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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 입력 2009.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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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30대 초반의 남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위가 아프고, 아랫배가 아프고, 변비가 있으며, 잠이 안 오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였다. 이런 증상은 부인이 외도한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 난 뒤부터라고 했다.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같은 나이의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만을 두고 있는데 부인이 점을 치러갔는데 점을 봐주는 남자가 부인에게 “큰일 났다. 아들에게 큰 액운이 닥쳤다. 목숨을 잃거나 병신이 될지도 모른다. 이것을 막는 길은 딱 하나 있다. 아무도 몰래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라는 것은 자기와 성행위를 하고 난 뒤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민하다가 그냥 시키는 대로 했고 그 뒤에 여러 번 만나 성관계를 가졌다. 그것을 남편이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부인을 오게 하여 면담을 해 보았는데 많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물론 부인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주문에 말려 들어갔고, 그 뒤에 그렇게 길진 않지만 불륜이랄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 점치는 남자의 잘못된 제의가 없었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으로 보였다. 부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괴로워하는 남편의 마음을 붙잡아 주기 위해 노력하여 가정파탄의 위험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또 이런 환자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여자를 아들, 딸이 모시고 왔는데 말을 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남이 하는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혼란된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그렇다고 했다.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재가를 하지 않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아왔다. 같이 온 자식들에 의하면 몇 개월 전부터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며칠 전에 끝났다고 했다. 그 뒤에 지금 보이는 현상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받은 충격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점보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시골에 있는 자기에게 며칠 내로 내려오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면서 하루분 약만 지어달라고 하였다.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운명을 바꾸는 힘은 인간의 의지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이런 일이 가끔 있다. 어떤 환자는 점쟁이가 그런다면서 몇 개월 후에는 운세가 좋아져 금방 상태가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숙명이나 운명을 이야기하면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환자로서 해야 할 노력을 하지 않을 때 필자는 참으로 답답하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운명이 있는지 모른다.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운명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알 수 없다. 혹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TV에서 심층 취재한 것을 봤을 때 그 사람들의 능력이 상당히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고,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다.이러한 내용과 관련되어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국정신치료학회가 주관하여 작년 1994년 8월에 서울에서 개최한 제 16차 국제정신치료학회에서 인도의 정신과 의사인 사마순다 (Channapatna Shamasundar)가 발표한 ‘인도철학, 신화, 그리고 정신치료’ 라는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마순다는 그 논문에서 인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칼링가 왕과 아스타카 왕이 서로간의 분쟁으로 인해 전쟁을 벌이려 군대를 정렬해 놓았다. 칼링가 왕이 유명한 수도자를 만나 누가 이길지 예언 해 달라고 했다. 그 수도자는 인드라 신에게 의논한 후 칼링가 왕이 이긴다고 말했다. 아스타카 왕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아스타카 왕은 즉시 그의 군대에서 그를 위해 싸우다 죽을 각오를 한 자원병을 찾았다. 수천 명이 자원했다. 그는 자원자들을 전투대형의 선두에 배치하였고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적의 왕에게 집중시키도록 지시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칼링가 왕과 그의 군대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스타카 왕이 전쟁에서 이겼다. 나중에 수도자가 인드라 신에게 어떻게 해서 그의 예언이 빗나갔느냐고 물었다. 인드라 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너는 우리 신들이 높은 용기와 확고한 결의가 있고 진실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냐?”사마순다는 이어서 인도의 바시쉬타 성자가 라마 왕자에게 가르친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숙명(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 노력과 수고도 역시 존재한다. 숙명과 인간의 노력은 마치 서로 싸우는 두 마리의 숫양과 같다. 더 강한 것이 이긴다.”자기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자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해 우리들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추측을 하게 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을 투사한다. 운명론적 해석도 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실에 문제가 생기면 그럴 만한 이유나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문제의 해결은 그것이 왜 생겼느냐는 원인 분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작업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잘못 투사될 위험성이 그만큼 커진다. 자기 혼자서 아무리 분석하고 점검해도 잘 모를 때는 주위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그 원인이 잘 드러난다. 자신은 자기의 문제이고 집착된 것이 있기 때문에 실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혼자의 힘이든 남의 도움을 받아서든 원인이 밝혀져서 그것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면 문제가 해결된다.이와 같은 접근방식은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가 말한 사성제(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똑같다. 먼저 인간이 현실적으로 괴로운 존재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에 그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그 원인을 밝혀서 그것을 없애는 길(방법, 道)을 따라가면 괴로움이 소멸 된다는 사성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분석과 그 해결책 모색에 있어서 어느 경우에나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붓다는 절대로 점을 치지 말라고 분명히 경전에서 말씀 하셨다.그런데 이렇게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는 과정이 사실 어렵긴 어렵다. 지금 닥친 현실이 너무 괴롭고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서 너무 불안하다 보니 사람들은 손쉽게 점을 친다.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정신건강의 요체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숙명이나 운명에 의존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고 볼 수 없고, 인생에 당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는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확한 판단을 소홀히 할 위험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