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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사회는 탄수화물 중독에 관대한가

음식 아래 숨겨진 수많은 밥공기들

  • 입력 2024.03.13 18:00
  • 기자명 박찬영(어성초한의원 원장, 대한한의통증제형학회 발효효소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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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우리 주변에 마약 중독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나, 특히 담배로 인한 니코틴 중독은 아주 흔하게 볼수 있다. 이런 사람들 중 치료가 요구될 정도로 심하게 중독에 걸리고도 끊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얼마나 의지가 약하면 끊지를 못할까’하는 한심한 생각마저도 든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생긴다.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중독 증상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만큼(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탄수화물 중독증에는 왜 이런 심각한 문제인식이 없는 것일까?

왜 탄수화물 중독에는 관대할까?

이는 크게 두가지 이유때문인 것 같다. 첫째, 사람들이 위험하다 생각하는 술 • 담배 • 마약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보니 굳이 먹고 마시지 않 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즐기다가 중독에 걸리는 것이다. 자연히 그에 대한 경계심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반면 탄수화물은 단백질 • 지방과 함께 3대 영양소중의 하나다.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려면 무언가는 먹어야 하는데, 탄수화물이 좋아 그 위주로 먹는 것이 뭐가 큰 문제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농경시대 이후 서양은 밀, 동양은 쌀 중심의 탄수화물이 식사의 메인이 된 오래된 식문화의 뿌리도 탄수화물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게 만드는 큰 요인이라 하겠다.

둘째, 탄수화물 중독이 사회적으로 너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달달한 음료와 디저트 케익을 시켜놓고 한창 수다를 좋아하는 20대 여성의 90% 이상이 크고 작은 탄수화물 중독자이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크고작은 탄수화물 중독증세를 가지고 있다.

‘나는 탄수화물 중독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또는 ‘결코 탄수화물 중독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이 들면 다음 탄수화물 중독의 네가지 단계별 증상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탄수화물 중독의 4단계별 증상

탄수화물 중독은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단계별 증상은 아래와 같다.

1단계 증상: 식곤증•피로•무기력•우울과 짜증 등의 감정기복이 심해짐

2단계 증상: 공복감을 제대로 참기 힘들어짐

3단계 증상: 식사 시간만 조금 지나쳐도 점차 현기증이 나며, 경우에 따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낌

4단계 증상: 기본적인 식사나 간식때를 조금이라도 놓치면 식은 땀이 나면서 손이 떨리고, 심하면 졸도에 이르기도 함

아마 현대인들 중에 위 네가지의 단계별 증상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탄수화물중독 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만연해있다. 이 때문에 그 누구도 본인이 심각한 탄수화물중독증인 상황이라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내 주변의 가족 친구 지인들중 알콜중독자가 90% 이상이라면, 알콜 중독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도 못 할것이고 술을 마셔도 누구하나 말리고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 탄수화물 중독을 대하는 마인드가 이와 정말 똑같다. 비만, 대사질환, 혈압, 당뇨, 심혈관질환에 대한 탄수 화물 중독의 영향력은 술 • 담배보다 훨씬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탄수화물 중독은 질병이다

다시 말한다, 탄수화물 중독은 심각한 질병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 바로 첫 출발점이 제대로 된 문제인식이다. 탄수화물 중독은 술 • 담배중독보다 더 해로울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인이 뚜렷한 이유없이 쉽게 피로하고,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배가 나오며, 염증과 통증이 잘 생기고, 더 나아가 건강검진에서 혈압 • 당뇨 • 지방간 • 고지혈 등 각종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면 탄수화물 중독증인지를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탄수화물 중독은 심각한 질병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만 문제의 해결책도 나온다. 그런데 필자가 한의원에서 상담을 해보면 사람들이 의외로 탄수화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니,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도 “탄수화물이 뭐 어려운 용어라고 그걸 모른다고 하나”라고 냉소할 수도 있겠다. ‘밥, 빵, 면, 대충 이런거 적게 먹으면 탄수화물 적게 먹는거지?’ 이 정도가 정확히 평균수준의 이해정도이다.

탄수화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다보니, 자신은 탄수화물을 대폭 줄였다고 하는데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문제해결도 안되고, 더 나아가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는건 언감생심이다.

탄수화물은 현대사회를 지배한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어마어마한 양의 탄수화물을 먹고 있다. 밥, 빵, 면이 대표적인 탄수화물 음식이다. 물론 사람들 역시 그런 음식에 탄수화물이 많다는 것쯤이야 안다, 하지만 그 정확한 분량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떡, 압축된 쌀밥

그런데 최근의 설날만 해도 흰쌀을 으깨어 가래떡으로 뽑아낸 떡국을 먹을때는 내가 쌀이라는 탄수화물을 어마어마 하게 먹고 있다는 인지가 매우 흐려진다.

하지만 기억하자, 떡은 부피가 대폭 압축된 흰쌀밥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 떡들은 전통적인 떡과 다르다. 최근 시장을 풍미하는 떡류 상품은 떡볶이나 팥앙금, 심지어는 크림을 담뿍 넣은 달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떡이 경쟁력이 뒤쳐지자 시장에 맞춰 진화한 결과다.

이러한 음식들은 웬만한 빵류보다도 설탕량이 많다. 어마 어마한 양의 흰쌀밥과 설탕덩어리가 합쳐진 것이 그런 달콤한 떡류 제품들의 실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떡살’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당장 떡국 한그릇을 넉넉하게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가 거의 공기밥 3그릇 분량에 해당한다. 떡볶이 1인분은 공기밥 2그릇 분량이다.

 

건강한 천연 간식?

원장실에서 5,60대, 또는 70대 여성분들을 상담해보면, 흔한 한탄을 토로하곤 하신다. 자기는 공기밥을 반공기 이상 먹지 않는데도 고지혈증, 지방간 등의 수치가 안 좋다고 억울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 식사 외 간식을 드시냐 물어보면, 오후 3시쯤 출출하니 옥수수 한 소쿠리, 감자와 고구마 한 광주리를 굽고 쪄 드신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탄수화물 덩어리인 사실을 무시하고, 건강한 자연식이라면서 먹겠다는 위험한 착각이다. 현재 한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정말로 많으며, 비만과 지방간, 대사질 환의 기저에는 이런 ‘건강한 천연 간식’의 지분이 결코 적지 않다.

또한 그만큼 위험한 것이 바로 과일이다. 과일에 함유된 과당 역시 설탕과 같은 당일 뿐이다. 이 때문에 과일로 살찌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사과 한개의 당분이 근육에서 에너지로 다 쓰이려면 3-4천보가 필요한 수준이다.

 

김밥, 한줄당 밥 한공기

주부들은 대부분 아실 것이다, 김밥 한 줄에 밥 한공기가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한끼식사로 김밥을 먹을 때 한줄만 딱 먹고 마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보통 식사라면 적어도 김밥 2-3줄은 먹곤 하지 않나? 이렇게 되면 벌써 밥 2-3공기를 해치운 셈이다. 하다못해 김밥은 한 줄로 끝난다면, 라면 한 그릇이라도 추가하는 것은 흔한 일 이다. 그리고 그 식사를 ‘적당히 가볍게 때운’식사로 기억하곤 한다.

 

초밥, 세련된 ‘주먹밥’

젊은 사람들이 즐겨먹는 초밥도 본질은 주먹밥이다. 물론 손으로 꼭꼭 뭉쳐서 만들기 때문에, 밥의 부피 자체는 적어 보인다. 그리고 위에 생선회가 덮여있기 때문에 밥의 존재감이 매우 희미해진다. 하지만 초밥도 보통 1인분으로 치는 10피스 정도면 밥 한공기가 들어간다. 조금 넉넉하게 먹기 시작하면 20개, 30개씩 들어가는 것은 금방이다. 그렇게 초밥 개수가 늘어날수록 그 분량도 2공기, 3공기로 늘어난다.

 

쌀국수, 동남아 식사라고 다를건 없다

쌀국수는 어떨까? 우동이나 짬뽕같은 밀가루로 만든 면 요리 대신 쌀로 만든 쌀국수를 먹고나면 대부분 건강한 식사를 했다, 또는 다이어트 식사를 했다 착각한다.

쌀국수의 면발도 결국 흰쌀밥을 면의 형태로 변형시킨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밥이라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만다. 실제로는 쌀국수 1인분이 밥 2공기에 해당하는데도 말이다.

 

쌈밥, 야채에 가려진 착각

쌈밥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무더운 여름, 시골 마당 평상에 앉아 풍성한 쌈채소에 고기나 고등어살 한점 얹고 마늘•고추에 쌈장 척 올려 싸먹으면 더위에 잃어버린 식 욕마저도 폭발한다. 싱싱한 푸른색의 아삭아삭한 채소 소리에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또 2공기 3공기째 밥그릇을 비우는 것은 예삿일이 된다. 하지만, 풍성한 야채쌈에 가려져 내가 과도한 탄수화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모처럼 건강한 식사, 다이어트 식사를 했다고 착각에 빠진다.

 

탄수화물 중독자의 시각에 속지 마라, 성분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살면서 이런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탄수화물이 음식속에 숨어 있을때는 내가 얼마나 많은 밥에 해당하는 탄수화물을 먹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공기밥은 절반 정도 덜어내고 반공기만 먹는다는 식으로 얼마든지 양조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형된 밥, 음식속에 숨어있는 밥을 먹을 때는, 실제 밥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과식하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태곳적 인류가 처음 발원한 이래로 우리 조상은 항상 굶주렸고, 수만년간 우리 몸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적응했다. 그래서 우리는 식탁 가득 올라간 탄수화물에 더욱 관대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풍요로움은 우리 몸이 미처 받아들일 수 없는 독이 되었다. 참으로 문명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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