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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의 본질

  • 입력 2020.04.14 09:07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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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불교정신치료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신치료는 굉장히 종류가 많습니다. 2016년 초에 위키피디아에서 정신치료에 대한 정리를 보니 1천 가지 이상의 정신치료가 있었습니다.
모든 정신치료에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이러이러한 존재다’라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인간 이해의 틀은 각 학파를 창시한 사람의 관찰과 경험의 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자신의 꿈을 분석하여 정신분석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 정신치료’를 창시한 이동식 선생님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두 핵심감정이 들어 있다고 보고 그것을 파악하는 걸 중시했습니다. 모든 정신치료에서는 각자의 그러한 틀을 가지고, 치료자와 환자 관계 속에서 치료 작업을 실행하여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정신치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의 삶이나 문제를 보는, 나아가 인간을 보는 어떤 틀을 가지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과의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신치료의 본질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가진 사람은 치료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치료자는 문제를 가진 사람과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어야하고,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신치료의 기본 구성요소입니다.
대표적인 정신치료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분석심리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칼 로저스의 내담자 중심치료(또는 인간 중심치료)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칼 로저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칼 로저스는 사람에게 자기실현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타인의 큰 도움 없이도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인생을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본 것이지요. 칼 로저스는 이 능력이 어떤 원인으로 막혀버렸을 때 사람은 정신적 문제를 경험하며, 그때 치료자가 도와주면 그 능력이 되살아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치료 과정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내담자가 어떤 감정을 품더라도 치료자가 그것을 충분히 존중하고 수용하고 공감하면 내담자는 자기의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칼 로저스는 치료 과정에서 절대로 내담자를 앞서가지 않습니다. 항상 뒤따라갑니다. 그러면서 내담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정리해서 내담자에게 돌려줍니다. 칼 로저스의 치료 사례집을 보면 내담자의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를 정말 잘 이해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같다.”
칼 로저스는 정신치료의 효과를 아주 과학적으로 연구한 사람입니다. 치료 과정을 녹음해서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무엇이 치료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결국 그는 여러 정신치료 학파를 두루 아울러 연구한 끝에 효과적인 정신치료가 어떤 것인지를 밝혀냈습니다. ‘어느 학파의 치료자가 하는 치료인가’라는 문제는 정신치료의 효과와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다음 세 가지 요건을 갖춘 치료자의 치료가 좋은 치료 효과를 보였습니다. 칼 로저스의 이 주장은 정신치료계에서 거의 정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조건 없는 수용(unconditional acceptance)입니다. 내담자나 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처럼 내담자나 환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치료자의 자세가 굉장히 치료적이었던 것이죠.
둘째는 진실성(genuineness)입니다. 겉과 속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치료 장면에서는 내담자나 환자를 굉장히 존중하는 것 같은데 밖에 나가서는 그 내담자나 환자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치료자가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지요. 그런 치료자보다는 진실한 치료자의 치료 효과가 좋았던 것입니다.
셋째는 공감적 반응(empathic response)입니다. 내담자나 환자에게 공감을 하고 자기가 공감한 걸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학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프로이트 학파에 속해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치료 효과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금강경을 주석한 중국 송나라 시대 야부 스님의 말씀 가운데 이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바른 사람은 삿된 법을 말해도 바른 법이 되지만, 삿된 사람은 바른 법을 말해도 삿된 법이 된다(正人說邪法 邪法悉歸正 邪人說正法 正法悉歸邪).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바른 법을 바른 사람이 운용하면 결과는 바른 법이 된다.
(正法 正人 正法) 
- 바른 법을 그른 사람이 운용하면 결과는 그른 법이 된다.
(正法 邪人 邪法) 
- 그른 법을 바른 사람이 운용하면 결과는 바른 법이 된다.
(邪法 正人 正法) 
- 그른 법을 그른 사람이 운용하면 결과는 그른 법이 된다.
(邪法 邪人 邪法)
법에는 손발이 없습니다.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 결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린 언제나 어떤 사람이 있느냐를 봐야 합니다.
스밀리 브랜톤이라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있습니다. 정신의학과 종교를 서로 연결해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정신의학을 보는 걸로 꽤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1929년에서 1938년까지 10년 사이에 네 차례 프로이트가 있는 곳을 방문하여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받습니다. 스밀리 브랜톤이 기록한 것을 그가 죽고 난 뒤에 부인이 정리하여 책으로 냈는데 바로 <프로이트와 나눈 시간들>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보면, 프로이트가 블랜톤을 치료하는 현장에서 ‘억압’이라든가 ‘전이’ 같은 자신의 핵심 개념들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론하고 실제가 좀 달랐던 것이죠. 저도 상담을 할 때 경험하지만, 실제 치료 현장에서는 환자에 맞춰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치료자의 관점에 따라서 환자의 말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는 합니다. 블랜톤의 부인은 프로이트의 눈이 굉장히 반짝거려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블랜톤은 언젠가 프로이트에게 직접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정신분석을 통해 얻게 되는 도움 중 많은 부분은 분석가의 인품을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제 분석의 경우만 보더라도 교수님과 관련된 연상, 교수님의 격려와 공감 그리고 과학적인 태도 등으로부터 매우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물론 이 말에 프로이트는 대답을 안 하고 가만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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