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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허심탄회한 대화

  • 입력 2008.09.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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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는지 보고는 놀랄 때가 자주 있다.괴로운 일이 있는데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보니 가슴은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고 온몸이 아프던 사람이 진료실에 와서 자신의 고민을 시원하게 탁 털어 놓고 나서는 가슴 답답하던 것도 풀리고 속도 뚫리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보면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이런 표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가끔 진료실에서 “이렇게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병이 나을 수 있나요?” 라고 말하면서 약이나 주사를 주지 않고 이야기만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으로 반응한다.그럴 때 표현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면서 “만약 당신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당시에 지금 나에게 상담하듯이 속 시원하게 털어 놓고 의논도 하고 필요하면 하소연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병이 안 생겼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에 응어리진 것을 시원하게 털어 놓는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신체적인 상태도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라고 대답해 준다.물론 상담만으로 환자를 치료하지는 않는다. 처음에 정신적인 고통으로 시작하였지만 오랫동안 계속되어 신체적인 증상을 동반하였거나 정신적인 고통이 심한 경우에는 약을 병행한다.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가끔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웃지 못 할 우스운 일이 벌어지는데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고 ‘ㅂ’시에서 개업하고 있는 동료가 경험한 일이다. 할머니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이야기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받는다면서요”라고 대답해서 웃었다고 한다.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정신장애의 원인과 치료에 관해서는 일반인이 잘 모르는 상태라 치료에 앞서 교육부터 해야 될 필요를 많이 느낀다.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환자가 있어 소개하겠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진료실을 찾아왔다. 아주 미모이고 건강해 보이는 여대생인데 얼굴에 수심이 있어 어두워 보였다.답답해서 찾아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한참을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장래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의 동료 여자가 그 남자 어머니를 연상시켜서 자꾸 관심이 간다고 그 남자가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이성적인 감정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환자는 충격을 받았는데 자기 아닌 다른 여자를 이유가 어떻든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생각한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는 공부도 거의 할 수 없었고, 그 남자도 믿지 못하겠고, 회사일로 출장을 갔다 온다고 해도 공연히 의심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하고도 이것을 의논하지 못했다. 대학교에서 사이좋은 짝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런 것을 이야기하면 자신에게 큰 오점이 될 것 같았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2년을 혼자서만 괴로워하다가 이러다가는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의 진료실을 찾아 왔던 것이다.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가까운 친구와 툭 터놓고 의논을 했다면 쉽게 해결이 되었을 것인데 2년을 혼자서 생각만 하다 보니 생각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환자에게 “남자 친구가 동료 여자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 여자가 어머니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나온 것이다.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과 당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별개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이 환자가 며칠 뒤 다시 찾아왔는데 수심이 말끔히 걷히고 밝은 표정으로 되어 있었다. 이제 전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치료를 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밝게 웃었다. 상담한 첫날 상담을 끝내고 나가며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응어리진 것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이 경우처럼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한두 번의 상담으로 마치 오래 곪았던 종기에서 고름이 빠져 나오듯이 응어리가 풀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오래 전에 상담했던 한 여대생은 “선생님, 이상해요. 여기서 이야기 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 안하게 되요. 거기서 벗어나게 되요”하면서 매우 신기해했다.실제로 쥐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쥐를 자꾸 그리게 하면 쥐를 덜 무서워하게 된다. 쥐를 그림으로써 쥐에 대한 공포심이 빠져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처럼 표현이 정신건강에 중요한데 일반사람들은 표현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도 있다. 앞서 예를 든 여대생의 경우 남들이 자신을 아주 보기 드문 멋진 연애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남자가 그런 감정을 다른 여자에게 느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가까운 친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고 했다.환자는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오히려 자존심이 약해서 말을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존심이다.정신장애 예방에는 솔직함이 최고남의 눈치 때문에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다. 또한 말을 못하는 것은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것을 의논하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의 강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일은 청춘남녀 사이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고 그런 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이겨나가느냐에 따라 사랑이 더욱 더 깊어지고 그런 것을 통해 서로의 인격이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모든 질병은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정신장애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번 병이 되면 치유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후유증도 생기며 병으로 인해 많은 손해가 있을 수도 있다. 정신장애를 예방하는데 자기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평소 관계가 좋은 친구나 선배, 선생님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자신의 힘든 점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조언을 듣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일은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