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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뿔

  • 입력 2014.02.10 09: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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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Rameses)대왕이 나일 강 유역을 통치하던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인과 유대인들의 관계는 악화되어 공공연히 전투가 벌어지는 정도에 까지 이르렀다. 몇 백 년 전만 해도 이스라엘인들이 이 땅을 찾았을 때 크게 환영받았던 손님들의 위상은 이제는 모든 면에서 사라지고 오히려 그들이 자기네 보다 번성해 간다는 것을 우려한 대왕은 이스라엘인의 수를 주리기 위해 새로 태어나는 남자 아기는 모조리 강물에 던져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세의 어머니는 4개월 된 아들을 작은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띠웠는데 천우신조하여 왕의 딸이 지나다 이를 발견하고 데려다 자기의 양자로 키웠으며 이름을 Mosheh라 지었는데 이것은 ‘물에서 건져낸 아이’라는 뜻으로 모세는 왕궁에서 씩씩하게 자라 예언자가 되었다.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세(Moses)라는 이름은 들어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과격한 노동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이집트를 탈출하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바다로 길이 막히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낳으며, 시나이 산에서 신으로부터 ‘십계(十戒)’의 석판을 받는 등의 기적과 신의 계시를 받는 예언자로 유명하다.

모세는 여러 모로 신비로운 인물이다. 하느님을 직접 뵙고 말씀을 전해 받았다는 것도 보통 사람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서양 미술에서는 모세의 계명판 사건을 마리아의 성모영보와 동격에 두고 나란히 짝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모세의 십계명은 구약에서는 엄연한 법이지만, 신약에서는 은총으로도 읽힌다. 예수도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오 5, 17)라고 하면서 모세의 권위에 힘을 보태주셨다고 한다.

모세가 계명판을 받는 장면은 미술에서 무척 흔하게 다루어졌다. 그런데 조각가들이 모세상을 조각한 것을 보면 그의 머리에는 2개의 뿔이 있는 것으로 조각하였고, 여러 세기가 지나서도 이것은 모세의 후손인 유대인들 역시 뿔이 있다는 부조리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중세의 미술가들은 모세를 그리거나 조각하면서 그의 머리에 뿔이 있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우선 네덜란드의 조각가 슬뤼테르 Claus Sluter (1385~1406)가 프랑스, 디종 서쪽 교외에 있는 샤르트뢰즈 드 샹몰 수도원(1383년 건립)에 세워진 ‘모세의 우물’(1395~1406)이라는 이름의 조각이 있다. 원래 수도원에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이 있는데 그 한가운데는 ‘모세의 우물’이라 불리우는 우물이 있으며 그 우물에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상부는 6각형으로 구성되었는데 구약성서에 나오는 6인의 예언자를 등신대로 조각한 조각군이 있다. 그중에는 모세의 상도 조각되어 있다. 그 옛날에는 수도원에서는 이 우물을 물의 공급원으로 사용하였으며 이 우물을 ‘생명의 샘’이라 하여 소중이 하였기 때문에 그 우물의 상부구조에는 이러한 예언자들의 상을 당시 유명했던 조각가들을 초빙하여 조각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예언자들에는 없는 뿔이 모세의 이마로부터는 마치 황소 뿔 모양의 커다란 뿔이 두 개가 나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로마, 산 피에르로 인 빈콘리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65~1564)가 조각한 모세의 대리석조각(1515~16)을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시스티나 천정화가 완성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II가 사망하였는데, 그때 유언에, 1505년에 계약한 바 있는 미켈란젤로의 율리우스 II의 묘당을 위해 10,000 두카덴(Dukaten)을 남겨 놓았다. 사실 이 묘당을 위해서 계획하고 추진하던 미켈란젤로의 그간의 노력은 그 시스티나 천정 벽화의 고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곳에 안치될 조각상의 하나로 예정되었던 것이 바로 모세의 조각상이었다.

이 모세상은 근 4백여 년 간 인류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 모세상을 자세히 보면 발등에 흠집이 나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가 끌로 흠집을 낸 것이라는데, 이 대리석 작품을 완성한 후에 “왜 너는 말하지 않느냐?”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안타까운 나머지 끌로 이 걸작의 발등을 굵었는데 이때 흠집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 흠집이야말로 대가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자기의 혼을 불어넣은 철저한 예술정신을 인류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여러 예언자 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감을 넘어 모세의 머리에는 역시 뿔이 있다.

모세의 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이를 종합하여 보면, 모세가 두 개의 석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한 성경구절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다가서자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 나왔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광선(ray)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keren인데,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될 때 이 단어가 horn(뿔)으로 잘못 번역 되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라틴어판 성서를 읽은 사람들은 모세의 머리에는 뿔이 나 있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전혀 엉뚱한 오역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가령 ‘두각을 나타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머리에 뿔이 솟았다’는 식으로 오독한 것을 훗날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세의 머리에 뿔을 두 개 붙여주게 되고 그런 재현 전통이 널리 퍼지면서 모세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모세에게는 다른 예언자에게는 없는 뿔이 있는 것으로 되었는데 이 뿔의 해석을 ‘아가페 성서 주석(Agape Bible Dictionary)’을 보면 ‘뿔은 종종 능력과 도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한다’(신 33:17), 또 ‘뿔을 높인다’(삼상 2:1 10)는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반면 ‘뿔을 꺾는다.’(램 48:25)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고 보면 모세가 위대한 예언가이며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두 조각가의 작품을 비교할 때 슬뤼테르의 모세 조각의 뿔은 굵고 전두골의 양측에서 솟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보고 있노라면 겁이 날 정도로 험상궂은 면이 있어 한마디로 괴물 같은 느낌이 들어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어 꿈에라도 나올 듯한 인상이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의 뿔은 두정골에서 솟아났으며 얼굴은 서양인의 특징을 모두 구비하고 있으나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것은 슬뤼테르의 모세상에는 눈을 감은 듯이 보이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모세가 기껏 시나이 산에 올라 하느님으로부터 훈계와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무거운 계명판을 받아왔는데, 철부지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섬기며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하니 모세의 속에서 홧김에 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그런대로 납득이 간다.

모세를 연상하여 표현하는 두 거장의 차이는 슬뤼테르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면서의 온갖 고난과 싸우면서 백성을 이끈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해서 힘센 모세를 표현하였으며, 미켈란젤로의 모세는 그 눈에 역점을 둔 것으로 보아 장차 닥칠 온갖 고난과 천리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예언자로서의 모세를 강조한 표현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같은 인물을 놓고서도 조각가가 받는 감성에 따라 그 표현에는 이렇듯 전혀 다른 사람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우리는 보았다.

본 원고는 필자의 집필 시기와 게재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문국진 박사,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법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