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신병동에서 그린 화가의 현실과 기억회상그림

정신병 화가 리처드 닷드 작품의 의학탐정화실 ④

  • 입력 2016.04.21 11:44
  • 기자명 문국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의 화가 리처드 닷드(Richard Dadd, 1817~86)는 정신병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며 그림을 그렸다. 즉 그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반기에는 증상이 호전 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구별되는 면은 그의 미술작업이 판매를 위한 것이거나 대중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자신을 위해 그렸다는 점이다. 즉 그는 관객이나 후원자, 혹은 추종자 등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난날 자기가 즐겨 읽었던 고전이나 실화 중에서 기억을 더듬어 떠오르는 것을 열심히 그림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렇게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베트레헴 병원의 찰스 후드 원장의 각별한 배려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서 환자 생활을 하면서 그의 걸작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후드 원장이 보관하고 있던 닷드의 작품 ‘격정(激情)을 위한 스케치 시리즈’라는 20점의 그림은 정신이상 화가가 자기가 건강하였을 때 터득한 고전이나 문학적으로 특징이 있어 기억에 남았던 것들과 개인적인 체험들을 표현한 것이 포함돼 있는데 이 작품들은 정신이상자의 깊숙한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을 형상화해 정신이상자의 마음상태의 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의 ‘격정의 스케치, 증오’(1853)라는 작품을 보면 리챠드 공작이 잉글랜드의 왕 헨리 6세를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이 닷드 자기 자신의 광기(狂氣)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닷드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리챠드 공작이 닷드 자신으로 살해 후 살인자의 표정을 그 잔인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닷드의 살인이 일시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닷드의 광기 표현은 자기 자신의 일상생활과 정신세계를 분리하려는 것으로 그 이미지는 예술세계에 속하며 일상생활의 세속적인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고 표현하고 있다.

닷드의 작품 ‘찬란함과 부, Splendour and Wealth’(1853)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극적인 첫 만남에서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토니우스를 환영하는 만찬에 초청한다. 안토니우스가 그녀의 초청에 응해서 만찬장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랑삼아 이 만찬은 ‘지상 최고의 만찬’이라 자랑 했다. 그런데 만찬식탁에 차려놓은 것은 단지 두 잔의 술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토니우스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이것이 지상 최고의 만찬이냐”는 말은 하지 않아도 쓸쓸한 표정으로 실망하는 듯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귀걸이로 달고 있던 커다란 진주를 떼어서 술잔에 담그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진주는 서서히 녹아 들어갔고, 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진주 칵테일’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나머지 귀걸이의 진주를 떼어 술에 담그려하자 안토니우스는 그만 자기가 경솔했음을 자인하고 그것을 만류 하였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이집트의 운명을 건 이 연회게임에서 승리 해 그날 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최고급 만찬을 즐기며 사랑을 나누는 밤이 되었던 것을 닷드는 ‘찬란함과 부’라는 주제로 그림의 빛깔의 다양함으로 ‘찬란성’과 ‘부’를, 또 그녀가 의자 아닌 침대에 앉아 하체의 노출은 그날 밤 두 사람의 결합까지 표현하였다.

로마의 전설적 실화에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Tar-quin and Rucrenus)’라는 이야기가 있다. 루크레티아라는 귀부인이 있었는데 당시 군주는 타르퀴니우스라는 폭군이 있었다. 폭군에게는 섹사투스 타르퀴니우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루크레티아의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을 지켜 보아오던 섹사투스는 어느 날 그녀의 방에 들어가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완강히 거부하자, 그녀와 노예 한 명을 죽여서 나란히 눕혀 놓고는 남녀가 간음하는 것을 보고 현장에서 한칼에 베어버렸다고 선전하겠다고 협박해 하는 수 없이 루크레티아는 몸을 허락한다.

섹사투스가 돌아간 다음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인데 이 내용의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칼을 든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서 루크레티아는 높은 지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이다. 본인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 몸을 내줄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더럽힌 자기 몸은 자기가 정리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자결이라는 인생의 짐을 스스로가 지는 것이었다.

닷드가 이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아 혹시는 자기가 아버지를 죽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닷드가 그의 아버지 살해에 대한 고백을 후드 원장에 한 기록을 보면 ‘닷드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는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하는 남자를 살해하였다는 것이며, 그 남자에는 악마가 붙어 있기 때문에 신이 그 남자를 죽이라고 명령해서 그 남자를 죽였을 뿐이다.’라고 진술 하였다는 것으로 심한 망상에 의한 살인으로 보인다.

때로는 자기 정신이 들면 자기가 죽인 사람이 진실로 아버지라면 자기는 불효막심한 행동을 한 것에 해당된다는 것을 느껴서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추측 해 보게 한다.

닷드의 작품 ‘박카스 축제의 정경’(1862)이라는 그림을 보면 오른쪽 밑에 있는 것이 사튜로스인 것으로 박카스 축제를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튜로스는 산양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고, 박카스의 쾌락주의를 대신하여 표현하고 있다. 사튜로스가 마시려는 잔에는 라틴어로 된 글이 쓰여져 있는데 읽기 편하게 그림의 뒤에 썼다는 것이다. 즉 닷드는 이 글과 같이 사람은 죽어서도 불운은 면할 수 없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각기 불행한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불운은 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정신이상자의 내면세계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특히 닷드와 같이 침착하게 그리고 정연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다른 화가와 다를 바 없으며, 그는 최후까지도 자기는 살인을 한 것이 아니며 악마가 한 짓임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지나온 경력과 병원에 남아있던 병상일지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들을 분석한 후세의 정신과 의사들은 닷드의 망상은 편집증적 정신이상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드 병원장이 세상을 떠난 후 닷드의 그림은 유명무실한 것으로 흩어져 있다가 그가 한 사람의 화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90년에 가까운 1974년에 그의 회고전이 태트(Tate) 미술관에서 개최되면서부터다.

닷드가 20여 년간 입원하고 있던 베들레헴 정신병원은 그 당시는 사리 주의 사자크에 있었는데, 그 지역이 지금은 런던시내로 편입 되었고 병원건물은 전쟁기념관이 되었으며, 그 병원은 1930년에 현재의 사리 주로 이동하여 병원 내에 작은 미술관이 병설되어 그 미술관에는 닷드의 수채화 약 20점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