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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목서, 금목서, 달나라 계수나무

  • 입력 2024.01.16 13:23
  • 기자명 신종찬(시인,수필가, 의학박사 / 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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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되는 동요 「반달」은 우리 겨레 마음의 고향이다. 윤극영(1903~1988)선생이 작사, 작곡하여 1924년에 발표한 이 창작 동요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서양식 동요의 효시(曉示)다. 8분의 6박자의 약간 느리면서도 슬픈 아름다운 곡조와 7/5조 고유 음절의 가사가, 당시 나라 잃은 설움뿐만 아니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계수나무는 어떤 나무이고 토끼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리 일행은 그림 같은 만리포 해변을 돌아 천리포수목원으로 들어가 오른편으로 연못을 끼고 건생초지원으로 향했다. 노랗게 물든 낙우송들이 청잣빛 가을하늘에 높이 솟아 있었다. 연못 속에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늦가을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었다. 솜송이처럼 부푼 억새꽃들은 청잣빛 하늘에 일렁이며 자꾸만 그림을 그려댄다. 분홍, 빨강 애기동백들이 벌써 봄이 온 줄 착각하는지 다투어 피어있다. 이에 질시라 호랑가시나무와 낙상홍의 붉은 열매들이 풍성하게 달려 가지들이 활처럼 휘어졌다. 어디서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와 두리번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향기의 근원을 찾았다. 양지쪽에 자라고 있는 구골나무였다.

구골나무
구골나무
금목서
금목서
은목서
은목서

구골나무는 금목서, 은목서, ,구골목서, 박달목서와 함께 물푸레나뭇과 목서(木犀)나무 종류에 속한다. 예부터 중국에서 계수나무란 특정한 나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 속 동경의 나무였다. 그런데 그 나무에 대해 문인(文人)들이 여러 작품을 남기면서 자연스럽게 은목서나무를 계수나무로 여기게 되었다.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중국 전설이 있다.

그 옛날 중국에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이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고 달나라로 귀양 가서 모든 계수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기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계수나무를 찍어내도 상처가 난 곳에서 새순이 금세 돋아났다. 애처롭게도 오강의 도끼질은 계속되었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계속 번성하였다.

또 다른 옛 얘기로 항아(姮娥)라는 여인은 남편 예(羿)가 신선(神仙)인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어렵게 불사약을 구해다 놓고 잠깐 외출하자, 혼자서 두 사람분을 한꺼번에 먹어 치우고 그대로 달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여인은 달나라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하고 토끼로 변했다고도 하나, 항아는 나중에 달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이런 전설을 바탕으로 계수나무를 베어내어 부모님과 같이 살 집을 짓는다는 글. 또 다른 얘기들이 생겨났다. 이런저런 설화들이 뒤섞여서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곳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으로 변하여 많은 시나 노래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등장하게 되었다.

시성(詩聖) 이태백(701~762)은 “어릴 때는 달을 몰라(少時不 識月) 흰 쟁반이라 불렀지(呼作白玉盤), 신선이 두 다리를 드리우고(仙人垂兩足) 계수나무는 또 얼마나 무성할까(桂樹何團團)”라 노래하였다. 이에 질세라 후학(後學) 당(唐)의 왕건(王建767~830, 十五夜望月寄杜郞中)은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중정지백수처아 中庭地白樹棲鴉

흰 달빛 가득한 뜰, 나무엔 까마귀 깃들고

냉로무성습계화 冷露無聲濕桂花

찬 이슬 소리 없이 계수나무꽃을 적시는데

금야월면인지만 今夜月明人盡望

오늘 밤 달이 밝아 모든 이가 다 보고 있고

부지추사재수가 不知秋思在誰家

누군가는 가을을 추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노라

이 나무가 난데없이 목서(木犀, 나무 무소)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목서나무는 하늘에서 영은산(靈隱山)에서 내려왔는데, 가을이 되면 그 향기가 먼 곳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이 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목(李木), 이서(李犀)라는 두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의 계화(桂花)의 향기가 땅에 떨어져서 싹이 터서 이 나무가 되었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었고, 이 두 사람의 이름자를 따서 목서(木犀)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목서나무류는 늘푸른 관목으로 꽃은 11월~12월에 피고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관상수로 많이 심는다, 원산지는 중국, 일본, 대만, 한국의 남부 도서지방이다. 잎에 톱니가 없는 중국원산 금목서나 간혹 있는 은목서에 비해 한국 원산인 구골나무와 박달목서는 잎에 톱니가 있고 꽃잎이 뒤로 젖혀지는 점이 특징이나, 향이 진한 점 등 다른 것은 목서나무들과 같다. 목서 꽃들은 통꽃이나 꽃잎이 4갈래로 갈라진다. 박달목서 잎은 톱니가 아주 깊어 호랑가시나무와 구별이 쉽지 않다. 감탕나무 과인 호랑가시나무는 가을에 붉은 열매가 열리고 꽃은 봄에 핀다.

한편 학명으로 계수나무는 중국과 일본 원산으로 키가 아주 큰 낙엽수로 목서와는 완전히 다른 나무다. 나무껍질과 줄기는 은행나무처럼 보인다. 입은 하트모양이며 나무에서 초콜릿 향이 나고 단풍이 진한 노란색이거나 아주 빨갛기도 하다.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며 여러 공원에서도 볼 수도 있지만 광릉수목원 탐방로 옆에도 몇 그루 큰 나무를 볼 수 있다.

목서나무의 학명인 Osmanthus fragrans는 “향기가 강한 꽃” 이란 뜻이다. 봄에 피는 서향(瑞香)나무를 천리향이라 하고 가을에 피는 목서류를 만리향이라 하는 걸 보면 향기가 얼마나 멀리 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목서향은 아주 자극적으로 진하지는 않다. 달콤하고, 상큼하고, 고급스러워 샤넬(channel) No.5. Love Osmanthus가 바로 목서 향이다. 옛 선비들도 목서나무를 가까이 심어놓고 꽃이 피면 벗들에게 꽃 사연을 적어 보냈다고 한다.

고요하여 달빛인 줄 알았습니다 / 보이지 않아 바람인 줄 알았습니다 / 들리지 않아 영원히 숨어 사는 줄 알았습니다 / 가을 하늘 닮아 꽃인 줄 몰랐습니다 / 떠난 후에야 눈시울이 젖은 줄 알았습니다 / 그 향기 겨드랑이 깊이 박힌 줄 몰랐습니다 / 따스함에 흠뻑 젖어 찬 서리 내린 줄도 몰랐습니다 / 그대 한 그루 면 충분한 줄도 몰랐습니다  -「은목서/신종찬」-

천리포수목원은 미국인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2002) 박사가 한국에 귀화하여 1962년부터 터를 잡아 세운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이다.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북쪽 천리포 해안에 있는 한국 최초의 사립 수목원으로서 설립자가 한평생 식물을 심고 관리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수목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식물들도 16,830여 종류로 국내에서 제일 많은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민병갈 박사 뒤를 이어 지금은 귀화 미국인인 의학박사인 인요한 박사가 수목원장을 맡고 있다. 참으로 훌륭한 서양인 선비님들이다.

우리 옛 선비들이 화초를 가꾸고 나무를 사랑하는 철학적 목표는 어디에 있었을까? 유가(儒家)는 완물상지(玩物喪志, 기호품에 마음을 빼앗겨 뜻과 행할 바를 상실함)을 경계하였고, 수목과 화초를 기르고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윤리적 덕성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조선 세종 때 강희맹은 화초를 키우는 뜻은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는 데 있다고 했다. 호연지기란 단순히 넓고 큰 마음이란 뜻이 아니다. 반드시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할 수 올바른 용기를 가진 큰마음이란 뜻이다. 그날 수목원에 같이 간재만, 종, 오섭, 관, 동기, 우열, 순찬과 그 부인들, 목서향 같은 친구들 얼굴을 떠올려본다. 소학에 친구를 사귀는 이유를 ‘인(仁)을 두텁게 하는 것(以友輔仁)’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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