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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상 발병상태에서 회상한 여행경험 그림

  • 입력 2016.02.15 10:48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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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어려서부터 매우 건강했으며 머리가 명석 총명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예술적 재능마저 지니고 있었다.

즉 그는 13세 때 고전문학을 마스터하고, 이 무렵부터 그림에 관심을 두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1837년에는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전문학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통달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첫 작품으로 <한여름 밤의 꿈>을 주제로 두 장의 요정그림을 그려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이 그림들을 본 평론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아 주위로부터는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화가라는 찬사를 받아 그는 자기세대의 가장 유망한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닷드는 왕립 아카데미에서의 교육과 훈련 및 전시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 들었다. 즉 그가 25세가 된 1842년 7월에는 변호사 토마스 필립스 경(Sir Thomas Phillips)의 여행에 동행하는 화가로 발탁 되었는데 그것은 토마스 필립스 경이 개인적으로 친한 여행을 많이 해서 중동과 이집트의 사정과 유명한 곳을 잘 알고 있는 데이비드 로버트(David Roberts)씨께 부탁해서 자기여행에 같이 가 그림을 그려줄 화가의 추천을 의뢰하였던바 그는 자기친구의 아들이어서 그 재능을 잘 알고 있는 닷드를 추천했던 것이다.

따라서 닷드는 필립스 경의 여행 동행화가로 발탁되어 10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거친 여행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화가로서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귀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닷드로서는 견문을 넓히고 자료를 수집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필립스 경과 닷드 일행은 1842년 7월에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를 통해 긴 여행을 시작해 터키, 키프로스, 시리아, 팔레스타인에 이루는 사이에는 말을 타고서의 여행으로 많은 고행을 하고 이집트에 와서 그들은 배를 타고 나일 강을 유람하는 매우 편안한 여행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행은 힘들었지만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닷드는 스케치를 하느라고 애를 썼다.

여러 곳을 여행하고 지중해의 몰타 섬과 로마를 방문하는 동안에 닷드에게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자기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오시리스 신 (Osiris 神)으로부터 악령으로 귀신 들린 사람을 없애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망상과 환각에 사로잡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행인들은 오랜 여행으로 오는 피로현상으로 넘겨 버렸으나 상태가 점점 노골화되자 닷드는 이를 견딜 수가 없어 일행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1843년 5월 말일이었다. 그렇지만 증상은 점점 악화 되어 1843년 8월 28일에는 자기 아버지를 근처 공원으로 유인하고는 칼로 찔러 살해하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엄청난 일을 저지른 닷드는 영국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도망쳤다. 프랑스에 간 닷드가 이번에는 오스트리아 황제를 살해하여야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마차를 타고 가던 사람을 살해하려 했기 때문에 체포되었다. 1844년 여름에는 영국으로 이송되어 정신병자로 판단되어 베들레헴(Bethlem) 정신병원의 범죄자병동에 수용되었다. 증상이 다소 호전되자 병원당국은 여행 동안 그가 스케치한 일부의 그림을 그에게 주어 그는 자신의 중동 여행을 회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정신의 이상증상을 느껴 런던으로 귀국한 직후에도 여행 시 스케치한 것을 수채화로 그린 것이 ‘카이로 Khalifs의 무덤’(1843)이라는 그림이며 낙타에 물건을 싫은 사람이 모스크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화제(畵題)는 ‘카이로 Khalifs의 무덤’이라 되어 있어 무덤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왜 무덤이라는 화제를 달았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거대한 ‘죽은 사람의 도시’라 불리는 중세 공동묘지 구역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유럽인도 도심에 공동묘지를 만들지만 카이로의 ‘죽은 사람의 도시’와는 크기에서 비교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의 도시’는 12세기 건축물 ‘살라딘 성’의 남북으로 수 킬로미터에 걸쳐 무덤건물이 길게 서있다고 한다.

카이로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낡은 이슬람 양식 석조 건물들이 가득한 이 지역을 보고 모스크가 참 많다고 생각하는데 모스크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무덤인 것이다. 그래서 닷드는 이 건물들을 스케치하고는 무덤이라는 화제를 달았던 것이다. 또 닷드가 그린 ‘캐러밴의 해변에서의 휴식’ (1843)이라는 그림 역시 중동과 이집트를 여행하며 스케치한 것을 정신의 이상증상을 느껴 런던으로 귀국한 직후에 그린 수채화이다.

캐러밴 또는 카라반(caravan)이란 낙타 등에 짐을 싣고 떼 지어 다니면서 특산물을 팔고 사는 상인의 집단을 뜻하는 용어로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대상(隊商)에 해당된다. 이들은 비단과 보석 같은 귀중품이나 특산품과 같은 비싼 물건들을 운반하곤 하였으며, 또 지름길을 택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막이나 초원, 비단길과 같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가로질러 다녀 항상 도적떼들의 표적이 되었음으로 도적떼로 부터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모여 다녔던 것이다.

▲닷드 작. '이집트 탈출' 1849~50, 런던, 태트 갤러리그림의 캐러밴들이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이 근처동네의 아낙네들이 물을 팔기 위해 나와 캐러밴들과 흥정을 하는 장면이다. 흥정이 끝난 여인은 낙타위에 앉아 있는 캐러밴에게 목이 긴 물병에 든 물을 전하고 있으며, 그 밑에는 작은 병에 든 물이나 물을 잔으로 팔기 위해 물잔과 주전자를 들고 있는 여인도 있다.

또 다른 닷드의 작품 ‘사막에서의 휴식’(1845)이라는 그림은 그가 병원에 입원하여 다소 증상이 좋아지자 병원당국은 그의 여행 중에 작성한 스케치 북을 그에게 내주어 그를 받아든 닷드가 입원 후 그린 첫 작품이라 한다.

여행을 떠 난지 4개월이 지난 무렵에는 닷드 일행은 기진맥진 해져 팔레스타인에서 2주을 보내고 예루살렘에서 요르단을 거쳐 그들 일행은 여행의 반환점에 들어서서 사해 (Dead Sea) 서쪽 해안의 Engaddi이라는 마을 근처의 사막을 가로 질러가다가 밤이 되어 달빛이 하도 아름다워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해 여장을 풀고는 모닥불을 피어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그로서는 그날 밤 사막의 달과 별빛이 하도 아름다워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것이 떠올랐는지 스케치한 것 중에서 우선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으로 이 그림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린 그림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없이 잘 그린 그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닷드가 그린 ‘이집트 탈출’(1849~50)이라는 그림은 그가 여행 중에 경험한 모든 일을 회상 되는대로 그린 것 같이 보인다. 그림의 우측 아래 부분의 힘없이 앉아있는 사람들은 성가족(聖家族)인듯하다. 왜인가 하면 그 우측 옆의 여인은 두 손 모아 경배하고 좌측의 병사는 별이 찬란하게 빛나는 방패를 그 가족에게 쪼이고 있다. 그림의 좌상부의 말을 탄 아랍 족은 화가가 제리코에서 만났던 전투 집단인 것 같고, 그림 가운데 야자나무 밑에 있는 군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투입된 로마병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며, 그림의 우측 윗부분의 사람들과 텐트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다마스가스 부근에 설치된 야영풍경을 그린 것 같다.

이 그림에서 가장 혼잡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배치이다. 어떤 부분은 사실과 일치돼 보이지만, 어떤 부분은 망상과 환각에서 우러난 사실과 다른 그림도 있다. 즉 야자수 좌측에 소년의 어깨의 손을 얹고 있는 여인의 발은 야자수 보다 앞에 있는데 머리는 뒤에 트럼펫을 부는 사람보다도 뒤에 있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어떤 부분은 상상의 시정(詩情)이 깃든 듯이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방법도 의미도 없는 그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전형적인 광기에 찬 미친 사람의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