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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토박이말 잘 살린 추억의 명곡, '꽃밭에서'

  • 입력 2017.03.23 13:47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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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 정훈희 노래의 ‘꽃밭에서’는 노랫말이 아름다운 추억의 대중가요다. 우리 토박이말을 잘 살려 쓴 가사와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 해맑은 정훈희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정감이 나는 불후의 명곡으로 꼽힌다. 

가요계 사람들이 좋은 노래로 손꼽는 ‘꽃밭에서’는 작곡가 이봉조가 한 때 어려움을 겪고 있던 가수 정훈희의 재기를 돕기 위해 만들어준 곡이다. 1975년 12월 정훈희가 대마초 파동에 걸려 노래취입 등 가요계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가수들이 ‘꽃밭에서’ 곡을 서로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작곡가는 힘들어하고 있던 정훈희에게 “이 곡은 내가 제일 깨끗한 마음으로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는 네 것이다”며 연습을 시키고 취입토록 했다. 그렇게 해서 ‘꽃밭에서’는 1978년 음반으로 발표되고 방송전파를 타면서 히트곡이 됐다. 그 바람에 바닥에 떨어졌던 정훈희 인기가 되살아나기 시작, 가요계 정상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정훈희는 2016년 11월 10일 밤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노래 ‘꽃밭에서’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처음 ‘꽃밭에서’의 멜로디를 들었는데 너무 예뻤다. 그런데 내가 대마초 파동에 걸려들었고, 다른 가수들이 곡을 탐냈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주셨다”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작곡가 故 이봉조를 향한 정훈희의 가슴 아픈 사연은 시청자들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녀는 ‘안개’, ‘무인도’ 등 많은 명곡을 만들어준 이 작곡가 묘소를 찾아 “이 선생님은 ‘인간 정훈희’를 ‘가수 정훈희’로 만들어준 분이다. 저한테는 이 선생님이 빠질 수 없다”며 옛 추억에 잠겼다. 

가수 현미(본명 김명성, 1938년생) 남편이기도 한 이 선생은 1931년 5월 1일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87년 8월 31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색소폰연주자 겸 가요작곡가로 활동했다. ‘꽃밭에서’는 가수 소향과 성악가(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룡돌’로 불리는 노래그룹 JJCC가 정훈희와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합작)으로 컴백했다. 

JJCC는 2015년 4월 6일 유튜브 채널과 온라인 음악사이트 등을 통해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리메이크한 3번째 디지털싱글음반 ‘꽃밭에서(JJCC-정훈희)’ 티저영상을 선보였다. 30초 분량의 영상엔 ‘꽃밭에서’의 아름다운 선율이 리드보컬 에디(Eddy)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가운데 봄을 맞아 바닷가로 떠나 즐기는 JJCC 다섯 남자들의 힐링 얘기가 담겨 눈길을 끌었다. JJCC의 디지털싱글음반 ‘꽃밭에서’는 국민애창곡으로 인기가 꾸준하다.

◆ 가사 둘러싼 이색주장…“성균관 유생 최한경 詩”
‘꽃밭에서’가 히트곡으로 뜨자 노랫말 출처를 둘러싼 이색주장이 나와 흥미롭다. 원래가사가 작사가 이종택 씨 작품이 아니라 세종 26년 진사로 시작해 이조참판을 지내고 세조 12년 강원도 관찰사로 관직을 마친 최한경(崔漢卿)의 한시(漢詩)란 것이다. 최한경에겐 성균관 유생 때 어릴 적부터 마음에 뒀던 박소저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대상으로 양쪽 아버지끼리 혼삿말이 오가기도 했다. 고향의 그 이웃집처녀를 생각하며 지은 애틋한 시가 이 노래의 원래가사란 설명이다. 

성균관 유생이면 유교사상 흐름 속에 공부해야할 처지였지만 사랑이 이념, 사상, 신분을 뛰어넘었다. ‘반중일기(泮中日記)’에 실린 한시는 봄날 꽃밭에 피는 고운 꽃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고백이 절제된 품격으로 다가온다. ‘반중일기’는 최한경이 자신의 일생을 쓴 자서전이다. 최한경이 쓴 ‘花園(화원)’은 다음과 같다.

坐中花園 膽彼夭葉(좌중화원 담피요엽) :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 云何來矣(혜혜미색 운하래의) :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何彼(艶)矣(작작기화 하피염의) :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 吉日于斯(사우길일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君子之來 云何之樂(군자지래 운하지락) :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臥彼東山 (觀)望其天(와피동산 관망기천) : 동산에 누워 하늘을 보네
明兮靑兮 云何來矣(명혜청혜 운하래의) : 청명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維靑盈昊 何彼藍矣(유청영호 하피람의) : 푸른 하늘이여 풀어놓은 쪽빛이네
吉日于斯 吉日于斯(길일우사 길일우사) :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美人之歸 云何之喜(미인지귀 운하지희) :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정훈희, 부산 태생으로 해변카페 ‘꽃밭에서’ 운영
정훈희는 1952년 5월 11일 부산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J의 고모다. 이후 당대 최고작곡가 이봉조와의 인연으로 노래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수로 데뷔했다.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 곡 ‘너’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가요제에선 ‘무인도’로 3등상과 최고가수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방송에 나갈 수 없었다. 1981년 규제가 풀렸음에도 재기무대가 순탄치 못했으나 노래 ‘꽃밭에서’로 제2전성기를 맞았다. 한창 대한민국 대표급 가수로 거듭나던 가수 김태화(1950년 10월 4일생)와 결혼, 임신한 가운데 음반 ‘우리는 하나’를 함께 취입하기도 했다. 30여 년만인 2008년 독집앨범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를 냈다.


정훈희는 부산서 자신의 히트곡 ‘꽃밭에서’를 상호로 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매주 주말과 일요일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해마지로 238에 있는 카페에서 남편 김태화와 공연하며 손님을 맞고 있다. 방송에 소개되기도 한 해변라이브카페 시설이 깔끔하고 바깥풍광도 아름답기로 소문나 길손들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