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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인생 최초의 눈길과 최고의 눈 맞춤

  • 입력 2010.12.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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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눈 맞추기와 눈 맞춤은 다르다. 눈 맞추기란 일방적인 눈길 주기를 말하며 눈 맞춤이란 쌍방 간의 눈 맞추기의 일치를 말한다. 따라서 눈 맞추기는 혼자서 상대방에 관심이 있어서 눈길을 돌려 응시하다가 상대방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눈 맞추기를 시도하여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쳐 일치가 되면 눈 맞춤이 성립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눈 맞추기가 짝사랑이라면 눈 맞춤은 사랑의 성립과 같은 맥락 이다.


인간 최초의 눈 맞추기와 눈 맞춤은 갓난아기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그 출발점은 바로 아기와 어머니의 눈길의 교류에서 싹트게 되는데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눈 맞춤에 대한 초보적인 능력을 스스로 획득하고 나오는 것이며 누가 가르쳐 주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머니의 정성어린 눈길과 아기의 눈 맞추기의 시도는 그 본인의 인격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는 인생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도쿄대학의 하라지마 교수(1996)의 실험기록을 보면 자기의 아들이 생후 5개월이 되자 자기의 어미를 알아보고는 옆에 없으면 울어대서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아 가사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라지마 교수는 그 어머니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옆에다 놓으니 울음을 그치더라는 것, 호기심에서 그 사진의 거리를 조정하여 본 결과 50cm 이내에서는 알아보고 가만히 있지만 그 거리를 멀리하면 알아보지 못하고 울어대더라는 것이다. 더욱 호기심이 난 교수는 사람 얼굴을 그려 옆에 놓았더니 사진과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굴 그림에서 코나 입을 지워서 놓아도 별 반응이 없으나 양 눈을 지우고 코와 입은 그대로 두었더니만 어린애는 울어댔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는 어머니와의 눈 맞춤으로 어머니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앨마 태디마( Sir Lawrence Alma-Tadema 1863-1912)가 그린 ‘지상 낙원’(1891)이라는 그림에서 침상위에 벌거숭이가 된 아기가 누어있고 어머니가 아기의 손에다 키스를 해주고 있으며 해맑은 아기는 웃음 지으며 이를 반기고 있다. 아기의 눈길과 어머니의 눈길은 마주쳐 눈 맞춤을 하고 있으며 이에 도취된 어머니의 표정에서 지상에 있는 어떤 행복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 인생 최고의 행복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화가는 이것을 진정 ‘지상 낙원’이라 표현한 것 같다.


이렇듯 눈길이 일상생활의 기쁨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 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주는 그림도 있다.


프랑스의 화가 루느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작품 ‘앉아 있는 죠르즈제트 샤르반티에’(1876)라는 그림을 보면 한 소녀가 의자 위에 다리를 틀고 앉아 있다. 다른 점보다도 우선 그 소녀의 눈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녀의 눈길은 분명 위를 보고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어린이의 초상화란 왕실이나 귀족의 자녀가 아니면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가들이 왕실의 자녀들의 초상화를 그릴 때면 그 눈길을 수평 내지는 밑을 보는 것으로 그렸다. 그 이유는 화가는 천민이기 때문에 비록 어린이지만 왕족을 밑에서 처다 보고나 아니면 수평으로 보고 그려야 하며 화가가 왕족 보다 위에서 그리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왕녀의 그림을 많이 그린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Dieg Rodriguez de sliva y Velazguez 1599-1660)의 작품 중에서 ‘마르가리타 왕녀’(1660)를 보면 왕녀의 눈길은 역시 밑을 향하고 있다. 즉 자기보다 아래쪽에서 그리는 화가를 보고 있다.


그런데 루느아르가 샤르반티에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것은 당시 최고의 재벌이며 화가의 후원자 이었던 샤르반티에 가(家)의 마나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서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비록 재벌이기는 하지만 왕족은 아니기 때문에 소녀의 눈길이 위를 보는 즉 화가는 소녀를 내려다보고 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미술계에서는 화가의 승리이며 새로운 화풍의 걸작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화가 가운데는 아예 눈의 구조를 없애 무구조한 눈으로 그 눈길을 알 수 없이 표현한 그림도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가 그린 ‘푸른 눈의 여인’(1917)의 그림 앞에 서면 왜 그런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더욱 발길을 잡고 놓지 않은 것은 그 애수에 찬 푸르고 깊은 눈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자기의 아내인 잔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1898-1920)이다. 그녀는 양가집 규수로서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모딜리아니와 동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부모인들 소중하게 기른 딸을 열네 살이나 연상인데다가 술주정뱅이, 마약 복용자, 게다가 결핵으로 몸마저 성치 않은 무명의 화가에게 딸을 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는 나름대로의 예술적인 안목이 싹트고 있어 모딜리아니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에 사로 잡혔던 것이다. 잔은 화가에게 영혼을 다 쏟아 부었고 화가는 이를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 사랑이 영감을 낳는다는 것을 깨우친 그는 마침내 평생의 모델이 된 아내 잔을 만나서 푸른 눈에 얼굴과 목이 긴 여자라는 불후의 캐릭터를 완성 하였던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건강만 허락되었다면 아마 두 사람의 세속적인 삶은 극적인 영관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허락된 운명이 아니었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모딜리아니가 숨을 거두자 영혼을 아낌없이 주고난 뒤에 남은 모델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외친 그녀는 모딜리아니가 사망한지 6시간 만에 그를 뒤따랐던 것이다. 이렇게 헤서 모딜리아니와 잔은 그림역사상 신화를 남긴 것이다.


화가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잔에게서 떠나야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이 더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짧은 기간에 그는 잔의 초상화를 무려 26점이나 그렸는데 그 눈은 모두가 해맑은 푸른 눈이다. 즉 시력이 없는 ‘제3의 눈’ 으로 그린 것이다.


[2R]사람의 눈알을 싸고 있는 막은 3층이어서 맨 외측이 각막이며 그 안쪽에 있는 수정체(水晶體)와의 사이에 홍채(紅彩)가 있다. 홍채는 색소세포로 구성되는데 그 세포의 수에 따라 즉 그 분포에 따라 눈의 빛깔은 달라져 푸른빛, 잿빛, 갈색 또는 검은 갈색을 띠게 된다. 즉 색소세포가 많으면 동양 사람들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검은빛이 되며, 색소세포가 없으면 그 뒷면까지 투명하게 보여 푸른빛으로 된다. 홍채의 가운데에는 등근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동공이다. 동공은 빛이 많이 들어오면 작게 축소되며, 어두우면 산대되어 마치 눈의 조리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홍채에 있는 작은 근육에 의해서 조절 받기 때문이다. 동공은 빛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거나 공포 또는 크게 감동을 받았을 때도 반응하는 것이다.


모딜리아니가 이러한 눈의 구조와 그 생리를 알고 동자가 없는 푸른 눈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화가가 눈의 빛깔을 푸르게 하고 싶었던 것은 눈이 있되 시력이 없는‘제3의 눈’으로 만들어 우선은 자기가 떠나는 비참한 죽음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화가의 생각과 이 세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 인간 최고의 영원한 눈 맞춤을 하기 위해 화가는 잔의 눈길을 고스란히 갖고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