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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화(瑞香花), 천리향으로 모포(FOMO) 증후군을 극복하자

  • 입력 2024.03.15 17:11
  • 기자명 신종찬(시인,수필가, 의학박사 / 신동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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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겨울은 인수봉 쌓인 눈처럼 두껍게 와 있는데, 정의공주묘 옆 꽃집 비닐하우스 안은 봄꽃들이 한창이다. 진한 꽃향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춘다. 짙은 보랏빛이나 흰빛 꽃봉오리들이 다발로 모여 다투어 필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 들에 심어놓은 버드나무 잎을 단 상록수 중에 다만 한 송이가 조금 피었을 뿐인데 향기가 무척 진하다. 진료실 앞 창가에 두려 흰 꽃봉오리가 다섯개 맺힌 작은 분(盆) 하나를 샀다.

“소한(小寒) 소식은 매화꽃, 동백꽃, 수선화가 전하고, 대한 (大寒) 소식은 서향(瑞香), 난화(蘭花), 산반화(山礬花)이 전하고….”라는 말이 있다. 서향화는 난초꽃, 산반화와 함께 대한삼 신(大寒三信)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따뜻한 중국 남부지방의 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키워도 대한을 지나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부터 시작(<양화소록養花小錄>, 강희안 姜希顏, 조선 세종 시기)해서 위도에 따라 청명까지 다양하게 핀다.

또한 <양화소록>에서는 “서향화 꽃은 붉은빛이기에 밥 대신 노을 먹고 사는 신선과 같고, 꽃이 아름답기에 직녀(織女)가 짜놓은 비단 같다. 그 향 또한 강렬하여 10리 넘어까지 퍼지며, 뜰에 피어나면 여인이 웃음을 머금은 듯 향이나 자태가 뛰어나 보통 꽃들이 맹주로 추대하려 한다”고도 했다. 강희안은 고려 말 이색(李穡)이 서향화를 노래한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서향화 瑞香花>

이 색

움집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서향화를

(中開遍瑞香花 음중개편서향화)

청명에 받들어 꺼내니 집 가득한 향기

(擎出淸明香滿家 경출청명향만가)

코로 먼저 맡고 두 눈에 대었더니

(鼻觀先通揩兩眼 비관선통개양안)

남은 담홍빛 꽃잎이 가지 위에 흩어지네

(淡紅枝上散餘花 담홍지상산여화)

이 시에서처럼 예부터 겨우내 온실에서 정성껏 키운 서향화를 청명에 조심스레 꺼내어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희안은 붉은 꽃이 피는 서향화를 가장 좋은 품종으로 꼽았다. 그러나 붉은 서향화는 중국 남부 여산(廬山) 근처가 원산지고, 흰 꽃이 피는 백서향(白瑞香)은 제주도 등 우리나라 남부 도서에도 자생한다. 서향 꽃도 자주색, 노란색, 흰색 등 다채로우며, 개화 시기도 대한에서부터 청명까지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명성을 떨치던 붉은 서향화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는 원 간섭기로 보여진다.

서향나무는 팥꽃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나무로, 키가 50~150cm 정도 자라는 관목이다. 주로 반그늘의, 토양이 습한 곳에서 자라며 규모가 작은 군락을 이룬다. 나무줄기는 밝은 갈색을 띠고, 재질이 물러 굵은 가지도 잘 휘어진다. 광택이 나는 잎은 긴 타원형이며 줄기에 어긋나게 달린다. 암수딴그루로 1~4월에 가지 끝에 꽃이 피는데 암수 모두 상큼한 향기가 강하게 난다. 꽃은 맨 위 꽃망울부터 피는 두상꽃차례로 피며 꽃받침은 통 모양이며 끝이 4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잎 조각은 길이가 6mm 정도이고 바깥쪽은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이며 안쪽은 흰색이다. 열매는 장과이고 5∼6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한국에서 자라는 것은 대부분 수나무이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주로 장마철에 꺾꽂이로 번식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백서향나무는 상서로운 향기가 천리까지 갈 만큼 매우 좋은 향기를 가졌다고 해서 ‘천리향(千里香)’이 라고 부르기도 하며 겨울철에 특히 인기가 높다. 백서향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붉은 꽃 서향나무(Daphne odora Hamaya)와 비슷하지만, 그 꽃이 하얗고 제주도 곶자왈 주변을 비롯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자생한다.

강희안의 말을 더 들어보자. “어떤 이는 한양에서는 서향화 재배법을 잘 몰라, 잘 죽으니 그다지 귀할 게 없다고도 한다. 나는 이 꽃을 구해서 옛 기록을 살펴보고 직접 키워보며 차차 기르는 기술을 터득했다. 서향화는 습한 것도, 마른 것도 싫어한다. 직접 햇볕을 쬐어주며 정성을 다했더니 지난날보다 무성하게 자랐고 꽃도 두 배로 피었다. 꽃 한 송이만 겨우 터져도 향기가 온 뜰에 가득했다. 꽃이 지고 열린 열매는 마치 앵두가 푸른 잎 사이에 곱게 익은 것 같았다. 서향화는 한가롭게 즐길 수 있는 벗이며, 쉽게 죽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아, 사물은 각기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가 있다.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 를 만나지 못하면 빈 산에 절로 피었다가 절로 질 뿐이니 어찌 한스럽지 않은가?”

일찍이 저명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예양 (豫讓)’이라는 인물 편에서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母爲悅己者容)” 라는 예양의 말을 전하였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각자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목숨을 버릴 만큼 정말 중요하게 여겨왔다. 인권이 신장된 현대사 회라지만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잊힐까 두려워하는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정신의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많은 현대인이 포모 증후군(FOMO, Fear of missing out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현대인은 삶을 즐거운 것들로 채우려고 노력하지만 늘 공허함을 느끼며, 도달하지 못하는 행복을 신기루처럼 좇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광고와 기사, SNS 동영상과 사진 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다니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더 부추긴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극받는 소유욕과 과시욕을 채우려 하면 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과 좌절이다. 자신만 뒤처지고 소외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인 포모증후군 환자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비싸고 화려한 것들을 빠르게 사들이지만 마음속에는 늘 공허하다.

자극을 좇고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공허감을 느끼는 포모 증후군 현상은 중독자의 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같다. 초강력 마약에 중독된 것이 아닌데도,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의 뇌가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한다. 보통 중독이라고 하면 술, 담배, 마약을 떠올리지만, 보상을 만들어 내는 모든 자극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중독 회로를 형성할 수 있다. 결국에는 가치판단을 하는 전두엽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지고, 도파민 결핍증상으로 파킨슨병과 유사한 상태에 빠지기까지 한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개인적 으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통이며,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공멸이다. 국가를 장악하고서도 더 가지려고 전쟁을 일으키기 도 하는 독재자들이 지금도 많다.

극단의 경우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처럼 한 사람의 뇌에서 벌어진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전 세계 시민이 죽음과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고초를 감당해야 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전제권력이나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쾌락이 왜 의미가 없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다행히 끊임없는 자극 추구와 공허, 그리고 무욕(無慾)과 평온의 근원은 신경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 동기와 보상 구조에 대해 많이 밝혀졌다. 그리고 스토아학파, 노장사상, 불교에서 말하는 삶의 태도와 사람의 뇌가 설계된 방식을 함께 이해하면,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뇌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방편이란 사람이 산업화 이전부터 시간을 보내던 방법인 풍경보기, 새와 벌레의 소리 듣기, 묵상, 독서, 악기연주, 산책 등의 같단한 실천들인데, 이들은 사람으 뇌에 충분히 보상을 주는 활동이다. 올봄에는 창가에 기우는 흰 서향화인 천리향 향기로 포모증후군을 극복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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