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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은 한국소비자원의 해명·자료제출 요청에 응할 의무가 있을까

의료행위를 둘러싼 환자와 의료기관 사이의 분쟁이 발생한 경우, 환자(소비자)는 의료기관(사업자)의 의료서비스로 인한 피해의 구제를 한국소비자원에 신청할 수 있다(소비자기본법 제55조 제1항). 이 때 한국소비자원은 환자의 피해구제 신청사건이 접수된 경우, 그 상대방인 의료기관에게 서면으로 접수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소비자기본법 시행령 제43조 제2항).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한국소비자원이 위 접수사실 통보와 함께, 갑자기 의료기관에게 매우 많은 내용의 해명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로 들어, 환자가 의료기관의 시술로 인한 피해 구제를 신청한 경우, 일반적으로 한국소비자원은 의료기관에 대하여 ① 환자의 상태, 호소내용 및 검사결과, 치료계획, ② 시술을 하게 된 원인, ③ 시술 전 환자에게 설명한 내용, ④ 시술 소견과 시술 중 특이사항 여부, ⑤ 시술의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 시술 후 악결과가 발생하거나 기존 증상이 악화되었다는 환자의 주장에 대한 의견, ⑥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악결과 진단을 받게 된 것과 시술의 관련성 여부, 관련성이 없다면 그 이유, ⑦ 시술 전 실비보험 가입여부를 확인하고 시술을 시행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 ⑧ 환자와의 분쟁에 대한 의료기관의 구체적인 해결방안 제시 등에 대한 해명을 하고, 진료기록부 사본, 영상자료 일체, 의사면허증 및 전문의자격증 사본, 사업자등록증, 진료비 영수증 일체 등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의료기관이 위와 같은 한국소비자원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응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해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물론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가 신청한 피해구제 사건에 있어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업자에게 그 업무에 관한 보고 또는 관계서류 등의 제출을 명할 수 있다(소비자기본법 제77조 제1항, 제83조 제2항 제2호). 또한 사업자가 한국소비자원의 보고 및 자료 제출에 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소비자원은 시·도지사가 당해 사업자에게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행정처분의 의뢰를 할 수 있다(소비자기본법 제56조, 제86조 제1항 제4호, 제2항, 동법 시행령 제69조, [별표2] 2. 라.).

다만, 의료기관은 일반적인 사업자가 아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소비자원이 의료기관에게 해명 및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사항은 의료법에 따라 비밀로 보호되는 진료기록의 내용에 해당하고, 의료기관은 환자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진료기록의 내용을 열람케 하거나 그 사본을 제공할 수 없음이 원칙이다(의료법 제19조 제1항, 제21조 제2항). 더구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달리, 한국소비자원은 의료법 제21조 제3항에 따라 예외적으로 환자의 진료에 관한 사항의 열람 또는 사본 교부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지위도 없다.

따라서 한국소비자원이 의료기관에 대하여 해명 및 자료제출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이 지정하는 대리인’으로서, ① 기록열람 또는 사본발급을 요청하는 자의 신분증 사본, ② 의료법 시행규칙상 서식에 환자가 자필서명하여 작성한 동의서와 위임장, ③ 환자의 신분증 사본 등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2호, 동법 시행규칙 제13조의3 제2항이 정한 진료기록 열람·등사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한국소비자원이 언제나 위와 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 의료기관에게 해명 및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한국소비자원의 요청을 받았을 때 관련 서류가 전부 구비되어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만약 관련 서류가 구비되지 못 했을 경우 의료법 제21조 제2항에 따라 한국소비자원의 해명 및 자료 제출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이 의료법 제21조 제3항 제2호, 동법 시행규칙 제13조의3 제2항이 정한 진료기록 열람·등사의 요건을 충족하여 해명 및 자료 제출을 요구했음에도, 의료기관이 한국소비자원의 요청을 거부했을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 15일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 등 법적 위험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법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부득이 의료기관은 한국소비자원의 해명 및 자료 제출에 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에도 우려가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의료기관에게 해명 및 자료 요청을 할 때, 이를 거부할 경우 행정처분이 아닌 ‘벌칙’을 부과할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사항 자체가 지나치게 많고, 실제 분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에 대해서도 해명을 요구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많은 해명요청사항에 대해서, 의료기관이 단기간 내에 답변서를 준비하여 제출하는 것 자체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또한 민사소송의 일반원칙에 의하면, 의사의 과실,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과실과 악결과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악결과로 인한 손해액 등 환자가 의료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요건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책임은 환자에게 있는데, 한국소비자원은 환자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하여 의료기관에게 해명을 요청하고, 해명에 응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손해배상의 입증책임을 전환시켜버리는 문제가 있다. 

덧붙여, 위의 사례에서도 언급한 ‘시술 전 환자에게 실비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고 시술을 시행하였다는 환자의 주장’은 사실 환자의 악결과에 대한 피해구제와 거의 관련이 없는 사항인 반면, 답변의 내용에 따라서는 마치 의료기관이 보험사기 행위 등을 한 것처럼 오인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소비자원은 이러한 사항에 대한 해명 요청을 자제함이 타당할 것이나, 의료기관으로서도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에 대한 해명 요청을 받을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서는 답변서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법률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서 매우 신중하게 답변내용을 결정함이 적절하다고 본다.

세승 박재홍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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