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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날리는 봄에

  • 입력 2019.04.01 11:51
  • 수정 2019.04.01 11:55
  • 기자명 신승철(정신건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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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눈송이들

멀리 북쪽에서 길을 잃고

성급히도 달려왔다.

이 봄에,

벽력같이 찾아온 눈송이들

분분紛紛히, 만 개의 눈송이,

천 만 개의 눈송이로다.

무엇보다 모두 빈손들이어서

호호탕탕해지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

지금 머물고 있는 이 허무가

이 환한 허무가

세계도

한꺼번에 풍성해졌으므로

: 실은 차갑고, 하얀 눈송이들,

그 칼끝의 자유가 나를 할퀴듯 달려들며

끝도 없는 나를 항복시키려했는데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멀리 북쪽에서 길을 잃고

예까지 성급히도 달려왔으나

부서질 듯 여리며, 부드러운

하얀 눈송이들

바야흐로 메마른 초목을

흠뻑 적시고는 (달콤한 술이 되어)

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 <송화분분, 12세의 자화상> 180x150 / 2018
▲ <송화분분, 12세의 자화상> 180x150 / 2018

김병종

대학교수, 한국화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

前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前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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