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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싶은 영혼, 아름다운 풍광에 발목을 잡히다!

  • 입력 2013.09.16 12:20
  • 기자명 임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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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지평선이 맞닿고 그사이에 구름이 그려주는 파노라마를 사진기에 오붓하게 담는 호사를 누린다.

보이는 것이라곤 지평선과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맞닿아 있을 뿐 산이든 뭐든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느껴지는 것이라곤 얼굴을 스치는 바람뿐인 고비사막을 황량한 길을 달린 끝에 욜링암산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긴다,
오전 6시30분, 이른 식사 후 옷가지와 일부 필수품들만 최소화하여 4대(미스비시 승합차3대, 스타랙스 1대, 짚차 1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몽골고비사막 울트라마라톤의 최초 출발 지점인 달란자가드를 향하여 630km의 대이동의 시작이다. 우리의 짐작으로 약 10시간 정도면 도착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 아침에 가벼운 컨디션으로 출발하리란 생각은 몇 시간 후에 무참히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2차선 아스팔트도로를 달리며 눈부신 태양과 구름과 초원의 양떼와 염소, 때로는 햇빛에 비단결같이 고운 머릿결을 출렁이며 달리는 말들의 자유 분망함을 보면서 최고조에 달하는 기쁨도 느꼈다. 드디어 비포장도로의 시작이다, 도로 상태는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길이란 것이 운전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로 길이다, 서로 경쟁을 즐기는 듯 내달린다, 마치 서울의 복잡한 도심에서 곡예운전을 경험한 듯 깊게 패인 웅덩이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달린다, 우리의 괴성을 즐기려는 듯 더 거칠게 몰고 간다. 기어이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잃어나고 말았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나를 매혹시키는 자연이 달리고 싶은 욕망을 자꾸 소멸시켜
분화구 같은 큰 웅덩이가 바짝 말라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있는 것을 보고 가로질러가려 들어섰지만 속은 물기가 숨어있는 늪이나 다름없었다, 한번 수렁에 빠진 차는 아무리 후진으로 빠져나오려 거칠게 용트림을 해보지만 바퀴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차체가 바닥에 닿아버렸다, 아~ 승차했던 일행들 모두가 들고, 밀고 애써도 불가항력이다, 이 황량한 벌판에서 어쩌란 말인가! 각각 이리저리 흩어져 달리던 일행 차들이 한참 후에야 우리차량을 찾아나서 되돌아 와서 구조를 하려했지만 그 마저도 함께 빠질 위험이 있어 가까이 접근을 할 수가 없다, 멀찍이서 로프를 연결해보지만 끈기고 만다, 결국 차로 먼 곳까지 가서 와이어로프를 구비한 차를 불러 모든 이들이 들고, 밀고하는 악전고투 끝에 아주 힘겹게 구조를 하고나니 무려 5시간 반이 흘러 버렸다. 그 구조의 시간 속에 엄청난 바람과 함께 비를 뿌려 한동안 영영 구조를 못 하려나 하는 절망의 먹구름도 보았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의 절망 속에서도 큰 희망을 볼 수 있었다, 20여명의 일행모두가 한마음처럼 누구하나 불평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희망을 끈을 노치 않는다. 돌을 주어 나르고, 바퀴 밑의 진흙을 파내고, 먼 곳까지 달려가 지나는 차를 세우고 구조를 요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걸 날려버리려는 비바람 속에서도 따듯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몸 하나 숨길 곳 감출 곳 없는 이 허허 벌판에서 각자의 할일을 척척 알아서 했다는 것이 바로 희망의 빛 이었다. 또 하나 놀란 점은 몽골인 들의 우직스럽고 고집스러움, 그리고 조금은 우매한 듯한 긍정적인 사고와 동료애가 참 과연 대륙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신의 차가 아님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헌신적으로 묵묵하게 힘든 일을 도맡아 돕고 있는 기사의 노력에 탄복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마을로 나와 펑크 타이어를 때우고 세상을 질식시킬 만큼 낮게 깔린 까만 먹구름에 한줄기의 햇빛 광채의 신비로움을 보며 나는 연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사진기를 들이대고 그 파노라마를 담기에 혼(魂)을 다 빼앗긴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나를 매혹시키는 자연이 달리고 싶은 욕망을 자꾸 소멸시킨다, 몽골의 풍광을 하나라도 빼 놓지 않고 담아가고 싶은 생각과 행동들이 사진기와 일체가 되어 민첩하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달린다는 것이란 그들의 삶 중에 아주 중요한 에너지의 원류-
불과 한 두 시간 전의 악몽 같은 사건을 까맣게 잊은 듯 또 서로 각자의 판단대로 내달리고 있다, 결국 내가 탄 차가 또 펑크가나 해가 저무는 어둑어둑한 황량한 벌판에서 타이어를 교환한다. 그 틈을 이용해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고 그사이에 구름이 그려주는 파노라마를 사진기에 오붓하게 담는 호사를 누린다. 이곳저곳 또 다른 곳에서 먹구름 아래 비 기둥이 보인다. 우리나라 같이 산과 건축물들에 가려 하나 보기도 힘든데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있는 이곳에서는 세 개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니 가히 그 넓음이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몽골에선 저기 아빠가 오신다고 말하면 이틀 후에 도착한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질 만큼 시야가 넓다. 저녁부터 드넓은 황야를 먹구름이 덮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란자가드 향해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멀리 이곳저곳에서 번개의 광채들이 번뜩이고 하늘에선 용트림하는 소리에 기가 질린다, 새벽3시경에 아주 작은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하나먹고 다시 출발하지만 이곳은 밤새 비가 많이 내려 물바다나 다름없다, 작은 자갈과 진흙투성이의 물웅덩이 사이사이로 차량한대가 전조등을 비추면 기사가 내려 도보로 전진해서 신호를 받은 후에야 선두차가 엉금엉금 저편에 무사히 건너는 릴레이 방식 이동으로 새벽녘에야 달란쟈가드의 숙소에 무려 10시간이 늦어진 새벽5시30분에 도착하고 말았다. 아~ 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가? TV에서나 봄직한 오지탐험 다큐멘터리나 다름없는 24시간 경험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지연으로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아침식사 후 1시간동안 샤워와 휴식을 취하고 예정대로 출발을 한다는 주최 측 통보에 참가자 누구 하나쯤은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나만의 노파심 이었다, 역시 나보다 더 훌륭한 울트라런너 들이라 뭔가 다르다는걸 느낀다. 이들에게는 ‘윌리암 글라써’의 선택이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 욕구 중, 힘의 욕구와 즐거움의 욕구가 남들보다 강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무엇인가 성취하고 스스로 중요한 존재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남보다 더 강한 것일까? 또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성취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뛰어넘는 즐거움(?)의 욕구가 강한 것일까? 이들에게는 달린다는 것이란 그들의 삶 중에 아주 중요한 에너지의 원류가 되어 이렇게 집착의 욕구가 강한 듯하다.

지평선과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맞닿아 있을 뿐 산이든 뭐든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첫날 50km의 출발은 달란쟈가드, 이 황량한 허허벌판에 금세 천둥번개라도 칠 듯 먹구름은 잔뜩 하늘은 뒤덮고 무엇 하나 바람을 늦출 것 없는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들에게 겁을 잔뜩 안겨주고 있다. 이곳은 해발 1,800m의 고지대, 아마도 지리산정상의 높이에서 달린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을 듯싶다, 하지만 지역이 평지라서 그 고도를 전혀 느낄 수가 없지만 조금 달리다보면 육체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배가된다. 보이는 것이라곤 지평선과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맞닿아 있을 뿐 산이든 뭐든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느껴지는 것이라곤 얼굴을 스치는 바람뿐인 고비사막을 황량한 길을 달린 끝에 욜링암산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제껏 높낮이가 전혀 없는 지평선만 바라보며 달리던 무료함에서 변화가 있고 짙은 먹구름사이로 찬란하게 비추이는 매끄러운 산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 정상 어귀에는 우리의 서낭당처럼 울긋불긋한 천이 휘감겨진 기둥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곳저곳에 낙타의 유골이 널려있는 것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몽골의 속살인 듯싶다, 수면부족과 고지대 탓인지 30km 지점에서 주자 2사람이 주저앉고 만다. 다른 일행들은 첫 구간을 무사히 완주하고 야외식사를 간단히 한 후 인근 욜린암 산의 이글밸리에는 7월임에도 얼음이 남아있고 마치 반지의 제왕 촬영지보다 더 뛰어난 계곡을 둘러보았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바로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
승합차로 2시간정도의 황량한 산악지대의 자갈길을 이동하여 벌판에 이르자 우리의 50년대 전후에나 볼 수 있었던 펌프가 있어 동작을 해보니 물이 펑펑 나온다, 2~30여 가구의 단층 판자촌마을이다, 잠시휴식을 취한 후 오늘의 마지막 10km구간이다. 이번 참가자중 미국인 로이(Roy)는 64세의 나이에도 24시간동안 244km를 주파하는 대단한 친구다. 달리는 내내 선두를 유지하여 내사진의 가장 훌륭한 모델이었다, 야생 낙타무리를 몰아 배경에 두고 달리는 사진을 찍어 도착 후에 보여줬더니 굿을 연발하며 나를 번쩍 들어올린다, 아마도 12일의 여정 중 가장 멋진 사진이듯 싶다. 약180km를 황야를 쉼 없이 거칠게 달려 콩고린엘스의 캠프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캠프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유목민 고유의 게르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들을 씻고 저녁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지만 각자의 얼굴들엔 피곤함보다 활력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긍정의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바로 휴식과 새로운 에너지가 아닐까… 동고비사막은 대부분이 초원이고 듬성듬성 산들이 있으나, 순수한 모래언덕이라는 뜻의 사막 바로 콩고린엘스(Khongoryn Els)는 동고비사막의 남쪽 도시 달란자가드(Dalanzadgad)근처에서 동서로 길이 180Km, 최대 폭 14Km, 높은 곳은 400미터에 이르는 띠 모양을 하고 있는 고비사막의 유일한 모래언덕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상상하던 모래언덕은 보이질 않는다, 온통 거친 자갈길뿐이었다.

작은 것에 감사해하고 기뻐할 줄 아는 여유로운 사람들과 함께한 멋진 밤
오늘저녁의 메뉴는 몽골 최고의 고유음식이라는 염소 찜, 기름통 같은 압력솥에 염소를 토막 내어 검은 자갈과 함께 찜을 해서 가장 연장자에게 가장 맛있는 부위를 주고 난 다음 뜨거운 검은 돌을 꺼내어 이손저손으로 옮기라 한다, 그 뜨거운 열기가 악귀를 몰아낸다고 한다. 보기에는 맛이 느껴지지만 치아가 부실한 내겐 육질이 너무 질기고 요상스런 냄새에 비위가 사나워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말았다. 식사 후 게르에 숙박하는 사람들이 모두 테라스에 모여 흥겨운 한마당이 펼쳤다, 춘포님의 장구를 시작으로 내 하모니카로 아리랑을 비롯한 도라지타령, 군밤타령 등을 연주하며 흥겨운 한마당을 펼치고 나니 영국인가족이 원더풀을 연발하며 하트모양의 초콜릿을 건넨다, 참 멋진 사람들, 작은 것에 감사해하고 기뻐할 줄 아는 여유로운 사람들과 함께한 멋진 밤이었다. 내일의 일정은 우리 모두가 고대(?)하고 상상하던 고비사막의 모래언덕을 달리는 일정이 기대되는 만큼 사막의 밤에 쏟아지는 아름다운 별빛도 눈에 담으려하지 않고 내일로 미룬 체 모두들 각자의 게르로 향한다.
<글, 사진 任容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