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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일어나는 세 가지 방식

  • 입력 2020.09.23 08:31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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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술술 잘 풀리는 삶을 살아서 행복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정신적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정신적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일단 괴로움이 있습니다. 환자들을 봐도,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오랫동안 많은 괴로움을 겪습니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괴로운 상황들이지요. 그런 괴로움을 올바르게 겪어내지 못할 때 정신적 문제가 생겨납니다. 다시 말해 그 괴로움을 해결할 지혜가 자기에게 없어 올바르지 않게 대응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을 만한 처지가 안 되어 고립되거나, 남이 도움을 줘도 받지를 않거나 하며 실제 상황과는 맞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은 뇌의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고 뇌의 변화가 다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이게 심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불교정신치료는 괴로움에서 시작됩니다. 불교정신치료에서는 괴로움이란 무엇이고, 왜 괴로움이 생겨나며, 괴로움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정신 건강으로 가는 길인지를 말합니다.

괴로움은 다음 세 가지에서 비롯됩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처한 본질적 상황입니다. 첫째는, 나를 구성하는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아프기 싫으면 아프지 말아야 하고 슬프기 싫으면 슬프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세상은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에 따라 움직일 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든 동물이든 날씨든 뭐든 간에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든 동물이든 날씨든 뭐든 간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내게 영향을 줍니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면, 그 움직임에 내가 적응하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실제가 달라 나와 세상이 충돌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가 세상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내가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첫째와 둘째 이유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괴로움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괴로움에 대응하면 스스로 2차, 3차의 괴로움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 2차, 3차의 괴로움은 우리가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서양에서 개발된 수용전념치료(ACT)라는 치료법에서는 pain과suffering을 구별합니다. pain이 우리가 불가피하게 겪는 괴로움이라면, suffering은 그 괴로움에 올바르지 않게 반응해서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수용전념치료 목적은 suffering을 줄여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가 제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불교정신치료는 괴로움이 일어나는 이 세 가지 방식을 철저히 이해하고, 필연적인 괴로움을 못 받아들여서 계속 새로운 괴로움을 만드는 악순환의 삶에서 괴로움을 줄여가는 선순환의 삶으로 전환하도록 환자를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던 자리에 지혜와 자비와 평온이 자리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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