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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취미가 약탈로 변한 미술범죄

  • 입력 2006.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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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파손된 채로 진열된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 ICPO)의 집계에 의하면 도난당한 미술 작품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액은 연간 수십억 불에 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암시장에서의 거래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국제 범죄 조직에서 마약 다음 가는 중요한 수입원임에 틀림없다고 한다.
범죄학에서는 각종 미술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미술범죄(Art Crime)'라 하고 이에는 미술작품을 둘러싼 사기, 절도, 약탈, 강탈 ,위작 그리고 예술파괴행위(vandalism)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3~4천 년 전 이집트의 왕족들이 사망하면 고가의 금은보화와 귀중한 미술품들이 같이 매장 되는 것을 아는 도굴꾼들은 장례식에 뒤따라 이를 도굴했다. 로마시대에는 외국을 침공하면 재물 뿐만이 아니라 각종 미술 장식품도 약탈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 전쟁, 내전, 동란, 혁명 등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뒤따르는 것이 미술범죄였다. 미술작품이 왜 범죄의 대상이 되는가를 분석한 범죄학자들은 이를 미술작품의 사회적 가치가 증가하는데 따르는 수반 현상이라 분석했다. 서양사회에서는 예로부터 예술가는 창조적인 천재로 이들의 작품은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특히 이러한 작품들이 미술관에 전시됨으로써 그 작품의 가치는 높아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관심을 두게 됨에 따라 그 작가의 작품의 값은 더욱 상승한다. 또 화랑, 옥션 회사 등이 이러한 경향에 박차를 가하고, 미술평론가에 의해 작품의 미적 의미가 어떻게 중요한가가 설명 돼 이를 뒷받침 한다면 그 작품의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게 된다. 이렇게 미술작품의 가치에 수반 되는 값이 상승하면 넘보게 되는 것이 미술범죄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최근 범죄학자들이 분석한 미술범죄의 동기로는 다음과 같다. ▲ 개인적 소유욕 ▲ 수집가의 의뢰 ▲ 밀매 상에 팔기 위해 ▲ 옥션 회사에 의탁하기 위해 ▲ 투자의 목적 ▲ 보상금을 노려 ▲ 정치적 목적 등이다.

금전과 관계되는 것들
이상의 분석된 동기 중 개인적 소유욕과 정치적 목적을 제외한 다른 동기들은 모두가 금전과 관계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전술한 바와 같이 그 작품의 값이 오른다든가 아니면 하나뿐이어서 희소가치가 있다든가 하는 경우에 이를 대상으로 삼게 된다. 개인적인 소유욕이 동기가 되는 경우 그 작품이 자기의 취미에 맞기 때문에 또는 왜 그런지 무조건 좋기 때문에 훔치는 동기가 된다. 일명 '취미 도둑'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그림을 훔친 도둑이 그 그림을 좋아하고 사랑해 자기의 옆에 두고 싶어서였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개중에는 그림이란 고관대작이나 부유층만이 즐기고 소유한다는데 대한 반감에서 범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처음에는 취미 때문에 훔쳤지만 나중에는 이를 수입과 결부시킨 예도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엘긴 경(Lord Elgin)을 들 수 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인류 180만 년 문화를 총망라한 약 6백만 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소장품은 약 100개의 전시실에 진열 전시돼 있다. 이 중 관람자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테네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의 대리석 조각을 전시한 파르테논 갤러리(gallery)이다. 이 전시실은 장엄한 방에 대규모의 조각들이 균형 있고 아름답게 진열돼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을 최근까지는 '엘긴 마블(Elgin marble)'이라 불렀다. 19세기 초에 당시의 주 터키 영국대사이던 엘긴 백작이 이 대규모의 조각군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아테네에서 약탈해 런던으로 운반해 왔다. 이것을 영국 하원 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기 때문의 그의 이름을 붙여 엘긴 마블이라 했던 것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숭고하고 웅장한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이며 신전은 아테네 민주제(民主制)의 전성시대인 기원전 423년에 완성된 것으로 그간 개축과 전쟁 그리고 대기오염 등으로 파괴된 것을 계속 복구했다. 엘긴이 터기에 영국대사로 부임했을 때 터기는 그리스를 점령해 군정 사령관과 민사업무를 담당하는 두 통치자를 두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아크로폴리스 유적에 대해서는 두 통치자 모두가 전혀 관심이 없었다.

[2R]엘긴의 대리석 조각 반입에 대한 영국의 환영과 반발의 상반된 반응
그러나 엘긴은 유적 중에서도 대리석 조각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군정권을 쥐고 있던 통치자에게 접근해 그에게 여러 방법으로 환심을 사는 한편, 망가진 대리석 조각을 영국에 갖고 가 수리, 복구해 온다는 명목으로 대리석 조각의 반출 허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신전에 발판을 매고 작업을 하려는데 프랑스군이 군사적 행동을 시작한다는 정보를 접한 군정 당국은 엘긴에게 아크로폴리스는 군사상 중요한 지점이니 출입을 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난처하게 된 엘긴은 당시 터키의 황제였던 사루탄에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특명을 내려줄 것을 부탁해 성공,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엘긴은 파르테논의 대리석 조각을 영국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 배로 33회에 나누어 무려 2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거쳐 이를 운반했다. 도중에 배가 난파 돼 그 많은 조각이 바다 밑으로 침몰하자 이를 건져 올리는데 무려 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
엘긴은 이 작업을 전적으로 사재를 들여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많은 부채를 지게 돼 하는 수 없이 이 대리석 조각들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이를 영국 정부가 사들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엘긴은 그 대리석 조각의 가치에 반 값도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지만 이를 내놓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엘긴의 대리석 조각 반입에 대해 영국에서는 환영과 반발의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리스 미술작품의 실물을 볼 수 있게 된 조각가나 화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즉 이 조각들은 그리스 미술의 진수이며 그 실물을 보게 된 것에 대해 충격적인 기쁨을 느낀다고 환영했다. 반면에 엘긴과 동시대의 호레스 스미스(시인이며 작가 1779~1849)는 엘긴을 '대리석 도둑'이라 했고, 바이론 경(시인 1788~1824)은 그를 '약탈자'라 했으며 토마스 하디(소설가 1840~1928)도 그를 혹평했다.
1829년 터키에서 독립한 그리스는 엘긴이 파르테논 조각을 약탈했다고 규정하고 그것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 호소문에 '파르테논 조각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며 우리의 가장 숭고한 상징입니다. 또 그것은 민주적 철학에 대한 찬사이며 명성이고 희망인 것입니다. 제발 그것을 반환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간곡한 호소를 했지만 영국 정부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