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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노동자들의 손가락 공장장

안산 두손병원 황종익 원장

  • 입력 2003.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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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손가락 공장장, 소외노동자들의 희망...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병원의 외벽은 빨간 열 손가락이 펼쳐져 붙어 있다. 병원 이름을 보아하니 두손병원. 대번 손가락 전문 병원임을 알 수 있는 병원 외벽과 이름이다. 이 병원의 황종익 원장은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성형외과 전문의다. 하지만 지난 3월호에 실린 영동세브란스 성형외과의 귀성형의 대가 박 철 교수만큼이나 미용성형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쌍꺼풀이나 코를 높이려는 젊은 여성이나 얼굴에 주름을 펴려는 중년여성 환자가 아닌 기형으로 다섯 손가락이 모두 붙은 어린이나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에 손가락이 뭉개지고 잘린 노동자들이 황 원장이 돌보는 환자들이다. 사고로 절단된 손발과 화상을 입은 몸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은 재건성형 가운데 그는 손가락 전문이고 역시나 병원도 손가락 전문 병원이다. 전문병원으로 유명한 병의원들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데 반해 이 두손병원이 안산까지 내려와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공단지역의 환자들이 잘린 손가락을 들고 서울까지 내려오면 이미 접합수술은 늦을 가망성이 높기 때문에 손 원장은 직접 공단밀집지역인 안산에 병원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서울, 지방, 제주도까지 손가락 환자들은 모두 안산에 두손병원을 찾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얻은 별명도 손가락 공장장. 1986년 첫 손가락 접합수술 이후 월 평균 150건의 수술을 시행, 미세접합수술 건수가 지금까지 5,000여건에 이른고 같이 근무하는 의사 2명의 기록까지 합치면 접합수술 건수가 두손병원 전체적으로 8,000여건에 이르는 셈이니 손가락 공장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 하다. 그렇다고 두손병원에 성형외과만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인근 주민들을 위해 내과와 정형외과도 함께 있다. 황종익 원장은 “하루 평균 외래진료 환자 중 90%가 손가락 환자입니다. 그밖에도 선천성 기형이 5% 정도 되고요.”라며 주위가 다 공단이라 공장에서 손이 다쳐 오는 노동자들이 아무래도 가장 많다고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도 20%나 돼서 웬만한 인사말 7∼8개 외국어는 거뜬히 한다는 황 원장은 “타국에서 일하는 외로운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노동복지도 받지 못하고 어렵게 일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그 의사에 그 환자[2R]성형외과 계에서 촉망받던 그가 미용성형 아닌 재건성형 중 손가락 전문가로 나선 것은 1989년 고대 구로병원에 근무하면서부터다. 이후 광명시 성혜병원에 손가락 전문 ‘수부외과’를 거쳐 94년 독립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사흘 동안 한 숨도 못 자고 혼자서 12시간 동안 손가락을 이은 적도 있으며 손가락 두 개 이상 접합할 때는 처음 한 개 수술비의 50%만 적용하는 의료수가와 손가락에 힘줄 한 가닥이라도 붙어 있는 것은 절단으로 인정하지 않아 고스란히 수술비를 날릴 때에는 기운이 쑥 빠져 후회스럽기도 했다. “처음에는 얼마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차츰 나만의 노하우도 생기고 수술 시간도 줄어들면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어온 이유는 다 환자들 때문입니다.”황 원장은 환자들 얘기에 연신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1mm의 혈관을 서너 시간씩 붙잡고 극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고난도 수술이고 미용성형보다 수가가 낮고 응급환자들이 많아 의료계에선 이미 기피업종으로 분류되지만, 그의 열정과 정성 어린 진료를 알아주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은 황 원장이 수술이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한결같이 고마워하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삼겹살과 생선회, 청국장과 고사리, 곶감 등이 병원으로 배달되고, 수술을 언제 해 주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도 늦게나마 찾아와 다짜고짜 그의 병원 앞에 쌀가마니를 내려놓고 가기도 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담배 한 갑, 구두 한 켤레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황 원장은 의사로서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그들의 손을 고쳐줄 수 있는 의사라는 사실에 언제나 감사한다고 말한다.병실 하나를 더 만들어 돈을 더 벌기보다 병실을 줄이고 환자들의 편의 공간에 더 신경을 쓰는 황 원장의 마음에 두손병원의 손가락 환자들은 모두 내 집처럼 편안하게 치료를 받는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부르듯 환자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장난을 거는 황종익 원장. 그의 환자를 향한 마음 때문에 서비스 품질 우수병원으로 인증돼 기술표준원 등이 수여하는 서비스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그 날도 황 원장은 수술 가운을 입은 채로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 멀리 안산까지 오신 손님이라며 기자를 대접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과연 이런 곳에서 이런 어려운 일을 감당할 만한 의사구나 싶었다. 다시 손가락 공장장은 수술실로 향한다. 환자를 향한 사랑과 감사를 제2의 언어인 손으로 표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