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저널]눈송이들
멀리 북쪽에서 길을 잃고
성급히도 달려왔다.
이 봄에,
벽력같이 찾아온 눈송이들
분분紛紛히, 만 개의 눈송이,
천 만 개의 눈송이로다.
무엇보다 모두 빈손들이어서
호호탕탕해지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
지금 머물고 있는 이 허무가
이 환한 허무가
세계도
한꺼번에 풍성해졌으므로
: 실은 차갑고, 하얀 눈송이들,
그 칼끝의 자유가 나를 할퀴듯 달려들며
끝도 없는 나를 항복시키려했는데
이건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멀리 북쪽에서 길을 잃고
예까지 성급히도 달려왔으나
부서질 듯 여리며, 부드러운
하얀 눈송이들
바야흐로 메마른 초목을
흠뻑 적시고는 (달콤한 술이 되어)
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김병종
대학교수, 한국화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
前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前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