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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플 때 마음이 또 아프지 않는 법

  • 입력 2021.12.22 12:30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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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우리는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또 아프게 되곤 합니다.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또 아픈 게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아주 친한 친구가 나를 배신한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대부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든가,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든가 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이렇게 2차로 마음이 괴로운 것이 마음이 아플 때 또 아픈 것입니다. 마음이 또 아플 때 2차, 3차, 4차 그리고 더 연쇄적으로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심각하게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또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2차로 아픈 것은 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파지는 것을 피하는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마음은 느낌, 인식, 의도, 아는 기능, 이렇게 네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몸을 관찰할 때처럼 이 네 가지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음도 몸처럼 주어진 조건에 맞춰 자체 변화의 법칙에 따라서 변하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가 개입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작동하는 마음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괴로움도 안겨줍니다. 몸처럼 마음 역시 무상하고 무아이며, 우리가 집착할 때 괴로움을 줍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서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우리는 보통 ‘내가 화를 낸다’ ‘내가 슬프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화가 날 만한 조건이 되면 화가 나는 거고, 슬플 만한 조건이 되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관찰을 통해 이를 보는 능력이 생기면 그때부터 마음이 2차로 아파지는 데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나’라는 잣대가 떨어져 나가서, ‘내 마음’ 이 그냥 ‘마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몸처럼 마음도 언제나 그냥 있는 겁니다. 그냥 제 법칙에 따라 변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못 받아들이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정신 현상과 함께 괴로움이 일어나면 그 순간 ‘정신이란 원래 그런 거야.’ 하면서 딱 멈춥니다. 멈춰서 흔들리지 않고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또 조건에 따라 다른 걸로 변하는 걸 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단계로 안 넘어가는 거예요.

인과의 법칙에 따라 어떤 현상이 생겨났을 때 거기에만 머무르고 더 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서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오는 변화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좀 담담해집니다. ‘몸이 아프네. 이렇다가 죽는 거 아냐?’에서 ‘몸이 아플 만한 이유가 있겠지.’로, ‘화가 나서 미치겠다.’ 에서 ‘화가 날 만한 조건이 있나 보다.’로 바뀌면서 스스로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줄어듭니다. 이렇게 화가 덜 나고 덜 부정적으로 되는 것이,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님을 아는 데서 오는 정신치료적 효과입니다.

이런 변화는 실제의 인간관계도 바꿔놓습니다. 자기뿐 아니라 남도 그렇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면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할 만한 조건이 있나 보다. 하고 보는 것이지요. 나를 공격하고 무시하는 사람에게 당한 것을 되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의 처지를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지금 어떤 상황 속에 있으며, 그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그의 괴로움들이 계속될 거라는 것, 그리고 그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인 구조를 자신 역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늘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가족, 직장, 친구 사이에서 생겨나는 인간관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분노가 줄고,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제 삶 속에서 관찰을 해보니, 몸이 아플 때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을 때는 마음이 동요되어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화낼 때보다 몸이 훨씬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2차로 아파지는 걸 멈추면, 마음은 아주 빨리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금방 맑고 편안한 마음이 됩니다. 일단 이런 경험을 하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선택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마음이 건강해지는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몸이 안 아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아픔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라한도 몸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괴로움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몸과 마음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깨달음의 순간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일상이 곧 수행입니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잘 관찰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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