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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신의 손 ‘로댕 展’에 가다

  • 입력 2014.01.2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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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이 남쪽 해상으로 내려가고 서울은 구름만 낀 후텁지근한 불쾌지수가 높은 주말이다. 근자에 내겐 전시장 복이 터졌다. 볼거리가 많아 지난 주말은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소마 미술관에서 키스 해링 전을 보고 주중 수요일은 내 직장이 쉬는 날이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 소장품인 그리스 신과 인간 전을 보고 오늘은 시립 미술관에서 하는 로댕 전을 보는 것이다.

좋은 것은 아껴두고 쉬엄쉬엄 봐도 좋으련만 주말에 할 일 없이 집에 눌러 앉아 있기란 답답하고 좀이 쑤셔 기어이 집을 나섰다.

키스 해링 전이나 그리스 신과 인간 전이 또한 로댕 전도 시작이 4월이나 5월 달부터 8, 9월까지인데 이 세 가지 전시 기간이 다 학생들 방학 기간을 생각하고 주최 측에서 기획한 것일 테고 방학기간 학생들과 함께 끼어 보는 것보단 노틀들이 한가할 때 일찍 보는 것도 좋은 착상이 아닌가 싶다.

시청 앞 2호선 10번 출구에서 올라가니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시립미술관이 나온다. 경노는 무료다. 입구에서 젊은 여자가 신분증 좀 보잖다. 아직도 젊게 보이나? 기분 나쁘지 않다.

신의 손 로댕 전은 예술에 문외한이라도 로댕은 몰라도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 사진들은 예부터 자주 보았던 것이 아닌가. 로댕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가 많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 근대 조각의 선구자, 신의 손, 작품에서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조각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천재적 작가, 조각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작가. 당시는 조각은 예술적 가치를 찾기보단 건축물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져 폄하하였던 경향이 있었으나 천재작가 로댕의 등장으로 순수창작 미술을 독립분야로 올려놓은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놓았다. 오늘 그의 회고전은 로댕의 상징적인 작품(지옥문)을 위시하여 110여점에 이르는 청동, 대리석, 석고 등 다양한 40여점의 빼어난 종이 작품 등을 선보이므로 로댕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크다.

처음으로 들어간 곳에 ‘신의 손(1898~1902 94×82.5×54.9)’ 작품이 휘황한 조명하에 눈부시다. 흰 대리석 덩어리에 손이 자연석을 쥐고 뒷면에 아담과 이브의 조각상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어떻게 작가의 구상이 이렇게 절묘하고 기발한 착상이 나왔을까’,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난다.

“예술은 손으로 이뤄지고 우주를 변화시키고 놀라운 힘을 지닌다”고 로댕은 말했다.

로댕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다.

이 작품은 해외에 처음으로 나들이해 우리에게 선보인다는 주최 측의 말이다.

다음은 ‘청동시대(1877 181×66.5×63)’ 작품이다.

한 젊은 벨기에 군인의 누드화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구설수에 오른다. 너무나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직접 주물을 뜬 작품이라고. 이 스캔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하나 증명하고 마침내 모함에서 벗어나 주변에서 주목받는 작품으로 인정받아 그 덕분에 1880년 국립 미술관으로부터 ‘지옥문’ 제작을 의뢰받게 된다.

‘지옥문’은 향후 건립된 장식미술관 출입문으로써 높이 5m의 거대한 문이다.

이 문에는 단테의 ‘신곡’을 표현하는 조각품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단테가 1304년에 집필한 ‘신곡’은 3권(지옥, 연옥, 천국) 100곡으로 쓰인 대서사시다.

청동 주조 작업이 지연되어 1917년에야 완성되어 로댕의 일생 역작인 ‘지옥문’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지옥문 속에는 ‘생각하는 사람’, ‘입맞춤’, ‘세 망령’, ‘도망가는 사람’ 등의 수많은 로댕의 대표작들이 조각되어 있고, 그 중에 하나하나 뜯어 독립적으로 내놓은 것들 중에 우선 ‘생각하는 사람’을 보자.

‘생각하는 사람(1881-1882 184.5×107×150Cm)’, 대형 석고 기념상이고 지옥문 팀파눔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지옥문에 영감을 준 ‘신곡’의 저자 단테가 생각에 잠겨 앉아 구부린 자세로 지옥문에 떨어져 고문당하는 육체가 고통을 초월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문에서 전체 구성면에서 중앙 상단 면에 위치하고 동시에 1888년부터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고 사색에 잠겨있으면서도 강력한 육체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전 세계인의 인기가 높아 로댕의 상징물처럼 되었다.

‘입맞춤’, 대형 기념상 석고 188.8×112.9×113.2

이 작품도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인물로 지옥문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표현하고 불륜의 벌로 지옥에 빠져 형벌을 받게 되며 지옥문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1887년에 전시되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델과 매력적인 소재로 세인의 인기를 받고 평론가들로부터 ‘입맞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현재 이 작품 또한 로댕의 상징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춤동작 A(1911년 경 청동 30×7×13Cm)

이 작품은 곡예적이고 춤의 신비함이 있으며 신체의 표현력을 풍부히 나타내고 팔꿈치관절이 없는 두 팔 길이가 서로 다른 팔다리, 뛰는 모습으로 변경된 근육이 춤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이것도 로댕의 상징물처럼 인기가 높다.

로댕이 클로델을 만난 것이 1882년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당시 스무 살이 안 된 처녀로 뛰어난 재능과 미모로 명민한 지성으로 제자로 들어와 얼마 안 돼 조수로 발탁되고 생기 넘치는 표현력이 로댕을 사로잡아 곧이어 연인이 되었다.

그와의 관계는 파란만장한 연인관계로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고 1892~1893년에 마무리 되었지만 그 후 클로델의 정신 이상 발작으로 1898년에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입원, 1943년에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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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과 클로델의 예술적인 관계는 클로델의 작품 속에 잘 표현되어 로댕의 여성 편력과 변질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로댕의 초상 조각을 제작하였고, 풍부한 예술 표현은 클로델의 작품 중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한 여인의 운명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외로이 마감했다는 씁쓸한 뒷맛이 바로 지워지지 않고 긴 여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