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조울증을 앓는 청년

  • 입력 2018.10.19 11:01
  • 수정 2019.02.19 16:49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청년은 동부의 유명한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을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였다. 그런데 몇 달 지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가끔 새벽 두세 시에 전화를 걸고서 엉뚱한 얘기를 했다. 가끔은 죽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심하게 술을 마셨다. 1년이 못 돼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으며, 자살 기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의 부모님은 부랴부랴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의 부모님이 들려주는 과거력은 다음과 같았다. 준수한 용모로, 영리하게 태어난 그는 집안의 귀여움을 온통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그러나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 가는 일이 많아졌다.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말이 많은데다가 주위 학생들을 방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2학년 때는 ‘주의산만 및 행동 항진증(ADHD)’이라는 진단을 받고 각성제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받았다. 그런대로 성적은 우수했지만 그는 가끔 화를 조절하지 못해서 벌을 받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연한 변화가 왔다.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밤새도록 자신의 침실 가구들을 옮겨놓거나, 새벽 3시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발명할 착상이 생겼기 때문에 급히 알려야 한다면서…. 그리고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가 사고가 났다. 응급실에 도착한 그는 말을 무척 빨리 하였다. 마치 ‘속사포’ 처럼 빠른데다가, 이것저것 수많은 주제의 생각들이 경주하듯 튀어나왔다(‘Racing Thoughts’라고 학자들이 부르는 현상). 그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지를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냈다. 도와주려는 간호사에게 성적인 농담도 서슴지 않고 던졌다. 그러나 정신은 말짱했다. 급하게 불려 온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조증’ 증세가 있음을 진단하였다.

부모님에게는 너무나 혼돈스러운 일이었다. 본래 ‘주의 산만증’ 증세로 밤잠이 적고, 쉽게 화를 내고, 말도 많은 편이었는데, 이제는 ‘조울증’ 이라니…. 도대체 그 차이가 뭐란 말인가!

‘주의 산만증’ 증세를 가졌던 아이들 중 약 20%가 ‘조울증’ 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의 부모님은 그때 알았다. 그는 정서 안정제(Mood Stabilizer)인 리티윰을 쓰면서 많이 좋아졌다. 그 후에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약물 복용을 끊었다고 한다. ‘조울증’ 환자 중에는 이렇게 약물 복용을 중지한 후에 이 청년처럼 병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서 리티이나 데파콧(Depakote), 테그레톨(Tegretol) 등의 정서 안정제를 계속 쓰는 환자들은 재발이 훨씬 적다. 다시 리티윰 치료를 시작하고, 다른 안정제와 항 우울제를 복합적으로 투약하는 데에도 청년의 무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시도 때도 없이 밤에 집을 나갔다. 약을 쓰는 것 같다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말이었다. 한 번은 술에 취한 상태로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목욕을 피하고 방안에만 들어앉아 있다. 유리창은 검은 색으로 가려놓고, 창문도 열지 못하게 했다. 심한 우울 증세였다. 

아무리 ‘주요 우울증’ 증세가 있지만 일생에 한번이라도 ‘조증’ 증세가 있던 환자는 ‘조울증’ 환자이다. 이 구분을 하는 이유는 조울증 환자의 예후가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자살률은 20%가 된다. 환자 중 20%정도가 자신의 손으로 생을 마감한다. 웬만한 암도 요즈음은 이보다 치료가 양호하다.

청년의 부모님은 자꾸 나에게 묻는다. “얘가 다시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다행히 병이 조금 늦게 발병했으니 청년은 나름대로 인생을 잘 조절해가며 살아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5살이나 35살에 발병했더라면 조금 더 인생을 배웠을 텐데…. 그렇다면 적응하는 방법도 조금 더 알았을텐데…. 17세는 아직도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닌가?

“우선은 대학교에 다시 가야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본인도 얼마나 대학교가 아쉽겠어요? 그 대신에 집 주위의 2년제 지역 대학에 가거나 직업학교에 가서, 차츰 자신감을 찾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본인에게 적합한 소일거리와 직업, 친구를 우선 찾도록 격려해 주면 어떨까요? 그리고 가능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감으로써 자신을 돌보는 기본일도 깨우치도록 하고요.”

청년을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길은, 바로 부모님 자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좋은 지혜를 내게 달라고 기도해 본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