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양이를 그린 화가 루이스 웨인(Louis Wain, 1860-1939)은 초창기에는 그의 작품을 담은 그림엽서만도 수백만 세트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국민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화가로서 인기를 누린 것과는 달리 그 개인의 삶은 불행하기 그지없었다. 즉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내 에밀리가 병으로 사망했고, 그 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관리개념이 희박해 엉뚱한 곳에 돈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리기도 했으며, 그림의 저작권에 대한 청구도 하지 않아 작품에 대한 수입은 단지 그림을 그려 팔리는 것뿐이어서 생활고에 시달
영국의 화가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1939)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애묘가(愛猫家)로서 7만 마리의 고양이를 여러 모양과 크기로 그리고, 또 그 의인화된 고양이들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정열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한편,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악습이나 결점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이유는 이러한 악습과 결점이 시정됨으로써 명랑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고양이가 반려동물로서, 즉 사람들의 가장에서 같이 생활하는 애완동물로서의 권익을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판단아래 정취 깊은 고양이의 그림을 그린 묘
영국의 고양이 화가 루이스 웨인(Louis Wain, 1860-1939)이 살던 19세기만 해도 영국에서 고양이는 그리 호감이 가는 반려동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애묘가(愛猫家)로서 1886년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그림을 기점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1만 년 전부터 사람들과 같이 살아온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을 되살려야 갰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고양이를 의인화해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고양이 화가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1939)은 고양이를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재미있게 묘사함으로써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그의 고양이들을 의인화한 그림에는 마치 사람들의 일상생활 양식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해 그 이면에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려 사람들의 호감을 샀던 것이다.우선은 그의 작품 ‘의인화 된 고양이들의 시장 광경’이라는 그림엽서의 그림을 보면 광장에서 과채(果菜)를 파는 행상과 닭고기를 파는 행상이 있다. 두 행상과 그 물건을 사는 의인화된 고양이를 비교하면 매우
영국의 고양이 화가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 ~1939)은 고양이를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재미있게 묘사함으로써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서 고양이들의 털이 날카로워지면서 거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흔히 하는 말로 개와 고양이는 감정표현이 서로 반대라고 한다. 상황에 따라 들어맞는 경우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개는 꼬리만 보아도 좋다는 기쁨이나 상대에 대한 공포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고양이는 꼬리뿐 아니라 표정이나 시선, 자세 등 몸 전체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리 쉽지가 않다.그렇게 고
영국의 화가 루이스 웨인(Louis Wain, 1860~1939)은 영국 동부의 클라켄웬(Clerkenwell)에서 1남 6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 미술 등 예술에 많은 관심과 재능이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예술적인 재능은 터키카펫 디자이너였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 웨인이 원래는 음악가가 되려고 웨스트런던 예술학교에 입학 하였으나 그가 20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고 가장으로서 어머니와 다섯 동생을 부양해야 했는데 동생
예술가는 대체로 그 감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때로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기도 하는데 그 배경은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이 자주 반복될 때는 미친 사람 취급을 하게 된다. 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중동과 이집트를 여행하다 정신이상이 생겨 아버지를 살해하고는 그가 1886년 1월 8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 22년간을 외부에는 한발짝도 나가보지 못하고 형무소와 같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그림 그리는 것이 허용되어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세계적인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를 두고 당시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라 할지라도 셰익스피어만은 못 내놓는다”라는 극찬의 말을 남겨 더욱 유명해 진 작가이다. 먼저 그의 희극작품 중의 하나인 의 한여름 밤이란 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夏至)의 전날 밤으로, 서양에서는 이 밤엔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에 바로 이 점에 착안한 셰익스피어는 요정들이 사는 신비로운 수풀 속에서 일어난 몽환적이고 기묘한
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정신병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며 그림을 그렸다. 즉 그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반기에는 증상이 호전 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구별되는 면은 그의 미술작업이 판매를 위한 것이거나 대중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자신을 위해 그렸다는 점이다. 즉 그는 관객이나 후원자, 혹은 추종자 등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날 자기가 즐겨 읽었던 고전
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병원에 입원기간 중 1840년 후반기에 들어서는 자기 자신의 정신불안정에 대해서 알아차렸으며 그 정신불안정은 일종의 계통적인 망상으로 구조화되어 그 망상은 이집트의 신들 특히 오시리스 신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이집트에 대한 집착은 19세기 전반의 유럽에 현실적으로 유행했던 이집트에 대한 열기의 연장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상황이 그가 이집트 여행에 즘 하여 그의 정신세계에 이상을 야기시키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정신에 이상이
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어려서부터 매우 건강했으며 머리가 명석 총명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예술적 재능마저 지니고 있었다. 즉 그는 13세 때 고전문학을 마스터하고, 이 무렵부터 그림에 관심을 두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1837년에는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전문학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통달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첫 작품으로 을 주제로 두 장의 요정그림을 그려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아그리피나(Agrippina)는 로마 황제 칼리쿨라(재위37~41)의 누이동생이자, 폭군 네로의 어머니이다. 아그리피나는 14살 때 오빠인 칼리쿨라와 관계를 맺었다는데,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는 오누이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그리피나는 15살 때 크리스푸스라는 귀족과 결혼했으나 얼마 못가 남편이 죽었으므로, 이번에는 아헤노바르부스라는 명문과의 귀족과 결혼하였다. 아헤노바르부스라와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네로(본명은 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다. 그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준 당대의 인물이다. 금욕과 완벽한 도덕주의자이었던 세례 요한은 “시동생인 헤로데 왕과 형수인 헤로디아의 결합은 불륜상간(不倫相姦)의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감옥에 갇혔어도 의연한 행동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으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못된 행동을 꾸짖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방탕하고 사악한 헤로디아와 그녀의 전남편의 딸 살로메의 흉계와 음모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문학과 예술인들은 세례 요한의 비국적인 죽음의 드라마에 깊이 매혹되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