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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 :인간의 만남, 그 우연과 축복

  • 입력 2013.07.07 12:05
  • 기자명 김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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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장면을 찍는 담뱃가게 아저씨
<스모크>란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언제 이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당시에는 사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때라 주인공 오기(하비 키이텔 분)가 매일매일 똑같은 장면의 사진을 14년 동안 찍었던 이유에 대해 조금 의아스럽다는 생각만 했었다. 오기는 작은 담뱃가게를 하고 있다. 이 담뱃가게에는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이런저런 잡담을 늘어놓는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오기는 매일 아침 8시 브룩클린에 있는 자신의 담뱃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내가 사진을 찍게 되면서 담뱃가게 주인인 오기는 왜 매일 똑같은 사진을 찍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DVD를 구해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전형적인 영화들이 갖는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5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 인물들은 결국 서로 이리저리 얽히면서 만나고 헤어지며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지게 된다. 오기에 대한 소개는 했으니, 다음 등장하는 인물인 폴 벤자민(윌리엄허트 분)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그는 몇 년 전 노상 강도에게 아내를 잃은 후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로 등장한다. 그는 우연히 길을 건너던 도중 차에 치일 뻔 한다. 이것을 세 번째 인물인 라쉬드 콜(해롤드 페리누 분)이 얼른 그를 차도에서 밀어내는 바람에 목숨을 구해준다. 신세를 지게 된 폴 벤자민은 갈 곳 없는 라쉬드 콜에게 몇 일간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는 제안을 한다.

이어 등장하는 4번째 인물은 루비(스톡커드캐닝 분).
그녀는 18년 전 담뱃가게 주인인 오기를 배신하고 떠난 여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오기와 자신 사이에 딸이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딸이 임신 중이고, 마약중독에 빠져있으니 같이 찾아가자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면서 오기는 루비가 가자는 대로 허름한 집에 가게 되고, 거기에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인 루비에 대한 독설만 늘어놓을 뿐 전혀 오기나 루비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둘은 쫓겨나다시피해서 그 집에서 나오고 만다. 이제 마지막 인물이 등장할 차례다. 정비소를 운영하는 사이러스(포레스트 휘태커 분)다. 그런데 그 정비소는 곧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손님이 없다. 그래서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느닷없이 한 청년이 자신의 정비소 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잇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이러스는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 청년을 그냥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한다. 그가 바로 폴 벤자민의 목숨을 구했던 라쉬드 콜이다. 이렇게 세 번째 인물인 라쉬드 콜과 다섯 번째 인물인 사이러스는 만나게 된다.
라쉬드 콜과 사이러스는 사실 부자지간이다. 사이러스는 18년 전 사랑하던 여인을 교통사고로 잃게 된다. 그 당시 둘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아들이 라쉬드 콜이었다. 사이러스는 사랑하는 여인이 죽자 아들을 두고 떠나왔고, 그 후 그 일로 인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었던지 사이러스는 새로운 사람과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인 오기와 네 번째 인물인 루비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오기는 루비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그녀에게 준다. 오기는 루비의 말처럼 자신에게 친딸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는 그녀의 말을 믿기로 한다. 아니 그는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오기는 루비의 딱한 사정을 알고 그녀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도와주는데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가 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들은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스모크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다. 우리네 인생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이런 인연을 반복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길을 가다가, 아니면 운동을 같이 하게 돼서, 직장 동료로서, 학교 동창으로, 비행기 옆 좌석의 손님으로 만나기도 한다. 필자 자신도 하루에 많은 사람을 만난다. 물론 진료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자전거를 같이 탄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으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포즈를 취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면서, 그냥 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를 만난다. 우리는 많은 이들과 아주 짧은 만남을 갖기도 하고, 또 그 짧은 만남이 긴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긴 만남도 어느 순간 끝나기도 한다. 작가인 폴 벤자민이 담뱃가게를 하며 매일 똑같은 사진을 찍는 오기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얘기한다.
“모두 똑같은 사진들뿐이네.”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야, 같은 사진이 아니지. 하루하루 빛이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사람들의 표정도 매일매일 다르잖아.”
우리는 폴 벤자민이 오기의 사진을 보고 모두 같은 사진이라고 생각 하듯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기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사실 사진은 모두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매일 찍는 사진이 다르고, 의미가 있듯이, 우리가 매일매일 만나는 인간관계도 같은 것이 아니다.

만남, 그 가벼움과 특별함
우리는 하루 중에도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하루에도 여러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사람과는 다투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랑을 하기도 하고, 남에게 신세를 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주기도 하고, 어떤 이와는 그냥 눈인사만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 반복되는 만남에 대해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우연히,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고만 생각한다. 인간의 만남에는 사소한 만남이라 하더라도 분명 의미가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일상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 5명의 인물들은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 인물들 간의 만남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 5명은 서로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스모크>인 이유는 담배연기처럼 인생은 가볍고 허무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 가벼워 보이고 허무해 보이는 인생이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묵직하게 변해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우리네 인생에서 소홀히 대할 수 있고, 가벼운 것은 하나도 없다.
하물며 인연을 통해 만난 인간관계란 얼마나 중요하고 무거운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될 수 있지만, 곧 그 사람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반대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남을 위해 해주었던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관계이든 우리는 남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만남은 그냥 일상의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의 우주와 또 다른 우주가 조우를 하며 서로 간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큰 사건이다. 단지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만남이라 하더라도, 그 만남의 효과는 나중에 크게 다가올 수도 있으며, 내가 했던 작은 선행이나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어 그 사람의 일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만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 작은 만남 속에는 정말 우주보다 더 크고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