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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모니아 여신과 인간의 조화

  • 입력 2019.06.20 11:13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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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의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체의 모든 조화(調和)를 되찾고 이를 유지 시키는 것이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리듬과 조화가 잘 유지되는 상태이며, 질병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리듬과 조화가 깨어져서 난맥과 부조화를 일으킨 상태이다. 만물유서(萬物有序)로 세상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으며 질서는 리듬과 조화로 성립되는 것이다.

▲ 작자 불명: ‘재생의 여신과 귀부인’ 2세기경, 테베에서 발굴된 석관
▲ 작자 불명: ‘재생의 여신과 귀부인’ 2세기경, 테베에서 발굴된 석관

결국, 인간존재는 리듬이요 조화로서 이것이 파괴되면 심한 스트레스와 무의미한 공허감 그리고 권태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일한 다음에는 쉬고, 쉰 다음에는 일해야 한다. 권태와 피로는 생활의 독이 되고 정신의 황폐를 초래하기 때문에 적당한 활동이 없으면 안식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적절한 휴식이 없으면 활동의 기쁨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조화를 하모니(Harmony)라 하는데, 이 어원은 그리스신화의 하르모니아(Harmonia) 여신에서 유래되었다. 화해 또는 조화의 여신인 하르모니아는 군신인 아레스(마르스)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하르모니아 여신도 무척 미인일 것이라 생각해서 동서고금을 통한 그 여신의 초상이나 조각 작품을 찾아보았으나 아직 찾지를 못한 가운데 하르모니아 여신의 이미지와 유사한 이집트에 재생의 여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소개한다.

재생의 여신의 초상은 테베에서 발견된 귀부인의 석관에서 나온 것으로 손을 내리고 있는 것은 이 석관의 주인공인 귀부인이고, 양손을 올리고 있어 마치 죽은 귀부인을 감싸 안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재생의 여신으로 로마 점성술의 성좌를 상징하는 것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양발 사이에는 재생을 상징하는 스카베라가 그려져 있고, 그녀의 의상은 풍요, 물, 자궁, 뱀을 의미하는 능형(菱形)의 기하학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여신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에서는 삶, 죽음, 재생은 모두 영원히 조화 잡힌 순회로서 육체적인 죽음이나 영적인 죽음이거나 간에 여신은 재생을 약속하며 인간을 위로하며 어루만져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에 조화의 여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적어보았다.

다시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녀를 낳게 한 아버지이며 전쟁의 신인 마르스는 그 성격이 흉포하고 무계획하여 전쟁 전체의 신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전투의 신으로 생각해왔었던 것 같다.

Odyssey를 읽어 보면 마르스는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의 아내인 비너스와 정을 통하였는데, 이 사실을 의심하게 된 남편은 궁리 끝에 마술의 쇠 그물을 만들어 침대에 덮어 씌워놓았다. 이 마술의 그물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다.

마르스와 비너스는 이런 줄도 모르고 침대 위에서 정사를 하던 중에 그만 마술의 그물에 감겨 꼼짝달싹 못 하게 되어 버렸다. 남편은 다른 신들을 불러서 두 남녀의 간통을 폭로했더니,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용서하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남편은 그물을 풀어 주었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이런 얘기를 남기고, 비너스는 마르스의 씨인 하르모니아를 낳았으니, 그녀가 바로 조화의 여신이다. 하르모니아가 자라나매 제우스는 그녀를 「테베」(앞서 기술한 석관의 발견지) 즉 도시국가 Thebai의 건설자인 카드모스와 짝을 맺어 주었다. 잔칫날에 모든 신은 하늘나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와서 카드메이아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신들은 신혼부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에 유명한 것은 장의(長衣 페플로스)와 또 하나는 불카누스 (비너스의 본 남편)가 만든 목걸이였다. 장의는 아테나 여신의 선물이었고, 목걸이는 불카누스가 준 선물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두 신은 신부 하르모니아의 어머니인 비너스가 남편의 눈을 속여 불의의 씨로 생긴 것이 미워서 장의를 만들어 그것을 미약(催淫劑)에 담근 뒤에 말려 선사한 것이라는데, 두고두고 하르모니아의 자손들을 저주하려는 목적이라 한다.

▲ 틴토레토 작: ‘비너스와 마르스의 밀애 현장을 덮친 불카누스’, 1551경 뮌헨, 알테 피나코텍
▲ 틴토레토 작: ‘비너스와 마르스의 밀애 현장을 덮친 불카누스’, 1551경 뮌헨, 알테 피나코텍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신화를 그림으로 한 것은 이탈리아의 화가 틴토레토 (Tintoretto 1518-1594)의 ‘비너스와 마르스의 밀애 현장을 덮친 불카누스’(1551)라는 그림이 있다. 틴토레토의 원본명은 Jacopo Robusti 인데 염색 상회 Tintore의 아들이었던 탓으로 틴토레토라 부르던 것이 이름이 되고 말았다.

틴토레토는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파의 최후를 장식했던 귀재로서 종교, 신화에서 취재한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중에서 불륜과 관계되는 그림은 두 점이 있다. 그 하나가 ‘비너스와 마르스의 밀애 현장을 덮친 불카누스’로 이 그림은 전술한 신화의 내용과는 좀 다르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림에 입각해서 설명을 다시 하기로 한다.

비너스의 남편 불카누스(대장장이의 신)는 비너스와는 달리 못생기고 장애가 있었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신화 중에서도 소문난 바람둥이로 유명한데, 평소에 비너스의 행실을 이상하게 여기던 불카누스는 그녀의 방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 같은 그물을 만들어 쳐놓았다. 이것을 모르고 정부인 마르스와 밀애 하다가 그물에 걸리게 되는데 그림에서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밀애 현장에 불카누스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있다.

불카누스는 비너스가 앞을 가리고 있던 천을 들치며 교접이 있었는가를 확인하고는 흥분해서 마르스를 찾고 있고, 투구를 쓴 마르스는 전쟁의 신답지 않게 테이블 밑에 숨어있다. 숨어있는 마르스를 보고 강아지가 짖으려 하고, 마르스는 강아지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매우 우습기도 하고 위기일발의 긴장감을 불어 일으키기도 한다. 용하게도 불카누스에게 잡히지 않아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만일 강아지가 짖어대면 잡히는 상황이다.

▲ 만테냐 작: ‘파르나르소스’1495-97, 파리, 루브르 박물관
▲ 만테냐 작: ‘파르나르소스’1495-97,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런데 이러한 불륜의 관계가 묵인되고 조화로운 분위기로 표현된 그림이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파르나르소스’(1495-97)로서 먼저의 그림과는 달리 파르나르소스의 산꼭대기에 문제의 두 신 비너스와 마르스가 서 있고, 그림 오른편에 헤르메스신이 애마와 같이 있고, 왼편에서 수금을 연주하는 것이 아폴론신이며 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 무사이들이다. 왼쪽 바위 위에서 손을 들고 산꼭대기의 두 신에게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것이 비너스의 남편 불카누스이다. 그의 오른손에는 금방 만들어진 쇠 그물을 들고 있어 그대들의 불륜을 비난하며 만천하에 외치고 있다.

두 신의 불륜을 규탄하고 있는 것은 남편일 뿐 아폴론이나 헤르메스 그리고 무사이 등과 같은 신의 세계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찬양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화가의 뜻이 아니라 만토바의 왕비 엘리자베스 데스테의 주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 그림을 자기 방에 장식하기 위해 화가에게 주문하면서 그림의 내용도 자기의 주문대로 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즉 그녀의 해석은 호메로스가 저술한 지 1세기가 지난 무렵의 작품 자료 가운데는 이 사건의 표면적인 사실만을 추구하여서는 안 되고 그 진의는 비너스에 의해 상징되는 ‘사랑’과 마르스에 의해 상징되는 ‘투생’이라는 이질적인 것이 서로 결합하고 화합하여 그것에서 조화의 세계가 탄생되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기야 비너스와 마르스 사이에서 탄생된 것이 하르모니아이고 보면 그럴듯한 해석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반된 것이 결합된다는 사고는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이기도 하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알 것도 같은 노릇이다.

어떠하든 하르모니아는 질병과 약과의 사이를 화해시켜 주며, 신체와 정신 사이를 조화시켜 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화시켜 주는 여신으로 아니 의학의 「심벌」이 아닐 수 없는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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