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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Revolution of Medicine]세상을 바꾸는 젊은 열정, 당신을 응원합니다!

부산미래산부인과 이재준 원장

  • 입력 2010.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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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사고에 저수가,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로 의료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몇몇 인기가 있는 과는 지원자가 넘치는데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는 고사의 위기에 처해있다. 기형적으로 흘러가는 한국의료계를 바로잡을 해답은 없는 것일까. 이처럼 의료계에 처한 문제에 대해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둘러보아야 할 이들이 있다. 최근 각계각층에서 젊은 리더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으며, 의료계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들이야말로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한국의료를 지탱하고 있는 진정한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부산 미래산부인과 이재준 원장도 그 중 한 사람. 靜水流深 深水無聲(정수유심 심수무성: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이라고 했던가, 드러나지 않지만 소리 없이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젊은 의사 이재준 원장을 MD 저널이 만났다.

 

[2R]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단순한 진리가 만든 놀라운 결과

“지금의 미래산부인과가 있기까지 가장 큰 비결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개원 당시 산부인과는 아이를 낳으면 끝이었죠. 하지만 저희는 부산에서 제일 먼저 산후조리원을 병원 내에 도입을 하고, 이어 에스테틱에서 비만관리까지 철저한 산모관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산모나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지난 2001년, 15명의 직원으로 개원을 한 이래 불과 3년 만인 2004년 개금동으로 이전해 26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형병원으로 성장한 미래산부인과는 이제 부산·경남권에서 최고의 분만율과 환자 만족도를 자랑하는 병원이 되었다. 2001년만 하더라도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질 무렵,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는 앞서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이재준 원장은 타 병원과의 차별화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산부인과는 ‘출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 착안 이 원장은 집이나 사설 조리원이 아닌 산모가 다니던 병원에서 체계적이고 전문화 된 산후 조리를 받을 수 있도록 미래산부인과 산후조리원을 도입했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시 되어 있었지만 당시 다른 병원에서 바라보는 이 원장의 행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원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 이어 에스테틱과 비만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최초의 원스톱 토털 서비스가 가능한 병원을 탄생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입장에서 출산 후에도 아름다움과 건강을 지켜가고 싶은 여성의 마음을 그대로 읽은 이 원장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었다. 이쯤 되니 처음에는 냉소를 보내던 병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미래산부인과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모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있었다. 기면 뛰고, 뛰면 날아가는 미래산부인과를 따라가기란 이미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미래산부인과가 지역병원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에는 이 원장의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미래를 읽는 정확한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곳

“산부인과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그 어느 과보다도 신비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의사도 뜨거운 피와 요동치는 심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정말 작은 점으로 시작해 매일 매일 커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리고 출산은 산모와 가족뿐만 아니라 의사와 병원 전체의 기쁨입니다. 혼자 들어와서 둘이 되어서 나가는 과가 산부인과입니다. 생명을 지켜본다는 것, 그 경이로운 순간의 연속이 가능한 곳이 산부인과입니다.”

이재준 원장은 후배를 만날 때면 ‘굉장한 보람을 안겨 줄 것이다. 이곳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곳이 아닌가’라고 강조 한다. 그만큼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산부인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처음 산부인과를 택했을 때 주위에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평소에도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여성 환자들에게 부담 없이 대했고, 아이를 좋아했던 이 원장. 과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는 것이라 믿었기에 이 원장에게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후회도 많이 했다. 레지던트 후 당직 시절 경험한 분만대기실은 말 그대로 전쟁통이었다. 무통분만이 없을 때여서 여기저기서 소리 지르고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모습은 일상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내가 어쩌면 이 일을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하지만 후회도, 그 지옥 같았던 시간을 까맣게 잊게 해준 것은 바로 새벽을 깨우며 떠오르는 ‘아름다운 태양’이었다. 밤샘의 피로를 씻겨주는 여명과 가슴속 깊숙이 들어오는 아침 공기의 상쾌함, 그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했다. 시간이 흘렀고 이 원장은 어느덧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 그 아름답던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진…

 

[3L]아버지, 선생님, 그리고 음악… 나를 일으켜 준 그 이름이여!

You raise me up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so I can stand on mountains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You raise me up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to walk on stormy seas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당신이 나를 떠받혀 줄 때 나는 강인해집니다.

You raise me up

당신이 나를 일으켜

to more than l can be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이재준 원장이 강단에 서면 강연에 앞서 들려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West life’의 ‘You raise me up’, 따뜻하면서도 의미 있는 가사는 산모나 환자들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에게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제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무렵 아버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버님까지 병중에 계시니 어머님께서 생계를 도맡으셨죠.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게…”

결국 이 원장은 자신의 의지대로 의대를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굳이 의대가 아니더라도, 아니 오히려 나쁜 길로 빠진다하더라도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에 어린 이 원장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가 어긋난 선택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다.

“제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은사님이십니다. 그분이 제게 보여주신 조금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았던 무조건적인 믿음,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가서도 제가 힘들 때면 경제적인 도움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고마운 선생님이십니다. 이내길 선생님, 제게 너무나 큰 사랑을 보여주신…”

더 무언가를 말하려 하더니 잠시 고개를 돌리는 이 원장, 어려웠던 시절과 고마웠던 은사님의 생각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이 원장은 “이내길 선생님께서는 지금 산청 간디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십니다. 얼마 전 정년을 마치시고 그곳에서 무급봉사를 하고 계시죠. 그냥 연금 받으시고 편하게 사셔도 될 텐데 벌써 일 년 육 개월째 그곳에서 봉사를 하고 계신답니다”라며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 원장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의대생이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이 원장은 야간경비나 과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거기에 집에는 병환으로 몸져누운 아버지와 빡빡한 대학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보통의 젊은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으리라. 지치고 쓰러질 때마다 이 원장은 노래를 불렀다. 시체실 옆에 있던 밴드 합주실, 거기서 가슴에 응어리를 노래로 풀었다. 그리고 그때 멤버들은 졸업 후에도 모여 당시를 회상하며 다시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나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한 병원은 존재할 수 없다!

“미래산부인과는 지금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양적인 발전이 아니라 내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다른 사업을 제안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저희는 오로지 산부인과 한 과목에 집중해 여성을 잘 아는, 그리고 여성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병원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 더 사명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공헌하는 병원이 되는 것입니다.”

외길을 고집하는 이재준 원장에게 외도란 없다. 오직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가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병원 초기부터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돕기, 여러 봉사단체와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청소년 성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시민단체와는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여성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나를 위한 병원, 돈을 벌기 위한 병원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 원장, 그가 늘 지역사회에 신선함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도 이처럼 고여 있지 않고 열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4R]가족은 나의 힘, 나의 초심은 언제나 진행 중…

“올해로 개원 10년이 되었습니다. 아마 혼자였다면 결코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추진력과 결단력, 거기에 언제나 번득이는 센스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안준모 원장님,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이수 원장님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늘 부족한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시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잘해야 본전이라고들 하는 동업, 하지만 이재준 원장의 경우는 달랐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는 것은 처음 개원할 때부터 이 원장이 살에 새기고 뼈에 새겼던 말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권위나 카리스마보다는 편하고 친근하게 산모와 환자에게 다가서자’라는 생각은 지금도 그의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이 원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진료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처음 생각했던 결심을 초심이라고 하겠지요. 초심을 지키자고 하지만 저는 아직 초심이 변할 단계는 아닙니다. 저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이삼십년 후쯤에나 제가 그때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있나 돌아봐야겠지요. 지금 저의 초심은 진행 중입니다.”

늘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는 이 원장에게 이처럼 바위 같은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아니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있는 것이리라.

“지금 저에 가장 큰 힘은 가족입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세 아이와 지친 저를 늘 위로해주는 아내에게 지면을 통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는 돌아가신 아버님 몫까지 최선을 다해 효도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가족은 내 생활의 원동력이자 뿌리임을 잊지 않고 강조하는 이 원장, 지금까지 그를 있게 해준 진정한 원동력은 아내 장유미 씨와 어머니 조윤숙 여사,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스스로 권위와 카리스마를 버렸다고 하지만 그에게 느껴진 것은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따뜻한 권위요, 모든 어려움도 이겨낸 열정으로 뭉친 카리스마였다. 환자와 의사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의료의 혁명을 이뤄낼 이재준 원장, 우리는 그런 당신을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