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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개발과 발달의 역사Ⅰ

도광기(Lichtleiter, 導光器)의 개발에서 초음파내시경검사법의 발전과정

  • 입력 2018.04.13 11:07
  • 수정 2018.04.13 14:29
  • 기자명 심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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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시경검사의 선구자들: 튜브와 카테터

오랜 옛날부터 의료목적으로 몸 안에 인공물을 삽입해왔다. Ralph Major의 리뷰를 보면 튜브, 속이 비어있는 막대기를 이용해 검사하거나 이물질 제거 목적으로 이용해온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어쩌면 서력기원보다 치료목적으로 위 삽입을 시행한 시간들이 더 오래 되었을지도 모른다.

1) 1962년에 스위스 의사인 Stocklin은 뉴기니에서 원시 토착민이 위를 비우기 위해 구부러진 포도나무 줄기를 입안에 넣어 구역질, 구토를 유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석기시대 때도 훨씬 오래전부터 포도나무 줄기와 유사한 기구가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 Fabrizio D’ Acquapendente(1537~1619)라는 위대한 해부학자는 식도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하거나 위 내로 밀어 넣는 장비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삼키는데 어려움을 가진 환자들을 위한 튜브도 개발하였다. 그는 은으로 만든 튜브 겉에 양의 창자를 씌워 위로 들어가기 쉽게 하였다. 튜브의 끝부분은 깔때기처럼 만들어 액체를 쉽게 부을 수 있도록 하였다.

▲ 그림 1. The Hildanus 튜브는 여러 구멍이 있는 금속 재질의 튜브로 생선 가시나 그 외 이물질을 제거하는데 이용되었으며 튜브 끝부분에 스폰지가 감싸여져 있다. Hildanus는 이 튜브는 식도내 이물질을 위 내로 밀어 넣기도 하였다.
▲ 그림 1. The Hildanus 튜브는 여러 구멍이 있는 금속 재질의 튜브로 생선 가시나 그 외 이물질을 제거하는데 이용되었으며 튜브 끝부분에 스폰지가 감싸여져 있다. Hildanus는 이 튜브는 식도내 이물질을 위 내로 밀어 넣기도 하였다.

3) Guilhelmus Fabricius Hilandus(1560~1634)는 식도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위관을 설계하였다. 생선가시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기 쉽게끔 위관에 구멍을 뚫었고 이물질이 스펀지에 붙을 수 있게 관 끝에 스펀지를 감싸 놓았으며 식도 내 이물질을 위 내로 밀어 넣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19세기 초기 때부터 많은 병원에서 유연한 고무 튜브를 이용해 위에서 해로운 이물질을 제거하고 해독제를 주사하는데 사용되었다.

4) Kussmaul 펌프

‘소화기내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Kussmaul은 처음으로 위관을 위 질병 치료목적으로 사용한 의사이다. 1867년 이후에는 위세척 말고도 식도협착 치료에 보다 더 단단한 고무 튜브로 만든 위관을 사용하였다. Kussmaul은 또한 그의 튜브를 Weiss가 고안한 흡인 펌프 장치로 유분부협착을 확장하는데 이용하기도 하였다.

▲ 그림 2. 위 흡인과 위 확장 치료목적으로 쓰인 Kussmaul 튜브와 펌프. (ref 31)
▲ 그림 2. 위 흡인과 위 확장 치료목적으로 쓰인 Kussmaul 튜브와 펌프. (ref 31)

1869년에 Kussmaul은 위 정체에 관하여 긴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치료법은 그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환자들에게 스스로 위세척을 하도록 설득했고 거의 모든 환자들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위세척 때는 단단한 고무 튜브를 이용하면 위 점막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단순 사이펀작용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튜브를 추천하였다. 1870년부터 Dieulafoy가 파리에서 이 Kussmaul 치료법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 그림 3. 파리 Galante et fils and Collin 회사에서 생산된 Faucher 튜브 (1900년)-주로 프랑스, 스페인에서 복부/위 세척(stomach lavage) 용으로 사용되었다.
▲ 그림 3. 파리 Galante et fils and Collin 회사에서 생산된 Faucher 튜브 (1900년)-주로 프랑스, 스페인에서 복부/위 세척(stomach lavage) 용으로 사용되었다.

5) 20세기 중반까지, 위궤양에 의한 협착 때문에 위정체로 구토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께 취침 전 위액흡인과 위세척을 실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절차였다.

튜브를 사용하여 위 내용물을 분석하거나 중독 또는 십이지장 유문협착 치료목적으로 위를 비우는 것 외에 상부 위장관에 유발한 질병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진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의료진들은 청진법, 타진법 그리고 촉진법 같은 감각능력들을 의료기술들과 병행하기 위해 더욱 발전시켰다.

6) 위광선투과검사(Gastrodiaphanoscopy)는 전기적 빛으로 복강 내에 밝기를 생산하여 광선투과로 위의 모양과 형태를 평가할 수 있는 검사이다. 1845년에 P.L.A Cazelave가 처음 광선투과검사(Diaphanoscopy)를 시도해 보았다. Henry L. Bockus의 멘토인 Max Einhorn는 외부 스위치와 배터리가 전선으로 연결된 에디슨 백열전구가 맨 끝에 부착된 얇은 위관(gastric tube)을 창안하였다. 이 장비는 위투과조명기(gastrodiaphane)이며 1908년 x-ray 도래 전에 널리 사용되었었다.

▲ 그림 4. 투과조명(transillumination)으로 복부와 위를 비추는 Einhorn’s 위투과조명기. - 어두운 곳에서 복벽을 투과하는 불빛으로 위의 사이즈와 윤곽을 예상할 수 있었다.
▲ 그림 4. 투과조명(transillumination)으로 복부와 위를 비추는 Einhorn’s 위투과조명기. - 어두운 곳에서 복벽을 투과하는 불빛으로 위의 사이즈와 윤곽을 예상할 수 있었다.

환자에게 물 1~2컵을 마시게 하여 위벽을 과도하게 뜨겁게 하지 않고 검사방은 어둡게 하여 복벽을 투과한 위의 그림자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검사는 환자가 서있는 상태에서 시행되었으며 이 방법의 최대 장점은 유문협착증(pyloric stenosis)과 위확장(gastric dilatation)을 진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Einhorn와 Meltzing도 크기가 큰 위암은 진단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광선투과검사(Diaphanoscopy)는 예상외로 위검사방법으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Hemmester는 투과조명으로 위전벽에 위치한 병변의 종양만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는 W.H. Welch의 1300개의 위암 케이스를 검토해 본 결과, 약 2.3%인 30케이스만 위전벽에 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였으며 그중 드물게 발생하는 1.5~2cm 크기의 종양만 그림자로 관찰할 수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Reference : Vilardell,F. (2007). The Forerunners of Endoscopy: tubes and catheters (pp.3-18).
Digestive Endoscopy in the Second Millennium from the Lichtleiter to Echoendoscopy. Thieme Medical 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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