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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과 한국 서정시(抒情詩)

  • 입력 2022.04.12 10:55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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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이보다 더 탐스러운 꽃가지는 없을 거야!”하고 진분홍 꽃방망이를 꺾어 든다. 그런데 몇 발자국 건너에 더 화사한 꽃 무더기들이 보인다. 또 새 꽃 덤불에 다가가 탐스러운 꽃가지만 골라서 꺾는다. 벌써 한 아름 가득한데도 아이들은 진분홍 산비탈에서 꽃 꺾느라 정신이 없다. 가슴에 안은 꽃들로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학교로 향한다.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교실 문 앞 복도에서 머뭇거리자, 담임선생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라 하신다. 분홍 꽃다발을 가슴 가득 안은 채 머리만 내밀고, 교탁 옆에 서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서 있는 벌을 받는다.

봄이지만 아직 쌀쌀한 아침 책보자기를 메고 집을 나서, 동구 앞에 이르면 깎아지른 산비탈에 참꽃 꽃망울들이 부풀어 있다. 겨우내 두껍게 얼었던 얼음들은 아직 다 녹지 않았고, 일찍 핀 개울가 버들가지들만 봄을 알리고 있다. 곧 4월이 오면 꽃망울을 터뜨려 분홍빛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봄이 온 것을 세상에 알릴 터이다. 동북아가 원산지인 진달래는 영어로 ‘korean rosebay’라 부른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봄철 우리나라 산 어딜 가나 진달래가 피지 않는 산은 없다. 식량이 부족하던 실절엔 먹을 수 있는 진달래는 참꽃이라 불렀다. 한편 진달래꽃과 모양이 비슷하고 더 흐드러지게 피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기에 개참꽃으로 부른다. 진달래는 연약해보이지만 강인한 꽃이다. 한 번 정착하면 해마다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다. 잎도 피지 않은 가녀린 마른 가지에 연분홍 꽃들이 대여섯 개나 무겁게 달렸지만, 결코 가지가 휘어지지 않고 꼿꼿하다. 가난했지만 끈질기고 순박했던 우리네 선조님들을 닮았다.

진달래만큼 우리 민족의 서정(抒情)을 나타낸 꽃은 없을 성싶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온 한국의 꽃이다. 만약에 무궁화가 나라꽃이 아니라면 진달래로 나라꽃으로 정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진달래를 노래한 시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아닐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한국 서정시의 대표라 할 만한 이 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깊은 헌신이 주제로 보인다. 설사 이별한다 해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오히려 꽃을 뿌려 고이 보내드리겠단다. 이를 두고 부처님의 산화공덕(散花功德)의 아름다운 경지라고도 한다. 여기서 진달래꽃은 체념과 인고(忍苦)로 일관하는 한(恨)의 미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간의 이런 평가와 다른 주장도 있다(『시론/권혁웅, 문학동네, 2017』). 이 시에서 ‘사랑의 대상이 떠나는’ 가정화법은 시적 화자의 강렬한 사랑을 표출하는 반어적 장치로 보았다. ‘설혹 당신이 떠나는 나를 버린다 해도 그걸 받아드리겠다.’라는 고백은 사랑의 극점에서나 나올 법한 고백이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 시에서는 ‘이별을 받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별한다면 원망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권시인의 시론을 더 들어보자.

「진달래꽃」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특질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수미상관(首尾相關), 결구에서 최초의 자리로 돌아오는 구성 방법. 둘째, 반복과 대구. 짝을 이루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셋째, 리듬감. 비슷한 말소리의 음절이 계속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것. 넷째, 폐쇄성. 이 시에서 님과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세계는 임과 중첩되며, 그래서 임의 모습이 세계를 가리고 있다. 흔히 서장시의 세계에 갈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절대성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서정시란 ‘시의 추체와 대상이 일치되며 전통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시로, 현대의 실험적 시도에 반대되는 시’로 정의한다. 그러나 권시인은 서정시에 대해 나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시에서 ‘주체의 정서표출을 목적으로 하는 시’를 서정시라 정의하자고 했다. 시적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만족과 불만족, 행불행의 정도를 측정하면 서정시의 자리가 드러난다고 했다. 실험시는 결코 서정시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대상의 모습을 ‘특별히 재구성하여 드러낸 시’를 실험시라 정의했다. 이성적인 주체와 이성적인 언어를 활용하여, 시적대상에 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시’를 비서정시라 했다. 또한 서정시 중에서 주체와 대상의 일치하는 시편들을 정합적(整合的)라 하고, 이런 정합적인 언어로 쓰인 시를 ‘행복한 서정시’라 하고, 그 반대를 ‘불행한 서정시’라 부르자고 주장한다.

진달래의 어원을 살펴보자.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ᄃᆞᆯ욋곶'이 진달래꽃을 가리키는 가장 오래된 어형으로 보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훈몽자회』에는 '진ᄃᆞᆯ위'로 되어 있으니 아마도 오래 전부터 이렇게 불렀을 성싶고, 접두어로 ‘진’을 붙인 것은 참진(眞)의 뜻일 성싶다. 진달래는 한자표기로는 두견화(杜鵑花)다. 두견화는 중국 이름으로서 두견새가 울 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달래를 노래한 옛시조 한 수를 감상해보자.

두견화 어제 디고 척촉(琇乘) 오ᄅᆞ 픠니

산중(山中) 번화(繁華)ㅣ야 이 밧긔 또 이실까

행여나 유수(流水)에 흘러 소식 알가 ᄒᆞ노라

- 김시홍-

여기서 ‘척촉(琇乘)’은 철쭉의 한자표기다. 두견화, 즉 진달래는 실제로 철쭉이 핀 다음에 핀다.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의 척촉(躑躅)을 보통 철쭉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를 진달래꽃으로 보아야 한다는 설이 있다. 진달래는 예부터 '척촉(躑躅)'으로 기록하였다. 진달래는 한반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인들이 좋아했던 꽃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꽃이었다. 오늘날에도 진달래꽃을 꺾어 머리에 꽂거나 꽃병에 꽂는 일이 흔하니, 수로부인이 꺾어 주기를 바랐던 꽃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라는 주장이다.

진달래는 기름진 땅에는 잘 자라지 못하고, 소나무마저 떠난 척박한 바위산 꼭대기나 언덕에 군락을 이룬다. 세종 때 『양화소록』에서 강희안(姜希顔)은 화품을 매기면서 빛이 붉은 홍진달래(紅杜鵑)에 6품을, 그리고 빛이 하얀 백진달래(白杜鵑)에 더 높은 5품을 매겼다. 그것은 백진달래가 홍진달래보다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 자라면서도 마치 두견새가 촉(蜀)나라가 있는 북쪽을 향해 울 듯이 백진달래도 북쪽을 향해 잘 피기에 일편단심의 절조를 가상히 여겨 화격(花格)을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달래에도 흰진달래, 털진달래 등 여러 품종이 있다.

어릴 적 겨울철이면 할아버지 나뭇짐에 진달래 가지들이 섞여 있었다. 이걸 모아 병에 꽂아놓으면 방안에서 일찍 꽃이 폈다. 봄이면 전국 여러 곳에서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북한도 민주화되어 영변 약산 진달래축제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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