나무 아래 서 춤추던 꽃같이 어여쁜 아가씨가 고소하고 기름진 귀한 산초 열매 한 줌까지 선물로 주고 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성(660년)한 직후 원효대사는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준다면(誰許沒柯斧 수허몰가부),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斫我支天柱 작아지천주)”라고 외치고 다녔다. 태종무열왕(김춘추)은 그 뜻을 눈치채고 과부가 된 딸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를 맺어주기 위한 작전을 폈다. 원효는 경주 남천 느릅나무 다리(유교楡橋)를 건너다 일부러 물속에 빠졌고, 옷 말린다는 구실로 김춘추 집에 들어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느릅나무는 물가에 잘 자란다. 「경국대전」에 청명이 되면 임금은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비벼서 불을 일으켜 각 관사에 내려 보내는 ‘개화(改火)’란 행사를 매년 다섯 번 했는데, 청명 때의 개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한다.

느릅나무와 관련된 속담도 있다. 더욱 무서운 적이 뒤에서 노리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먹이만 쫓는다는 뜻으로 당랑규선 (螳螂窺蟬)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이 진나라를 공격할 때 신하가 당랑규선이라는 얘기를 해 장왕이 진나라로 쳐들어가는 것을 중단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느릅나무에 앉아 이슬을 마시는 매미를 뒤에서 잡아먹으려는 사마귀는, 꾀꼬리가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며, 꾀꼬리는 화살을 겨누는 사냥꾼을 알지 못하며, 사냥꾼은 그 나무 아래 깊게 팬 웅덩이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나무 위의 꾀꼬리만 잡으려고 했다는 얘기다.

한편, 백성들이 느릅나무와 친한 이유는 따로 있다. 느릅나무는 흉년에 주린 백성들 배를 채워주는 소중한 구황식품이었다. 느릅나무 뿌리는 아주 두툼한 부름켜로 싸여 있는데 유근 피(楡根皮)라 하고, 가지의 두툼한 껍질을 유피(楡皮)라 하는 데 약재이기도 하고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먹었다. 천연 항생물질을 함유한 유근피는 고름을 잘 빼내서 등창 치료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봄이면 느릅나무 잎도 아주 맛있는 먹거리가 된다. 그래서인지 초여름에 느릅나무 잎을 벌레들이 갈아 먹어 완전히 발가벗겨져 죽은 듯하지만, 여름에는 새잎으로 다시 무성해진다. 이렇게 쓸모 있는 나무라 동서양 모두에서 마을 가까이에 키워 고목들이 많았다고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선생도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楡槐老多穴 유괴노다혈), 어찌 그곳에 깃들지 않느뇨?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楡穴款來啄 유혈관래탁),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오.”라는 시를 지어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늙은 느릅나무를 소재로 썼다. 미국에도 느릅나무가 널리 분포하는데,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에서, 70세 된 아버지 카보트가 사별한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을 생시에 농장 앞 늙은 느릅나무처럼 혹사했다는 데서 희곡의 제목이 유래한다. 공전의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 루시우스 말포이 의 마법 지팡이도 느릅나무와 용의 심근(心筋)으로 만들었다.

참고로 주변에서 흔히 있는 느릅나무는 느릅나무가 아닌 참 느릅나무다. 느릅나무는 껍질이 검고 세로로 길게 갈라지며 잎 가장자리가 이중톱니이고, 참느릅나무는 껍질이 회갈색으로 두꺼운 비늘처럼 떨어져 나오며 단순 톱니잎이다. 그 외 느릅나무 아종인 난티나무와 비술나무가 중부 이북의 추운 지방에서 자란다. 난티나무는 잎끝이 개구리 발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비술나무는 오래된 줄기에 세로로 마치 흰 페인트칠을 한 것 같은 기다란 반점이 있다. 비술은 벼슬이란 뜻으로 잎이 마치 닭벼슬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도 동대문구 이문동에 둘레가 3m 이상인 보호수 비술나무들이 몇 그루 있는데, 키 20m 이상 거목들이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단오 무렵이면, 초록빛 느릅나무 잎들도 무성하게 반짝거렸다. 할머니께서는 어린 내게 서낭재에 있는 느릅나무 연한 잎들을 훑어오라고 바가지를 주셨다. 나는 아버지 등창 치료를 위해 유근피를 캔 적이 있기에 느티나무 있는 곳을 잘 알았다. 어린 나는 높은 가지에 있는 잎들은 따지 못하고 처진 가지에서만 딸 수 있었지만 금방 한 바가지를 땄다. 느릅나무잎들을 된장찌개에도 넣거나 콩가루에 무쳐 쪄먹으면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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