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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블루, 초연 100주년을 축하하며

Rhapsody in Blue to celebrate the 100th anniversary

  • 입력 2024.02.16 12:49
  • 수정 2024.02.16 12:50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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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대한민국 새로운 천년

甲辰年 새해

음악문화를 통해 미국의 문화유산을 찾아가다..

눈꽃부터 동백, 매화까지 겨울의 막바지에 다가가고 있는 2월이다. 겨울과 봄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이 계절 제자리를 지켜주는 자연과 같이 일상에서 우리 곁에 있는 음악들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다. 일상 속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과 TV 매체, 영화, 만화, 문학작품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스며들어있다.

최근 클래식 음악계는 다양한 젊은 연주자들의 활약에서도 알 수 있듯 중세, 바로크, 고전, 낭만, 후기 낭만,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기획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진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은 순수예술의 영역에 꽤 큰 비중을 가졌다. 과연 순수예술은 어떻게 대중예술과 구분될까. 장르인가, 예술가의 작품 의도인가, 아니면 제작 시스템에 있을까.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 것은 어찌보면 오래된 관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미 인식 속에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과 예술성을 가미하여 제작한 콘텐츠를 접하고 있기에 점차 그 경계선이 유연해지고 있다.

1925년 7월 20일에 발간된 타임지(TIMES)의 표지를 장식한 거슈윈
1925년 7월 20일에 발간된 타임지(TIMES)의 표지를 장식한 거슈윈

물론 이러한 클래식의 대중화 시도는 이전부터 점차 이루어져 왔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은 음악의 시대 구분에서 우리가 현대음악이라 부르는 20세기 전반에 미국적 성격과 스타일을 가장 잘 발휘시킨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짧은 삶에도 불구하고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지난여름 엠디 지면을 통해 소개한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중 ‘서머타임 (Summertime)’,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피아노 협주곡 F장조(Concerto in F Major),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랩소디 인 블루>는 솔로 피아노와 재즈 밴드를 위한 곡으로 ‘20세기 최고의 팝클래식’, ‘뉴요커의 라이프 스타일을 묘사한 음악’, ‘최초의 심포닉 재즈’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이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이유 중 하나는 198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lines)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데 있다. UA는 1987년 매년 30만 달러(현재 기준 약 4억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랩소디 인 블루>의 저작권 라이선스를 구입했다. 20세기 이후 콘서트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곡임에도 상업용 라이선스를 체결한 것은 UA가 최초였다. 이 <랩소디 인 블루>가 올해 초연 100주년을 맞이한다.

 

재즈와 예술음악과의 만남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재즈시대(The Jazz Age)를 맞이했고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재즈 밴드의 리더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동한 폴 화이트먼(Paul Whiteman, 1890~1967)은 ‘재즈’ 곡을 콘서트 스타일로 연주하곤 했다. 그는 재즈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고자 했고, 그러던 중 거슈윈의 한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16년 뉴욕 에올리언홀의 외관 (이미지출처 Wikimedia Commons)
1916년 뉴욕 에올리언홀의 외관 (이미지출처 Wikimedia Commons)

1924년 2월 12일 뉴욕 에올리언홀(Aeolian Hall)에서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밴드 리더인 폴 화이트먼과 그의 악단 Palais Royal Orchestra이 주최한 “현대음악의 실험(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라는 타이틀의 음악회가 열렸다.

거슈윈은 당시 1막 길이 정도의 오페레타(operetta, 작은 오페라를 의미하는 라이트 오페라) 등 대중음악을 주로 작곡했다.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 작업의 경험이 없었을뿐더러 <랩소디 인 블루> 초연 전까지 관현악곡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화이트먼은 거슈윈에게 실험적인 곡을 의뢰했다. 당시 뉴욕에서 ‘재즈의 왕(King of Jazz)’이라 불린 화이트먼은 거슈윈의 재즈 오페라(1막 구성의 오페레타) <블루 먼데이(Blue Monday)>를 보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이후 그는 거슈윈에게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한 곡을 작곡해 함께 연주하자’ 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초연을 두 달 앞둔 시점에도 거슈윈은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뮤지컬 코메디 <Sweet Little Devil(1924)>의 공연을 3주 앞두고 곡 수정 작업이 한창이었기에 화이트먼의 작곡 의뢰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4년 1월 3일 늦은밤까지도 그의 형이자 작사가인 이라(Ira Gershwin, 1896~1983)와 거슈인의 친구 작사가 버디 드 실바(Buddy DeSylva, 1985~1950)와 브로드웨이에서 당구 게임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Ira가 1월 4일자 뉴욕 트리뷴 (New York Tribune)에 실린 ‘미국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사 하단의 “조지 거슈윈이 재즈 협주곡을 쓰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 거슈인에게 전하여 잊고있던 작곡 의뢰를 떠올리게 했다.

거슈윈은 소식을 접한 직후 작업으로 복귀하여 1월 7일부터 곡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재즈와 예술음악의 조합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는 당시 준비중이던 뮤지컬 리허설을 위해 보스턴으로 향하던 기차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곡 구조와 악상을 떠올렸다. 마치 미국 대공황 직전의 불꽃과 같이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미국적인 분위기가 녹아든 음악이었다. 결국 그는 5주 만에 <랩소디 인 블루>를 완성한 것이다.

그로페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 첫페이지 (이미지출처 University of Michigan School of Music)
그로페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 첫페이지 (이미지출처 University of Michigan School of Music)

하지만, 관현악법에 미숙한 거슈윈은 처음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스케치를 완성했고, 초기 제목은 <아메리칸 랩소디>였다. 이후 형 Ira가 미국화가 휘슬러(James A. McNeill Whistler, 1834~1903) 의 전시회를 관람하던 중 떠오른 제목인 “랩소디 인 블루”를 제안하였고, 화이트먼과 오래 작업한 그로페(Ferde Grofé, 1892~1972)가 독주 피아노와 재즈밴드용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아 비로소 곡이 완성되었다. 이후에는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으로 재편성 되기도 했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한 실험

당시 화이트먼은 왜 콘서트명에 ‘실험’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당시 클래식 음악 평론가와 지식인들 앞에서 하는 프리 콘서트 렉처(Pre-Concert Lecture, 공연 전 작품에 대해 해설하는 강의)를 위한 것으로 교육적인 목적을 띄었다.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이해하고 교향곡과 오페라를 즐기게 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한 무대였고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클래식 음악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프로그램 러닝타임은 상당히 길었다. 전체 프로그램 상 26개의 악장에 섹션도 11개나 되는 숫자였다. 반면, “현대음악의 실험”라는 타이틀과 달리 프로그램은 경음악 위주의 팝송의 밴드용 편곡이나 엘가의 행진곡 구성이었다. 많은 작품들이 서로 비슷하게 들렸고, 홀의 환풍기도 고장난 상태라 실내 열기로 인해 청중들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피날레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바로 이전 순서에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가 무대에 올랐고 신선한 감각과 인상적 선율, 강렬한 미국적 색채 그리고 거슈윈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로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그의 나이 25세에 이룬 업적이다. 이듬해 거슈윈은 미국 출신 작곡가로는 최초로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후 그는 명성과 부를 축적하며 승승장구 했다.

랩소디 인 블루 초연 당시 포스터 (이미지출처 The Syncopated Times)

초연 성공 이후에도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과의 일화도 유명하다. 라벨이 공연차 미국에 왔고 그를 찾아가 스승이 되어달라고 한 거슈윈에게 라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은 저절로 샘처럼 솟아나는 듯한 멜로디를 가진 사람이다. 일류의 거슈윈이 되는 것이 이류 라벨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거슈윈의 타고난 멜로디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20세기 거장인 라벨도 알아본 것이다.

<랩소디 인 블루>의 상징과 같은 도입부의 클라리넷 글리산도 (glissando,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르게 연주하는 것)는 사실 공연 전 드레스 리허설(Dress Rehearsal, 실제 공연과 똑같 이 진행되는 공연 전 총연습) 중 우연히 만들어진 부분이라고 한다. 게다가 당시 거슈윈은 솔로 피아노 파트는 악보에 옮기지 못한 상태 였고, 콘서트에서 즉흥연주로 만든 부분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랩소디 인 블루>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첫 음반은 당시 흔치 않은 기록인 백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다.

이후 거슈인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했다. <랩소디 인 블루>는 1979년 우디 앨런의 영화 <맨하탄>에 사용되어 뉴욕을 “거슈윈의 음악이 요동치는 도시”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 일본의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엔딩곡, 가수 변진섭의 ‘희망사항’ 마지막 부분, 가장 최근에는 영화<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 화면에서 폭죽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적 자본주의가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디카프리오의 첫 등장 신에 사용된 랩소디 인 블루 (이미지출처 Panorama Cinema)
미국적 자본주의가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디카프리오의 첫 등장 신에 사용된 랩소디 인 블루 (이미지출처 Panorama Cinema)

이처럼 다양한 작품에서 사용되어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도 음악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의 시도는 대중의 심미적 경험을 충족시킨다.

재즈를 접목시킨 관현악 편성과 기존의 오페라 창작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음악적 경지를 개척한 조지 거슈윈은 현대 대중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비록 병환으로 40세 이전에 생을 마감했으나 재즈를 고전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지난 1924년 당시 폴 화이트만과의 약속을 궁극적으로 이루어낸 것으로 본다. 나아가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자랑할만한 음악 유산이 ‘재즈’라는 인식을 갖게한 기틀을 마련한 거슈인의 작품들을 엠디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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