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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재판 비결

‘솔로몬의 재판’, 지혜로운 재판 표현 … ‘법조인’, 법조인 풍자한 작품

  • 입력 2004.1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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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프랑스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솔로몬의 재판’(1649)은 솔로몬 왕이 지혜로운 재판을 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살아있는 어린애는 두 여인이 서로 자기의 애라고 주장하니, 그렇다면 어린애를 반으로 갈라 하나씩 가지라고 했더니 한 여인은 그리 하겠다고 이에 응하는데, 다른 여인은 그렇게는 못한다고 해 그 어린애의 어머니가 누구라는 것이 자명하게 밝혀졌다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의 그림이다.
또 이탈리아의 화가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93)가 그린 ‘법조인’(1566)은 법조인을 풍자한 그림이다. 머리는 프랑스 병(당시의 매독의 병명)으로 다 빠졌으며, 얼굴 전체가 삶은 닭과 튀긴 생선으로 구성됐고,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닭의 눈이 초상화의 사나이의 눈이 되고 있고, 입은 생선의 입 모양을 하고 있다.[2R]
고가의 모피 코트를 입은 몸에 배에는 서류 상자를 띠고 있고, 가슴에는 귀중한 재판 서류로 가득 차 있어 법조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재판은 기지와 이치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 억울한 사람이 없애고, 법정에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언행을 해서는 안되며, 상대의 주장에 흠집 내고 입장을 당혹스럽고 난처하게 만들어서라도 무조건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도덕에 어긋나는 짓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러한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재판을 자기 주장에 유리하게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변호인도 있다. 이제 저자가 격은 재판장에서의 경험을 털어놓기로 한다.

남편이 아내 살해 후 성범죄처럼 가장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1960년대) 변호인들의 대부분은 법관 생활을 거친 분들이기 때문에 보다 능숙한 재판 기술을 지닌 분들이 많았다. 어떤 일이든지 여러 번 반복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그 경험을 토대로 해서 마련되고 기술도 향상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재판을 전문으로 다루는 법조인들에게는 재판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능숙하고 원만하며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게 해주며 무고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능숙한 변호인의 재판 솜씨 때문에 고전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기로 한다.
문제된 사건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후에 이를 가장하기 위하여 턱, 유두(乳頭) 및 대음순(大陰脣)을 물어 교상(咬傷)을 입힌 후 마치 성범죄자의 소행인 것처럼 가장해 한강 백사장에 내다 버렸는데, 감정 결과 남편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야말로 과학 수사로 사건의 개가를 올린 사건이었다.
그 사건의 감정을 담당할 당시, 시체의 턱에는 뚜렷한 상하 치흔(齒痕)이 남아 있었는데 반항한 흔적은 없었다. 반면, 유두와 대음순의 치흔은 상하 문치(門齒)의 것들만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후자는 개인 식별을 하는데 별 증거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턱에 생긴 치흔이 뚜렷하다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교상을 가할 당시에 피해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 있었거나 사망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일 피해자가 살아 있었을 때 턱을 깨문다면, 그 아픔 때문에 반항하거나 턱을 깨문 순간 피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면 원래의 치아 때문에 생긴 치흔의 교상과 피할 때 찰과되어 생기는 치아에 의한 교상이 혼합돼 본래의 치흔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는 뚜렷한 치흔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후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치궁(齒弓)의 형태 및 치아의 배열 상태는 만인 부동이다. 따라서 개인을 식별하는데는 지문만큼의 활용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용의자가 나오면 우선 그 치아의 석고 모형을 떠 문제의 턱에 남아있는 교상과 대조하는 일이 범인을 찾아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경찰은 수많은 용의자를 조사하였으나 헛수고였다. 그 후 S수사관의 제의로 피해자의 남편의 치아 석고 모형이 채취돼 연구실로 보내졌다.

남편의 치열과 교상 일치
저자는 그러한 치아 모형과 교상으로 하는 개인 식별 감정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임했다. 대략적인 검사 결과 남편의 치열과 교상이 일치했다. 따라서 정밀 검사에 착수해 약 1주일이라는 기간을 침식을 잊다시피 하면서 과학적으로 동일인의 것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처음 하는 것이어서 이 감정이 옳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었다. 그래서 모 치대의 K교수를 방문하고 상의했다. 그런데 K교수의 이야기로는 며칠 전 자기에게도 교상의 사진과 치아 모형의 동일 여부 문제가 감정 의뢰됐는데, 자기가 검사한 바에 의하면 동일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이미 통보했다고 했다. 그런데 K교수가 감정했다는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니까 바로 저자가 감정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여기에서 K교수에게 저자 나름대로의 감정 방법과 소견을 상세히 설명했더니, K교수도 동일인의 것이라는데 적극 동의하고 나섰다. 즉, 경찰이 감정을 두 곳에 의뢰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K교수는 서슴지 않고 자기의 감정이 잘못 됐으니 자기의 감정은 철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정직한 학자인 K교수의 높은 인격에 존경의 머리가 다시금 숙여지는 것을 느끼면서 무거운 발검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순간부터 여러 가지의 착잡한 고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편이 아내를 죽이다니?’
‘죽인 후에 그렇게 위장할 수 있을까?’
‘나의 감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등등의 문제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러나 생각을 가다듬고 감정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일을 위해 재확인, 또 재확인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을 때 이 감정은 틀림없는 것임을 완전히 굳히게 됐다.
창 밖에는 선남선녀가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축복하고 있었지만, 이 감정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초래되는 결과를 잘 아는 저자는 마음이 몹시 착잡했다. 또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에는 ‘신년이나 가족들과 같이 지내게 한 다음에’라는 생각이 들어 감정 결과 발표를 미루다, 결국 1월 4일에 발표했으며 그 남편은 수사관들에게 연행됐다. 남편은 경찰에서 자기가 범인임을 자백했다.
그러나 법정에 서서는 경찰의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검찰은 저자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 남편의 변호는 K변호사가 담당하고 있었다. 변호인의 반대 심문이 시작됐다. 변호인은 감정서의 사본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말문을 열었다.
“이 사진과 이 사진은 육안으로 보아도 전혀 다른데 이것을 어떻게 동일하다고 했나요?”
하고 감정서에 부착된 사진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계속해 17매나 첨부한 사진을 모두 틀린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그 빠른 말솜씨에 어느 것을 지적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말을 하면서도 말끝만은 흐려서 도저히 무슨 소린지 헤아릴 수가 없었고 정신만 얼떨떨해졌다. 한참 멍하니 서 있노라니까, “감정인의 감정은 모두가 틀렸지요?” 하는 느리고도 또렷한 변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머리를 혼란시켜 그런 답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옳거니! 이것이 재판 기술이고 재판 비결이구나. 이럴수록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그래서 소리쳐 답하기를, “아니요! 이 감정은 틀림없이 동일인의 것이라는 점이 증명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