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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사별, 그 이후의 반응

죽음으로 맞게 된 상실 그 자체 … 1년 후까지 우울 상태 계속될 수도

  • 입력 2005.03.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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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친구 두명이 아버님을 하늘로 보내드렸다. 의과대학 시절 한데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들 한마디씩 했다. “이젠 우리가 부모님 장례식에 참석할 나이가 되었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반가운 모습으로 만나던 얼굴들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시끌벅적한 문상객들을 멀리서 쳐다보고 있노라니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돌아가신 분 앞에서처럼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작은 불빛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사별을 받아들이는 3단계 사별(bereavement)은 죽음으로 맞게 된 상실 그 자체를 말한다. 애도(grief)는 상실과 연관된 감정과 행동(예를 들면 우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와 초기 정신분석가들은 고인과의 연결을 고통스럽게 포기하는 것이 애도작업(work of grief)이라고 했다. 즉 애도를 이별(분리)에 대한 복구반응으로 본 것이다. 애도는 뒤에 남은 사람이 자신의 정서적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 때 끝난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론에서는 애착이론의 영향을 받아 애도작업이 일련의 애착 행동을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애착이론은 강하고 지속적인 감정적인 유대(bond)를 만들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가정한다. 애착관계가 끊어질 때 사람들은 분리 불안을 경험하면서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행동을 보인다. 사별의 경우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고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궁극적으로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 동안, 고인에 대한 기억을 아주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사별과 애도는 이별과 애착이라는 딜레마를 풀려는 시도로 생각할 때 가장 잘 이해된다. 한편으로 사별한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지속되는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관계에 대한 연결점을 놓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는 심리적인 요구가 버티고 있다. 전자는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불러일으키며, 후자는 심리적인 평안감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사별의 전형적인 경과가 고통과 평안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사별과정은 개인마다 많이 차이가 있지만 대략 3단계로 구성된다고 생각된다. 첫 단계는 초기의 충격, 믿기 어려운 느낌, 부정 등이다. 다음 단계는 급격하게 찾아오는 불편감과 사회적인 위축이다. 마지막 단계는 서서히 진행되는 회복(restitution)과 재편(reorganization)의 과정이다. 이 세 과정은 칼로 자르듯 명확히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 겹치기도 하는 유동적인 과정으로 생각된다.죽음만이 애도반응을 가져오는 원인은 아니다. 급증하는 이혼율로 우리 주변에서 이혼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해 선택한 이혼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등 떠밀려 한 이혼이든 간에 이사람들 역시 애도반응을 경험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사별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것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위험 요소라고도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를 잃는 것이 애도를 경험하는 원인이 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나 사물 외에도 젊음이나 건강, 지적인 능력, 신체 감각(예를 들면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든가, 나이가 들어 청력이 저하되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이나 신체 일부(유방암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는 등)를 잃어버리는 것, 중요한 인간관계나 역할을 잃는 것(조기 퇴직 등), 능력, 잠재력 등이 손상되는 것도 애도 반응을 유발한다. 애도반응과 주요 우울증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DSM-IV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주요 우울 삽화의 증상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지 2개월 이내에 나타나 2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면 사별에 기인하는 것만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단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 계속 결근을 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두드러진 기능장애를 보이거나, 무가치감에 병적으로 집착하거나, 자살 사고가 있거나,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정신병적 증상이 지속되거나, 정신운동의 지연이 있는 경우는 주요 우울증을 진단하도록 한다. 사별과 관련된 우울 증후군은 매우 흔하다. 많은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 없이 저절로 좋아진다. 삶의 질 저하도 거의 없다. 자조모임 통해 소속감과 자신감 살아나는 경험그러나 약 1/3가량의 사별한 사람들이 1년 이후에도 우울 상태에 빠져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어머니를 잃었으니 우울할 만도 하지.” 하면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우울증후군에 대해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애도과정을 치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항우울성 약물이나 상담 치료가 애도과정을 방해한다는 케케묵은 생각은 비현실적이며, 치료를 막는 것이 오히려 고통과 무력을 연장하는 게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별자들은 치료 없이 잘 지내고 좋아진다. 주변의 친구와 가족들, 때로는 성직자들이 주는 지지와 확신, 정보로 충분하다. 그러나 보다 공식적인 도움이 애도과정을 돕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은 자조모임(self help group)이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접촉하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자조모임이 주는 소속감과 모임원들의 보살핌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다.자조모임보다도 더 공식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사별한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 정신과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 고인이 자살이나 타살로 사망하게 된 경우, 한꺼번에 인생의 갖가지 어려움에 노출된 경우, 사랑하는 사람을 동시에 여럿 잃은 경우, 살아남은 사람이 뭔가 실수를 저지른 사고에서 고인이 사망하게 된 경우, 사별자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주위에 도울 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라면 애도과정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002년 미국과 아마존닷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The Lovely Bones’라는 책이 있다(앨리스 셰볼드 著). 사랑스러운 뼈라니,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죽음이나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형성되는 사람들간의 유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지’라는 14살짜리 소녀가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고, 죽은 그녀가 이 세상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책이다. 어린 딸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이로 인한 가족들의 충격, 흔들리는 신뢰와 깨어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 모두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회복의 희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살인이나 죽음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이상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상실감을 극복하는 단순한 공식이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우리는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터이지요. 나는 깊고 어두운 슬픔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서 회복되는 데는 몇 년, 혹은 인생의 절반이 걸릴 수도 있어요. 정해진 시간 내에 반드시 슬픔이 치유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치유되는 과정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뒤에 남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빛을 찾고,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점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죠.”(www.yes24.com ‘The Lovely Bones’ 서적 소개에서 인용) 저자의 말처럼 죽음과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부분이다. 이를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남은 자의 갈 길은 달라진다. 똑같이 발치에 놓인 돌이라도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될 수도 있고 딛고 올라서는 받침대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참고 서적 : Kaplan & Sadock's Comprehensive Textbook of Psychoatry,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