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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에이징 - 나이듦의 거룩함을 논하다

  • 입력 2024.02.02 13:07
  • 기자명 박상철 (전 서울대 의대 생화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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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400개가 넘는 가설이 난무했다, 노화란 그만큼 정의가 힘든 개념이다. 또한 사람의 삶이 으레 그렇듯이, 노화 역시 단편적으로 보기엔 너무 많고 복잡한 측면들이 많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를 다 포괄할만큼 만족스러운 가설이 없고, 그렇기에 단순하고 간편하게 규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몇몇 가설은 여타 개념에 비해 대표성을 가지고 있고, 연자 본인은 개중에서도 ‘반응성’이 노화의 핵심이라고 꼽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응성이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노화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젊은 세포보다 강인한 늙은 세포

생명체는 젊은 것이 늙은 것보다 건강하다는 것은 별 이견이 없는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연자 본인도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간단한 실험을 했는데, 이를 정면으로 뒤엎는 결과가 나오며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지 지에 등재된 바 있다. 젊은 세포보다 강인한 늙은 세포, 믿어지시는가?

연자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진행 해봤다. 이 실험은 젊은 세포와 늙은 세포가 죽을때까지 단계를 높여가며 자외선을 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둘중 누가 더 쉽게 죽냐는 실험이었다. 나이든다는 것은 죽는다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의외로 젊은 세포는 죽어가는데 늙은 세포는 잘 안 죽었다. 오타가 아니다, 실제로 늙은 세포가 젊은 세포보다 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논란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물론 실제 현실과 각종 변수들이 통제되는 세포 단위의 실험에서 차이점이 생기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상식에 반대되는 것은 작은 세포 단위의 이야기지, 개체 단 위에서는 또 다를 가능성이 충분했다.

연구자들은 뜻밖의 결과를 직면하자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개체, 즉 살아있는 생명체인 젊은 쥐와 늙은 쥐를 놓고 실험하기로 했는데, 자외선만으로는 쥐를 죽이기 힘든 만큼 DNA를 파괴하는 물질을 주사하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연구자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젊은 쥐의 간세포는 쉽게 파괴되며 쥐 역시 그렇게 죽는데, 정작 늙은 쥐는 잘 버텨냈다.

해당 연구결과는 네이쳐지에 등재되어 전 세계 의학계 뿐 아니라 전체 과학계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졌다. ‘젊은 것이 더 강한 것이 아닌가?’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

이는 그야말로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격언인 ‘강한 자가 살아 남은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문구를 떠올 리게 한다. 하지만 그런 ‘인문학적 강함’은 보통 육체적 강인함과 생명력보다는 세월이 가져다 준 지혜와 모략을 의미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문학 측면이 아닌 과학적 강함은 어디서 나올까?

왜 반응성이 좋은 젊은 쥐가 더 잘 죽냐? 연자는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실제로 이에 관한 연구 논문을 빠르게 늘어 한 7,80편 정도는 순식간에 나온 것 같다. 결론은 아래와 같다.

증식보다 생존

젊은 세포가 반응성이 좋고, 늙은 세포는 반응성이 떨어지는 것은 맞다. 바로 그 요소가 이러한 차이를 만든다. 증식 요소든 사멸 요소든, 젊은 세포는 잘 받아들이고 잘 수행한다. 말하자면 빠른 반응성 때문에 거꾸로 취약하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늙은 세포는 둘 모두에 대해 반응성이 떨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사멸 요소는 세포 표면의 세포막까지는 통과할 수 있는데, 세포핵으로는 침투하지 못한다. 증식 신호의 경우는 세포막 내부와 세포핵 둘다에 침투하기 힘들다. 바꿔말하면 늙은 세포가 상대적으로 증식이 힘들지만, 사멸은 부분적으로나마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의 경고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통계로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인 8,810,086명 중 100세 이상의 환자는 60명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중 사망자는 3명, 즉 치사율이 5%에 불과했다. 평균 치사율인 1.2%보다는 높지만, 60~90대의 노인 환자 치사율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이다.

이런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환자가 초고령이니만큼 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와 처리 강도는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격리를 철저히 한 노출 저하의 측면, 그리고 이상이 생기자 마자 조기에 처치할 수 있는 조기 치료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연자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저질환’을 꼽는다. 실제로 코로나 치사율을 결정하는 것은 기저질환, 즉 당뇨나 고혈압 등 생활습관으로 인한 질환이다. 이 초고령 환자 들이 100세까지 문제없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바로 이런 생활습관적 기저질환에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로 다소 건강이 약화되더라도, 이는 여타 만성 질환을 겪는 ‘상대적으 로 젊은’ 노인들보다 건강하다는 의미다.

이로써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고령사회에 대한 경고를 남겼다. 그리고 기저질환이라는 위험성을 통해 개인 생활습관의 개혁을 요구하며, 공공보건에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 정 비를 요구했다.

다시 정리해보자, 노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증식을 포기하고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젊은 날 이미 이뤄놓은 종의 번식과 번영이라는 과업은 젊은 개체들에게 넘겨주고, 이제 는 살아남아 이들을 돕고 세월에서 온 가르침을 남겨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삶은 죽어가는 것이 아닌, 살아남으려는 거룩한 노력이다. 그렇기에 하얗게 센 머리는 젊음보다 강인하며 오래 살아남는다.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의 비결 - 자기부양

나이들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이를 답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여야 할 것이다. 장수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삶의 가치는 오래 사는 만큼 비례적으로 증폭될 수 없는가?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강은 어떻게 지키는가?

연자가 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수십년간, 가장 신경써 온 것의 하나가 ‘건강하게 나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자는 수백 수천의 건강하고 왕성한 초장수 인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연구해왔다.

그 ‘건강한 백세인생’의 비결은 간단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90살을 넘어선 그들은 매일 여전히 왕성한 운동을 하고, 스스로 운전해 이동하며, 미래를 꿈꾸고 이뤄나가고 있다. 잠시 상상해보자, 매일 운동하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삶을. 그리고 반대로 그저 집에 앉아 TV화면을 보다 때가 되면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삶을. 우리에게는 명백히 전자의 삶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고령사회의 행복의 해법은 자기부양이고, 자강, 자립, 공생의 개념이 필요하다. 장수의 의미와 가치, 삶의 말미에 마주하는 인생의 평가는 이로써 답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장수 사회 핵심은 자기가 스스로의 인생을 멋지게 책임질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과 공적 배려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 글을 통해 이에 대한 필요성이 설명되었길 바란다.

생명은 쉼이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꿈이 있는 한 인간의 존엄은 손상될 수 없으며, 손상되어서도 안된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이라 했다. 백리를 가려는 자는 구십리를 가고서 반쯤 갔다고 여긴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려운 만큼 끝마칠 때 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100세 인생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은, 90세를 먹어도 아직 반밖에 오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도록 하자.

* 본 내용은 헬시에이징학회 2023 추계 학술대회의 강연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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