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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 입력 2024.01.15 15:34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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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을 치료자가 만났습니다. 어떤 마음, 어떤 태도로 만나야 할까요? 또 만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치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환자와의 관계 형성입니다. 그게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가 확실히 확립되고 그 바탕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그 이해가 바로 치료입니다.

환자와의 관계에서 치료자가 경계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매너리즘’입니다. 환자를 대할 때 ‘늘 오는 사람 가운데 하나’ 쯤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환자도 그럴까요? 환자는 우선 병원 오기도 힘들어합니다. 자기가 좀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이대로 살지 뭐.’ 하며 포기하는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병원 문을 두드리기까지 수도 없이 망설입니다.

시드니 타라초우가 쓴 <정신치료 입문(An Introduction to Psychotherapy)>을 보면 환자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절대로 병원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다’는 정도의 자각이 들어야 병원에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 환자를 치료자가 무성의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환자의 절박한 마음에 호흡을 맞춰 그 마음과 만나야 합니다.

치료자는 자기만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환자 쪽에서도 치료자를 딱 노려보면서 실력이 있나 없나, 믿을 수 있나 없나, 자기를 돈 버는 수단으로만 삼는 건 아닌가 따위를 온몸으로 민감하게 진단합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그러한 엄중한 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걸 통과하지 못 하면 환자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않으면 치료도 뭐고 무의미한 일입니다.

일단 환자의 검증을 통과한 다음에는 치료자 본인의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벌거나 명성을 쌓는 수단으로 환자를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정신치료자는 주식 전문가를 상당하면서 자꾸 주식 정보를 물어봤다 고 합니다.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외과 의사가 수술 전에 손을 깨끗하게 하듯이, 정신치료자는 환자를 대할 때 순수하게 그를 이해하고 돕겠다는 의도만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환자를 보는 순간에는 오로지 환자를 보는 데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야 합니다. 그것도 여유있게 해야지 너무 집중하는 티를 내면 안 됩니다. 환자가 부담을 느끼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자가 치료자를 보고서 ‘저 사람이 나에게 집중하고 있구나!’ 하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잠을 푹 자고, 식사를 잘 하는 등의 컨디션 관리 역시 치료자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면 아무래도 환자를 만날 때 산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더라도 환자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그걸 내려놓고 환자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면서 환자가 뭔가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일 때 빨리 캐치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치료자는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요소를 만족해야 비로소 환자가 ‘이 치료자는 믿을 수 있다 나를 치료하려는 마음만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보다 더 나를 위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때 치료자 – 환자 관계가 제대로 확립됩니다. 이 토대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치료자와 환자가 ‘치료 동맹’을 맺고 치료 작업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동맹이라는 게 누군가와 같은 편을 맺고 적을 공략하는 것이듯, ‘치료 동맹’이란 환자에게 있는 건강한 면과 불건강한 면 가운데 치료자가 환자의 건강한 면과 동맹을 맺고 불건강한 면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일컫습니다.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치료적 관계가 확립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치료자는 최우선으로 치료자 – 환자 관계를 확립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춤으로 치면 서로 스텝을 잘 맞추는 것입니다. 몇 번을 만나든 항상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만날때마다 이런 상태에서 뭔가 은밀한 작업들을 계속 해나가는 게 치료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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