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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신치료 관점에서 본 사성제와 팔정도

  • 입력 2021.02.04 08:13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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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부처님은 사성제와 팔정도라는 틀로 인간을 이해하고 치료했습니다. 여기서는 사성제와 팔정도가 어떻게 불교정신치료의 틀이 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길, 자신이 사성제(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끝없는 윤회의 고통 속에 있었지만 사성제를 발견하고서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사성제란 고성제(고통이 있다), 집성제(고통의 원이 있다), 멸성제(고통을 없앨 수 있다), 도성제(고통을 없애는 길이 있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도성제는 팔정도(8가지 바른길)로 구성됩니다. 《맛지마 니까야》<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을 보면, 사리불이 사성제를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하여 코끼리 발자국에 다른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들어가듯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에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사성제가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뼈대입니다.

사성제의 첫째, 고성제는 인간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존재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있고, 그 몸과 마음은 괴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집성제는 인간이 겪는 괴로움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고 괴로움의 뚜렷한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집성제는 보통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갈애를 괴로움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2연기에 따라 괴로움의 발생을 설명하는 것인데, 12연기로 설명하는 것이 좀 더 구체적입니다. 12연기란 ‘무명-행-식-정신과 물질-여섯 가지 감각장소-접촉-느낌-갈애-취착-존재-태어남-늙음과 죽음’이 순서대로 일어난다고 보는 불교의 관점입니다. 12연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한없이 길어지고 복잡하므로 고성제와 관련하여 간단하게만 언급하면, 무명(무지)이 원인이 되어 우리가 존재하고 그 존재가 바로 고통이라는 걸 12연기는 보여줍니다. 셋째, 멸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면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갈애의 원인을 없애서 괴로움을 해결하거나, 12연기의 연결 고리를 끊는 식으로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도성제는 멸성제의 방법이 팔정도라고 말합니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 이렇게 8가지를 실천하면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팔정도는 정신치료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반열반경》을 보면 부처님이 팔정도가 있으면 사문이 있고 둘째 사문이 있고 셋째 사문이 있고 넷째 사문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가지 사문은 순서대로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을 일컫는데 모두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입니다. 그러니까 팔정도를 닦으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반면 팔정도가 없으면 사문이 없고 둘째 사문도 없고 셋째 사문도 없고 넷째 사문도 없습니다. 팔정도 없이 고통과 윤회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팔정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아는 겁니다. ‘고집멸도’를 정확히 알면 그에 맞는 바른 마음이 자동으로 들게 됩니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사유입니다. 이렇게 바른 사유를 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실천들이 있게 됩니다. 바른말부터 바른 삼매까지, 팔정도의 나머지 여섯 가지가 그에 해당합니다. 바른 말은 거짓말 안 하고, 이간질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고, 잡담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행위는 살아 있는 건 절대 죽이지 않고, 내 것 아닌 건 손대지 않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는 자신과 남에게 물질적•정신적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무기를 거래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른 생계가 될 수 없습니다.

바른 정진은 다음 네 가지를 일컫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것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것은 제거하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것을 일어나게 하는 것, 이미 일어난 유익한 것은 지속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는 것. 이 네 가지를 위해 의욕을 생기게 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챙김은 몸, 느낌, 마음, 법(法)을 잇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를 사념처 수행이라고도 하며<대념처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 경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바른 삼매는 사선정입니다. 선정이란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로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바른 삼매에 대해서는<대념처경>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쁜과 슬픔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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