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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pisode] 서정감 넘치는 동요 ‘과수원 길’

  • 입력 2009.05.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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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봄이 무르익고 있다. 산에 들에 꽃이 활짝 피고 푸른 잎이 꽤 무성하다. 농가, 산촌, 과수원들도 손길이 바쁘다. 이 맘 때가 되면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 서수남·하청일 노래의 <과수원 길>이 떠오른다. 서정적이면서 봄 냄새가 물씬 나는 곡이다. 이 노래는 1972년 창작동요로 태어났다. 원래는 8분의 6박자 바장조의 서정 동요다. 동요로 작곡된 것이지만 합창곡으로도 편곡 되고, 어린이는 물론 대중사회에서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쉽게 익힐 수 있는 가락에 서정성이 넘치는 오늘날의 대표적 동요다. 이 노래는 시인인 박화목 작사가(필명은 은종 銀鐘)의 외가 부근 과수원 길을 무대로 한 같은 제목의 시 ‘과수원 길’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시가 노래 말이 된 것이다. 따라서 ‘작사(作詞)’란 표현 대신 ‘작시(作詩)’라고 하는 게 맞다. 4분의 3박자, 왈츠풍의 이 노래는 그림을 그리듯 과수원 풍경을 잘 읊조리고 있다. ‘동구 밖 과수원 길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다’며 마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하얀 꽃잎은 눈송이처럼 날리고 꽃 냄새가 솔솔 불어온다는 대목에선 정감이 듬뿍 넘친다. 이 설정만으로도 모종의 감상은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서정의 무대’에 두 사람을 등장시킨다. 알려진 얘기로는 노랫말 속 이 두 사람은 시인과 그의 여동생이다. 그들에겐 말이 필요 없다. 서로 ‘얼굴 마주보며 생긋’ 웃을 수 있는 한 그들은 말의 경계를 넘어선다.김공선이 곡 붙여 국민가요 반열 올라김공선이 곡을 붙여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이 노래는 1960년대 초 정부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등기이전해준 서울 불광동 문화촌에서 한 번도 집을 옮기지 않고 평생 살았다는 박화목 시인의 정갈하고 고운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는 맥주를 좋아해 술을 한 잔 하는 날이면 고향과 젊은 날 떠돌던 하얼빈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박화목은 192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컸다. 평양신학교 예과, 하얼빈 영어학원, 만주 봉천동북신학교, 한신대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41년 어린이잡지 ‘아이생활’에 동시(피라미드)를 발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독교신앙에 바탕을 둔 동심의 세계를 선보이며 동화·동시작가로 필명을 날렸다. 월남해선 서울중앙방송국 문예담당PD, 기독교방송국 편성국장,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회 분과회장 등을 지냈다. 이주민의 정서라 할까 월남민 박화목의 많은 시들은 향수를 노래한 게 많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로 나가는〈망향>이 그렇고 〈과수원길>도 마찬가지다. 윤용하 작곡의 <보리밭>노랫말도 그가 쓴 것이다. 노래로 우리들 마음에 고향을 심어준 박 시인은 2005년 7월 9일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곡을 붙인 김공선(金公善) 선생은 서울 종로초등학교 합창부를 지도했다. 학교방송으로 매주 방송되는 ‘노래공부’시간 때 153회에 걸쳐 가창지도를 맡았다. 동요작곡을 주로 한 그는 1961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음악담당 장학사를 지내기도 했다.노래를 부른 가수 서수남 씨도 사연이 많다. 훤칠한 키(187cm)의 그는 듀엣 20년, 솔로가수 12년 경력의 중견가수다. 1969년 그룹 ‘서수남과 하청일’을 만들어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1943년 2월 25일생으로 한양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2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MBC가요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동물농장>이란 곡을 만들어 서울대 공대생과 노래를 부르려하자 대학교수 어머니를 둔 친구가 입대하는 바람에 헤어졌다. 다른 친구들과 4중창단을 만들어 미8군 오디션을 보고 3년 쯤 활동하다 1969년 하청일을 만난다. 둘은 듀엣을 만들어 문화방송 개국과 더불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수남-하청일 콤비는 <동물농장> <과수원길> <팔도유람> <수다쟁이> <한번 만나줘요> 등을 통해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MBC 10대 가수 특별가수상(1973년), TBC 방송가요대상(1975년) 등을 받았다. 통기타리듬의 서수남 노래는 40여년이 흘렀지만 향수처럼 느껴지면서 지금도 회식자리에서 자주 불린다. 서수남은 1992년 솔로가수로 독립했다. 그해 나온 솔로데뷔 앨범 1집은 ‘서수남의 세상사는 이야기’. 그 뒤 예원예술대학교 실용음악 겸임교수를 지냈고 1988년 서수남음악원을 세워 노래지도를 하기도 했다. 굴곡 많은 서수남 신곡 내며 재기하지만 그의 삶엔 굴곡이 많았다. 2008년 11월 21일 MBC-TV에 ‘기분 좋은 날에’ 출연, 이혼에 얽힌 사연을 밝혀 눈길을 모았다. 2000년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날 찾지 마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긴 아내 얘기와 홀로 구순 노모를 모시고 살아온 안타까운 사연을 공개한 것이다. 29년간 함께 산 아내의 가출 충격은 엄청났다.피치 못할 사정으로 갈라선 서수남은 ‘기분 좋은날’ 촬영에서 40년 지기 뽀빠이 이상용과 우정여행을 떠나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돈 문제였다. 1999년 11월 아내가 20억 원 사기사건에 얽힌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아무도 모르게 투자를 잘못해 벌어진 일이고 보증을 선 부분도 있어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더욱이 세 딸은 대인기피증에 걸릴 정도였다. 애들을 위해 이혼했다는 게 가요계 사람들 시각이다.이제 서수남은 다시 일어섰다. 올 4월 초 새 싱글음반을 내놓으며 가수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4년 만에 신고한 새 앨범이다. 노래는 데뷔시절로 돌아간 컨트리포크 스타일이다. 그의 음악은 늘 풍자적이면서 해학적인 분위기로 경쾌함을 준다. 경제위기로 긴장감과 허탈감마저 드는 이 때 열심히 일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노래다. ‘잘 될 거야~ 너는 반드시 잘 될 거야~’ 서수남은 “꿈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만들었다”면서 “<잘 될 거야~>는 이런 희망을 주고 싶어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의 잘못된 재테크로 재산을 다 날리고 얼마 전 사채 빚 16억 원을 청산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먼 미래를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생각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이젠 ‘먼 옛날의 과수원길’은 우리 모두의 꿈의 무대가 됐다. 하얀 꽃잎이 지는 날, 누군가와 얼굴 마주 보며 말없이 그 길을 걷고 싶다.