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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심리적 고통에는 뿌리가 있다

  • 입력 2007.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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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취직시험을 준비하던 30대 초반의 미혼남자가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시험을 앞두고 일 초가 아까운데 같이 세 들어 있는 할머니가 신경이 쓰여 공부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할머니 생각이 저절로 나며 두통이 생기고 혈압이 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든다고 했다. 환자가 먼저 그 집에 세 들어 있었고 몇 달 전에 할머니가 환자의 옆방으로 이사를 왔다.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노인네들만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다. 할머니는 외로웠던지 환자에게 말을 붙이려고 하고 어떤 때는 전을 부쳐서 가져오기도 했다. 혼잣말로 “저 총각이 있으니 든든해” 하기도 했다. 문을 일부러 소리 내서 닫는 것 같기도 하고 관심을 끌려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거부감이 생기고 어떤 때는 미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치료자 대하는 태도로 그 사람의 대인관계 알 수 있어면담을 통해 환자가 왜 할머니에게 그렇게 과도한 반응을 보였는지 드러났다. 환자는 2남 3녀의 장남으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을 받고 컸다. 장남이라고 막무가내로 환자에게만 잘해 주어 동생들이 시기를 하고 자신도 부담을 많이 받았다. 시골에서 자랐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서울로 환자 혼자만 전학을 보낼 정도로 열성이었다. 그러나 서울 친척집에 보내 놓고는 신경도 안 쓰고 보살펴 주지도 않으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말만 하고 필요한 참고서를 사달라고 하면 교과서만 보면 된다고 우기고 사주지 않았다. 부모에 대해서는 ‘항상 왜 저렇게 무식할까, 무식하면 가만이라도 있지’하는 반발심이 일었다. 사랑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뭐든지 일방적으로 한다고 느껴졌다. 옷을 사도 어머니 입장에서 큰 옷을 사 주고는 클 때까지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때는 먹기에 역겨운 보약을 아침에 깨자마자 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부모는 무식하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속에 있었다.어머니가 자기를 애인같이 생각하는 것 같아 징그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잘해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 피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이 심하게 들었다. 부모가 고생하는데 내가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군에서 제대한 후 몇 년간 영업일을 하다 보니 다른 부모들도 다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면담을 하면서 환자는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가 옆방에 있는 젊은이다 보니 별 뜻 없이 가까이 지내려고 한 것이었는데 환자는 과거 어머니가 하는 것처럼 자기에게 달라붙는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 환자처럼 사람들은 과거에 자기에게 중요했던 사람에게서 해결되지 못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느낀다. 정신의학적 용어로는 이를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주로 부모나 형제에게 느꼈던 감정을 치료자나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치료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대인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엄하고 비판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치료자가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하더라도 엄한 아버지처럼 느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전이가 된 상태에서 사람을 보게 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해서 보게 된다. 따라서 대인관계에서 착각이 생기는 것이다.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을 자기 과거 속의 다른 인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일반인들은 잘 깨닫지 못하고 지적해 주는 사람도 없어 평생을 그렇게 사는 경우가 많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현실에 맞지 않는 사랑과 미움은 이런 가운데 생긴다. 이러한 사랑과 미움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체를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보통은 자기 생각이나 가치기준으로, 혹은 과거의 잣대로 본다. 도인(道人)이나 선사(禪師)들도 지금 이 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착각을 없애고 과거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을 해야 된다. 그렇게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의 생각이다. 자기의 생각을 중지하고 눈앞의 현실을 봐야 한다. 잘 모르면 물어보고 찾아보고 현실을 바로 알게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타인과도 진정하게 만날 수 있고 사회의 갖가지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될 수 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인생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