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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 그 부드러움과 융합의 확장을 표현하는 작가, ‘이은영’

  • 입력 2019.05.03 17:02
  • 기자명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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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담다 Acrylic of canvas 90.9x60.6 2017
▲ 시간을 담다 Acrylic of canvas 90.9x60.6 2017

[엠디저널]비중이나 가치, 책임 따위가 낮거나 적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그 존재의 가벼움을 가리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는 포장을 하거나 위장하기도 한다. 이는 허영과 허세로 이어지고 고착되기도 한다. 이런 거품을 바라보면 슬픔까지 올라온다. 그 얄팍한 가벼움이 반갑지 않고 좀 더 묵직함으로 변질되어 무게감이 느껴질 수 있길 바란다.

- 작가노트 발췌 -

질량의 상태를 표기하는 단어에 우리는 사전적 의미를 종종 찾는다.

‘무겁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진지하고 타자와 구분된 존중할 만한 것이란 느낌을 주는 반면, ‘가볍다’는 종종 경박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질 리포베츠키(Gilles Lipovetsky)는 오늘날을 ‘가벼움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무거운 것의 논리보다는 가벼운 것의 논리가 더욱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 때가 된 것이다.

리포베츠키는 가벼움이 지배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의 저서에서 피력했다. 사람들은 소비할 때 더는 사용 가치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비실용적을 감안하더라도 디자인의 심층적인 것에 가까이 미(美)적이고 기발한 상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상품에 구매력을 높인다.

지난 경제의 패러다임은 석탄과 철강, 기계, 화학 산업 등 ‘무거운’ 산업이 경제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과 같은 ‘가벼운’ 산업 위주로 경제의 중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미디어에서도 무겁고 진지한 내용보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비극에서 오락까지 이질적인 뉴스들이 빠르게 전해지다가 사라진다. 물건들은 점차 경량화, 소량화가 되고있다. 디지털 혁명은 ‘가벼운’ 기술의 발달을 가져오고 있다.

가벼움의 시대는 사물뿐 아니라 우리 몸의 균형감도 지배하고 있다. 불포화 지방산이나 가벼운 요리를 먹고 다이어트와 피트니스로 가벼운 몸을 추구한다. 운동 영역에서도 전통적으로 수치화된 기록 경쟁에서 이제는 강렬한 자극과 아찔함을 주는 스포츠 채널로 시선과 귀를 정지시키고 있다. 가벼움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주는 혜택과 역효과가 공존한다. 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쾌락의 추구가 늘어나는 한편 불안과 우울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날씬함에 대한 강박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디지털의 발달은 빠름의 혜택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제는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예전보다 분명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졌지만, 궁극적인 삶의 즐거움이 커졌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의 가벼움에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내적 가벼움에서는 거의 나아지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의견과 작가의 작품의 대화는 이점에서 일치점으로 마주한다. 이 ‘가벼움의 시대’ 가장 큰 문제는 가벼움 그 자체가 아닌 경박한 가벼움 그 자체보다 그것이 비대 해져서 삶을 침범하여 성찰과 창조, 윤리적?정치적 책임감 등 삶의 다른 본질적인 차원들을 억누르는 것이 위험하다. 그 자체가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아 인간 생활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파괴할 때 비극이 된다.

작가의 작업에서도 때로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며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궁극적으로 포장하는 주체의 조형미를 극대화시키려 시도한다.

작가 이은영은 지금의 작업이 유연해지고 부드럽게 융화로 확장되어 갈 것이며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다시 인문학의 예술을 생각한다. 작가의 고뇌를 읽어보는 행간을 발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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