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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개발과 발달의 역사 IV

  • 입력 2018.07.17 11:06
  • 수정 2018.07.17 11:42
  • 기자명 심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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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지난 호에 Schindler가 분류한 내시경 종류들을 언급하였고 이번 호에는 연성 내시경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1900년부터 1930년도 말까지, 의사들은 Mikulicz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아 위 내부를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보기 위해서는 곧고 단단한 내시경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Nitze와 Leiter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내시경처럼 끝부분이 부드럽고 유연한 내시경이 환자에게는 감당할 수 있고 덜 위험하였다. 삽입 때는 유연하지만 위에 도달 후 스프링으로 곧게 펴지는 내시경 원리는 Kelling, Kuttner 그리고 Sussmann이 알아내었다.
 

그림1. Kelling의 연성 내시경
그림1. Kelling의 연성 내시경

Kelling의 위내시경
드레스덴의 외과 의사이자 Mikulicz의 제자인 Georg Kelling는 복강경 검사법에 관한 논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Mikulicz의 내시경을 사용하면서 삽입 때의 어려움과 위험성 그리고 시야가 한정된다는 것을 확인한 후, Kelling은 자기만의 내시경을 설계하였고 1897년에 Eugen Albrecht가 제작하였다.

 

Kelling의 내시경은 결점도 많아 내시경을 조정하는 와이어 시스템도 쉽게 망가졌고 삽입 기술도 매우 어려워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그림 3) Kelling은 30여명의 환자들에게 그의 내시경으로 검사해 보았고 그는 위를 전체적으로 검사하고 내시경이 쉽게 위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내시경은 단단하고 곧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특징은 부드럽고 유연한 화이버스코프를 사용할 때마다 문제가 되었다.

 

Sussmann의 위내시경 
몇 년이 지난 뒤, 약 1911년도에 Martin Sussmann이 반경성 위내시경에 도전해 보았다. 장비의 개념은 매우 기발하였다: 내시경 끝 2/3부분은 유연하였고, 몸 쪽 부분은 단단했으며 살짝 각이져 있어 삽입되었을 때 각이진부분이 혀에 지탱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이 특징은 경성 내시경 삽입의 필요 조건이었던 환자가 고개를 뒤로 과하게 젖히는 자세가 필요 없게 되었다. 내시경 끝에는 광학계의 창문 역할을 하는 유리 캡슐로 만들어져 있고 위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여러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었다. 와이어 시스템을 조정하는 바퀴는 내시경 핸들에 부착되어 있고 위에 삽입 됐을 때 내시경을 곧게 펴주었다. 이 내시경은 Kelling의 내시경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이 장비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삽입기술도 나름 쉬웠지만 아쉽게도 매우 비싸고 부서지기 쉬웠다. 전반적으로 검사 방법은 간단하였으나 가끔 고도의 조종이 필요할 경우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만 하였다. 반경성 내시경 검사는 환자가 오른쪽

으로 누운 자세로 시행되었으며 공기를 위에 주입하면서 진행되었다. 

 

 

 

 

 

 

 

Hoffmann의 위내시경

Munich 대학의 안과 의료보조자인 Michael Hoffmann는 1911년에 새로운 내시경을 설계하였다. 그는 유연한 내시경 튜브 안에 수많은 프리즘을 넣어 이미지를 내시경 끝까지 전송시킬 수 있다고 보여줬다. 이 프리즘 장치는 독일의 관학 정밀 기계 제조 회사인 차이스에서 제작되었고 그 외 내시경 부분들은 Georg Wolf가 제작하였다. 
내시경은 시체를 이용해 시험해 보았고 Hoffmann에 의하면 경성 내시경보다 위 내부가 더 잘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광학계가 상당한 빛을 흡수해 어두웠고, 장비가 구부려질 때 프리즘이 가끔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이미지가 제대로 전송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Hoffmann의 장치는 결과물이 한결같지 않아 루틴 검사에 사용되지 않았다. Schindler와 Wolf가 Hoffmann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반경성 위내시경을 설계하여 유명해졌다. 

그림 6. Georg Wolf와 Rudolf Schindler가 만든첫 연성 내시경. 이미지가 왜곡되어 전달되어실패하였다. 이 장비는 워싱턴에 있는 Smithsonian 박물관에 첫 와이버스코프와 다른 내시경들과 같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 6. Georg Wolf와 Rudolf Schindler가 만든첫 연성 내시경. 이미지가 왜곡되어 전달되어실패하였다. 이 장비는 워싱턴에 있는 Smithsonian 박물관에 첫 와이버스코프와 다른 내시경들과 같이 전시되어 있다.

Schindler-Wolf의 내시경
1916년에 안경사인 Lange는 베를린에 있는 Goertz 공장에 입사한 후 초점거리가 짧은 볼록렌즈를 여러 겹으로 튜브를 채우면 어느 방향으로 구부려도 이미지가 왜곡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전달이 된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의 설계는 아무에게도 발표되지 않았다. Schindler가 1928년에 Georg Wolf와 협력했을 때 그는 이미 경성 내시경에 대한 넓은 지식과 경험이 있었고 Wolf는 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내시경을 제작하였다. 그 둘은 Hoffmann의 논문을 자세히 공부하고 프리즘 대신 렌즈로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Lange의 결론으로 도달하게 되었다. 

그림 7. Georg Wolf와 Rudolf Schindler의 반경성 내시경
그림 7. Georg Wolf와 Rudolf Schindler의 반경성 내시경

Wolf의 첫 내시경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유연하였다. 내시경의 끝부분은 앞뒤로 움직일 수 있고 180도 회전도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 장치는 다소 다루기 어려웠고 적절히 광고되지도 않았다. 유명한 프랑스 의사인 Francois Moutier에 의하면 전송된 이미지는 왜곡되었고 내시경은 제대로 삽입되지도 않았으며 제멋대로 회전하기도 했다. 환자가 Left lateral position일 경우, 내시경 끝부분이 힘 없이 꺾여 점액들로 가려져 시야도 확보되지 않았다. 그때 Schindler는 내시경은 분문에서 약 3cm 윗쪽부터 끝부분까지만 유연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Wolf에게 유연한 부분은 첫 내시경보다 더 유연하고 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식도나 그 외 부분들은 완벽하게 견고하고 단단하게 제작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약 1928년도부터 1932까지 Wolf는 총 여섯 개의 내시경을 제작하였다. 1932년에 만든 마지막 내시경은 매우 유명해졌고 독일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사용하였다.


 

 

 

 

 

 

 

Schindler의 내시경 기술

Schindler의 제자인 Morales Noriega는 Schindler의 내시경 기술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환자는 굶은 상태에서 검사 45분 전 모르핀-코데인 그리고 0.5mg의 아트로핀으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Schindler의 아들인 Richard가 고작 11살에 발명한 구멍이 여러 개 뚫린 튜브를 사용하여 pantocaine이 2% 함유된 수면제를 투여했다. 환자는 특별 제작된 처치대에 앞으로 누워 Ewald tube를 이용해 속을 비웠다. 
환자의 왼쪽 어깨를 검사대 끝에 기댄 채 왼쪽으로 누워있는 상태에 내시경 검사를 하였다. 머리는 뒤쪽으로 편안하게 넘기고 조수가 머리를 지탱해 주었다. 내시경은 천천히 최대한 깊이 삽입되었고 조금씩 돌리고 빼내며 위 내부를 검사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