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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생

  • 입력 2019.03.04 12:32
  • 기자명 신승철(블레스 병원 병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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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누룩을 띄워 탁주가 되기까지

몹시 바쁘다. 그것들, 반쯤 어두운 곳에서

허접스런 가마니 뒤집어쓴 채

핏기도 없는 허연 울음들 실뿌리처럼 길러내며

침묵의 시간,

설설 익히고 있었다.

간혹 이상한 방언 지껄이면서

앞뒤도 없는 이국異國의 이야기도 늘어놓았지만

안으론 한 겹, 한 겹 깨달아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축축한 불의 힘으로 - 바닥에서 올라오는

무無의 힘으로

유언幽言처럼 불안에 떠는 것들, 스멀스멀

발효시키는 것만이, 제 유일한 도락道樂임을

물론 잘 들리고 있었지. 특별한 계략의 일 아니지만

힘들게 평화 바라는, 그런 열망의 목소리들

마치 죽음을 의식이라도 한 듯

정신없이 돌리고 있는, 귀먹은 그 엔진 소리 말이지.

골, 골, 골 -

: 시간 갉아먹는 노을의, 피 말리는 꿈, 그러나

푸른 하늘이고, 비지땀 흘리며, 파놓은 자리엔

오히려 해골과 뼈다귀들만이 산더미처럼 쌓였지.

헌데 지나는 객客들은 왜 그리 초연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던가.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없이

귀에 익은 그 소리에 지쳐하는 기색도 없이

: 아마 미치지 않으려, 이미 죽은 자의 몸에서

사랑의 기름, 끝까지 짜내려, 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 오, 그래, 네 말이 옳아. 새로운 것이란 없어,

그저 다시 반복되는 시작만이 있을 뿐... 새 술로

무위無爲 즐기려는 마음에, 새 술 기다리며, 그 동안은

얄궂은 구름 꽃이나 피워가면서. 그리고 이마 뜨거워지면,

손 잠시 얹었다가, 이내 일 없다는 듯 툭툭 털어내고선,

무심해진 사물들 향해, 우리 서로 웃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만이니까... 한번 단맛은 끝까지 단맛이고,

한번 쓴맛은 끝까지 쓴맛인 거니까.

(그런데) 저 밖의 사람들은 지금, 무엇 때문에

푸념 같은 소란들을 피우고 있는 것인가.

: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술지게미 같은

이 미천한 생에, 살벌하게, 존재를 떠받치려고 나선 말들

가까이서, 멀리서 들려왔다.

남쪽에서 생기 얻으려, 북쪽 향해 달려드는

붉은 투지들, 평지에 풍파 일으키는 거친 입술들

(실은 밖에서, 밖으로만 겉돌고 있었다)

(알다시피) 알려진 것으로서만, 세계는 지탱되어 왔던 것

아닌가. 이 형상들 또한 자신에게 들어왔던 것으로서만

겨우겨우 유지되어왔던 것 아닌가. ; 자신과 세계는 전부

빚을 내어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러니, 얻을만한 것 얻었다고 (그 누구라도) 과연

말할 수 있겠는가. ; 황금들은 진즉에 빛을 잃었다.

네가 참회도 하기 전에, 네가 술에 취하기도 전에,

보라. 추수 끝난 벌판엔, 새도 안 보이고

사람 그림자마저 얼씬거리지 않는다.

추억 같은 저 산천도 어느 땐 다 발효가 되어

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되고 말 터...

그러나 그것들, 비좁은 그 안에서 은밀히

왕성하게, 자신을 변용시킬 꿈 하나,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 스스로 취해서,

: 아마 수만 년 전부터, 달에서 이루지 못한 꿈,

실현시키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에서

밤낮으로, 값싸게 몸을 팔고 있었던 것이리라.

겉은 시든 꽃 같으나, 속은 아직도 허무의 꿈에 젖어,

근근이 술 향기나 풍기고 있는 - 미련하기 짝이 없는

그 놈...  

 

김 무 기 작가

- 제천고등학교졸업 (1982)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9, 1994)

- 한국미술협회회원. 서울조각회회원

-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중앙미술대전 특선, 
서울현대조각공모전 대상 등 다수 공모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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