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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 Ⅱ

  • 입력 2013.09.07 11:52
  • 기자명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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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찾아온 어머니의 행복
시간이 지날수록 어머니에게 들려오는 아들의 소식은 희망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푸껫에서 관광가이드를 하다가, 조금씩 돈을 모아 식당을 여는 등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참한 여자 친구도 생겨, 태국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돈을 착실히 모은다는 소식이었다. 내심 나는 그 환자가 다시는 사회생활을 못하리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약을 2달분 타가겠다는 것이다. 아들이 푸켓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아마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환자는 푸켓에 다녀와서는 정말 천국 같다고 나한테도 꼭 가보라고 권유까지 하는 것이다.

짧은 행복, 하지만 너무나 커다란 슬픔
그 어머니는 6개월 전 또 아들이 태국으로 초청했다고 약을 몇 달분 타가게 되었다. 3달 후 어머니는 우리 의원에 오랜만에 내원하게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서는 어머니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조금 기분이라도 풀어 드리려고 나는 이제 당신의 자랑이 된 아들 얘기부터 꺼냈다.

“아드님 만나고 오셔서 좋으셨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멈칫멈칫 말씀을 하려다 말고, 눈물만 흘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 아들이 죽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청상이 된 여인을 지금까지 살아있게 했고, 지금은 태국에서 자리를 잡고 어머니를 초청하겠다고 돈을 모으던 착한 청년의 죽음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갑작스런 아들의 사고사. 정말 인생은 가혹할 때는 잔인하리만치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삼남매를 키웠지만, 가장 말썽을 부렸던 이 아들만이 어머니를 이해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다른 두 남매는 연락조차 안 될 정도로 어머니의 곁을 이미 떠나 버린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국에 있는 아들도, 딸도 연락이 되지 않아, 죽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먼 타국 땅까지 혼자 다녀와야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 홀로 나가 시신을 수습하고, 더운 타국 땅에서 아들의 관을 맴돌면서 가슴을 치면서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더 이상 상담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화장해서 푸켓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유골을 뿌리고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진료실에서 상담 중에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제가 임대아파트 9층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뛰어 내리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없어서요. 그나마 그 자식 하나 믿고 살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살려고 오늘 여기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선생님. 죽은 아들은 제가 슬픔도 절망도 다 털어버리고,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랄 겁니다. 그걸 알기에 저도 이를 악물고 살아보려고 오늘 여기 온 겁니다. 우리 아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지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최인호의 소설이 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그 말을 곱씹으며 그 분을 보내드렸다.
그리고 2달 전인가. 그분이 오셨다.
“선생님 그동안 책 쓰셨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저 선생님 책 다 읽어봤어요. 선생님 제 얘기도 꼭 한 번 써주세요. 그냥 그러면 제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이렇게 이 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올해 안에는 지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